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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20시 47분 등록
‘늦은 밤 강의실 한구석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나는 먼 외국땅에서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있을까. 이 늦은 나이에 왜 나는 이 길을 스스로 택했을까.’
언젠가 방송인 손석희는 신문의 칼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기억력이 칼럼의 문장을 모두 기억할만큼 뛰어나지는 않으니 인용한 문장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위에 인용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흔을 훌쩍 넘겨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손석희는 쉽고 편하게 지내다 올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년 같은 외국연수를 즐기다 온다. 그러나 그는 정식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공부를 스스로 택했다. 고생길이 뻔했다. 외국에서 외국어로 짧은 시간에 학위를 취득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시밭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을 걷던 도중에 그는 늦은 밤 강의실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 눈물방울이 거름이 되었을까? 그는 길지 않은 기간에 자신이 원했던 학위를 들고 귀국한다. 그리고 앞길 탄탄한 방송인의 길을 스스로 버리고 교수의 길로 삶의 행로를 바꾼다.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레이스를 요구하고 있다.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자료를 찾고, 괴발개발 북리뷰를 쓰고, 문장도 이어지지 않는 칼럼을 쓰는 나날이 3주째. 이것은 책읽기와 글쓰기라고 부르기 어렵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언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적이 있는가. 그것들은 약간의 어려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의 즐거움을 주고는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의 덩어리로 온몸을 짓눌러온다.
고통은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고개를 불쑥 불쑥 내밀었다. 출근길에는 아침부터 납덩이같은 무게가 머릿속을 짓눌렀고, 집에서 책을 읽으려 책을 집으면 활자보다 스트레스가 먼저 몰려왔다. 글을 쓰려고 앉으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가는 듯 했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머릿속은 숙면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짓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고통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게를 키워가는 듯 했다.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불현듯 눈물이 눈자위를 적시며 번졌다. 이유도 없는 눈물이었다. 이게 힘들어서? 아니면 나의 몸부림이 안타까워서?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이 짓을 스스로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눈물이 번져나왔다.
손석희의 글이 생각난 것은 그때 쯤 이었다. 그의 눈물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나의 눈물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몇 년 전 그의 글을 읽을 때는 그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잘나가는 사람의 감정적 사치라고 여겼었다. 이제는 그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코리아니티’의 저자 구본형은 한국인의 문화적 정서적 보편성과 특수성이 혼재하는 개념을 코리아니티라고 표현했다. 그 코리아니티가 한국인의 특질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코리아니티’를 찾아가는 중인지 모른다. 내가 쌓아 온, 내가 몸속에 숨겨 온, 내가 스스로 알지 못하지만 나의 것인 문화적 보편적 특수성과 특질을 찾아가는 중인지 모른다. 나는 궁금하다. 그 특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1년뒤 혹은 2년뒤 혹은 수년뒤 내가 흘린 눈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흘린 작은 눈물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눈물의 힘으로 나는 또 하루를 이겨낸다.
나도 알지 못하는 ‘나의 코리아니티’를 찾기 위해서.
IP *.212.22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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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6 21:19:03 *.36.210.80
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시켜 나가는 힘일지 모릅니다. 크고 작은 유혹들을 뿌리치고 자신과의 타협을 뿌리치는 일들이 빛나는 재능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연구원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할 방향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다짐이 아름답습니다.

연구원 가운데 누군가를 닮은 것 같은데요. 울다가 무엇이 떨어진 이들이 몇 몇 있거든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혹은 흘려서 무엇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남해에서 봐요.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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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8 02:36:27 *.38.102.217

유인창님. 선배가 아니고 동기라서 주제넘다는 생각 때문에 몇 번이나 댓글을 달았다 지웠습니다. 하지만 같은 지원자이고 똑 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편히 말하려구요. 그렇게 읽어 주세요.

박안나님이 힘들다고 했을때, 그리고 저도 지난 번에 그런글을 썼었지요. 우리 모두 말은 안해도 님처럼 속울음을 울어 봤을 거에요.

저는 두통약을 달고 살았어요. 이번 코리아니티 쓰는데 할말은 너무 많고 정리는 안되고, 그야말로 포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요. 열한시 오십삼분에 올렸으니까요.

우린 왜 여기 지원 했을까요? 책을 내고 싶어서?
명사가 되고 싶어서?

저는 게을러 혼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원했어요. 함께 하는 사람이 있고 존경하는 스승이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 하는 일이 매일 쓰고, 매일 읽는 것이라, 그래서 거북이처럼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기분이라면 게으른 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로마인, 산티아고를 아시나요. 인창님의 글, 저는 참 좋았어요. 고운기님처럼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쓰는 이는 책을 내지 않아도 써야 행복한 사람인 거죠.
쓰다보면 그것이 어떻게 세상과 만나지게 될지는 또 그 다음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엔 씩씩한 글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울고 있지만 한편 기쁘기도 하지 않나요. 벌써 여섯편의 자기 글을 간직하게 되었잖아요.
일천한 글일지라도 여섯편의 글을 갖게 된 것을
명품차를 갖는 기쁨에 비길 수 있을까요.
어떻게 블로그에 올리는 글과 같다 할 수 있겠어요.

우는 것 정도 글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가 여기서 울지도 않고 글을 쓰지 않아도 시간은 가 버릴 것이고 그럼 우린 미래에 무엇과 만나게 될까요.
합격을 바라지만 그것이 안되면 꿈벗이 있잖아요.

인창님. 인창님이 씩씩해지셔야 저희도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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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창
2008.03.18 08:48:13 *.64.21.2
힘이 되는 댓글 참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마 많은 부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군요.

'우리가 여기서 울지도 않고 글을 쓰지 않아도 시간은 가 버릴 것이고 그럼 우린 미래에 무엇과 만나게 될까요.'

이 말이 우리를 움직여가는 힘중의 하나가 아닐런지요.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분들, 더 힘내서 함께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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