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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3일 19시 18분 등록
두 사람이 사랑에 기반해서 하는 결혼에 비즈니스에서나 쓰는 계약이라는 단어가 왜 들어가야 할까. 계약이란 모름지기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 성립하는 것이며, 이점이 사라지면 파기되는 것이다. 가장 신비가 살아있어야 할 것 같은 결혼에 왜 두 사람은 계약이 필요했을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계약 결혼을 한 것은 아무래도 보부아르의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결혼한 때가 20세기 초라는 것을 상기하면 이미 결혼에 기득권을 가진 사르트르가 계약 결혼을 제안할 어떤 이유도 없다. 그는 보부아르를 사랑했고 그래서 청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의식이 강하고 똑똑했던(보부아르는 소르본 고등 사범학교에서 교수 자격 시험을 준비 하던 중에 사르트를 만났다. 교수 자격을 얻었을 때 사르트르가 수석, 보부아르는 차석이었다. 졸업하면서 그들은 계약 결혼에 들어갔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라는 매력적인 한 남자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결혼의 구속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계약 결혼을 제안했을 것이다. 보부아르에게 결혼은 사랑 하나 만으로 빠져들기엔 너무 불확실한 세계였다. 그런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전략이 계약이라는 형태를 빌린 결혼이었다. 보부아르의 비범함을 알고 동의해준 사르트르를 생각할 때 그들은 신뢰 속에서 결혼생활을 잘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정황을 살피니 그들이 한 집에서 산 것 같지는 않다. 놀랍게도 계약의 핵심 내용(처음부터 고정된 문구를 가진 계약서였는지, 혹은 살면서 계약의 내용을 바꾸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은 따로 살면서 ‘다른 파트너와의 관계를 서로 구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자유를 보장해주는 영역이 ‘다른 파트너와의 육체 관계’까지 포함하는 것이니 당시로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만하다.(그렇다면 굳이 왜 결혼이 필요했을까…)

그들의 애정 생활은 여론에 공개된 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로를 굳게 믿으면서 다른 파트너와 에로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하는 철학적 질문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던져놓고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각자 여러 해 동안 다른 파트너와 애정 관계를 가졌지만 항상 서로에게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다른 상대에게 마음이 끌리는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지 않고 그런 외부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 가능 했을까. 그들이 맺은 외부 관계를 알고 보면 더 그런 의심이 든다. 그들의 외도의 파트너는 서로 같이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구속을 받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사랑은 묶어두려는 것이 그들의 계약 결혼이라면 두 사람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유는 계약 결혼의 핵심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자유라면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다. 결혼은 이미 혼자 사는 삶의 형태를 어느 다른 사람과의 결속으로 바꾸겠다는 결단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쩌자고 계약의 파기 조건에나 어울릴 법한 ‘다른 상대와의 연애’까지도 계약의 조건에 넣으면서 결혼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언급한 결혼의 정의를 더 지지하고 공감하는 사람이다. 결혼은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관계에의 헌신이고, 그것은 상대의 고통까지도 기꺼이 내 것으로 하겠다는 ‘com(함께)+ passion(고통)'의 결단이다. 부부가 컴패션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이미 사회에까지 아름다운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자신의 이상(문학을 통한 자신의 구원, 나아가 독자들의 구원)을 위해 결혼 상대자에게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아무리 설득력 있는 이론을 갖다 댄다고 해도 내게는 일종의 도피로 보인다.

결혼을 한다는 것,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세계를 껴안는다는 것은 엄청난 투신과 노력, 희생을 전제한다. 그 희생이 정말로 값진 것이었다고 둘이 함께 고백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처럼 시대적 제약을 너머 의식이 자유로왔던 사람들이 계약 결혼이 아니라 평범한 결혼 안에서 사람들의 이상인 평등한 관계를 성취해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특히 계약 결혼의 주창자인 보부아르에게는) 결혼에 투신할 진정한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왜 결혼한 여자가 남자의 노예가 되지 않고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일까.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결혼의 불합리를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던 보부아르는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결혼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가장 바보 짓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당하는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기회비용이 실로 엄청난, 그러나 결과는 비참한, 가장 형편없는 투자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공동의 선을 성취하려는 바람직한 결혼이라면 그것은 실로 위대한 투자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갈구하는 사랑도, 단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하고 영혼의 친구로 사는 것이다. 결혼은 모험이고 인생을 투자해볼 만한 가치 있는 모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험의 성공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다. 보부아르 시대에 비해 지금은 엄청난 자유가 주어지긴 했어도 결혼은 여전히 우세한 남녀의 결합 방식이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결정인 것은 분명하다. 결정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그것, ‘바로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와 주는 일,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갖는 일’은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일이다.

어찌 되었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에게 결혼은 다른 의미에서 모험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용인하며 함께 걷는 그 길은 어쩌면 더 큰 모험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성공 하나는 바로 사르트르와의 관계이다’ 라는 보부아르의 말년 고백을 미루어 보건대 그들의 모험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계약은 2년이었지만 그들이 평생 그 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 만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들은 서로의 학문과 문학에 있어서 최고의 동지였고, 각별한 지지자였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피하려고 했던 일반 결혼의 불합리보다 더 큰 무게의 또 다른 불합리들과 일생을 싸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에 빠졌을 때도 함께 했고, 바로 그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인내로 파란만장한 감정의 굴곡과 상처를 넘어 정상의 고지에 이르렀다.

‘따로 또 같이’ 인생을 '끝까지' 함께 걸어간 두 사람에게,
결국 몽파르나스 묘지에 나란히 묻힌 두 사람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 관계의 깊이와 특별함에도!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들의 열린 커뮤니케이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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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3 20:29:26 *.36.210.80
나는...

그냥 한 번 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요. 어쨌거나 그들은 그것으로 이름을 남겼지요. 사람이란 결국 자기애 때문에 사는 거라서 특히나 자의식이 강한 그녀라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나도 총체적으로는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재미 없어서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 뿐인데. ㅋ

그들의 경우를 보고 결혼이라는 것이 좀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 일 수밖에 없겠죠. 어쩐지 둘의 아주 특별한 사랑이었다기보다 자신들이 벌였던 일에 대한 수습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물결을 따르듯 다른 이성을 찾기도 했고 그것 자체가 결혼이든 아니든 이혼이든과 같은 삶을 느낄 수 밖에 없었겠죠. 결론적으로 '끼' 있는 두 사람의 '장난' 같아요. 자유분방하게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고.

소은이 말한 것은 모든 여성의 바람이기도 할테지요. 신은 정말 못됐어. 골고루 다 베풀지 않고 쫀쫀하게 말이지.

이게 다 끝난 걸까 하나가 더 올라올까? 열정녀에게 끝까지 화이팅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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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2008.03.24 10:17:29 *.84.240.105
저는.....
보부아르 같은 사람이 '계약 결혼'같은 걸 한 번 저질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만 하고 절대 바꾸지 못하는 것, 예를 들어 결혼에 있어서 여자에게 불리한 어떤 모든 것들을 이렇게 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실험해 보는 것, 관습에 도전해 보는 것. 이런 것을 실험을 해 줌으로써 세상의 지평이 늘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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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2008.03.24 22:50:30 *.109.192.214
많은 생각이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멋진 글!
잘 감상했습니다.
흥미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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