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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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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3시 11분 등록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무학(無學)이셨다. 그래도 늦게나마 한글을 깨우쳐서 신문을 겨우 읽을 정도는 되셨다. 할머니는 타령조로 가락을 붙여가며 신문을 읽으셨는데,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엇박자로 발음을 뭉개면서 얼버무리고 지나가셨다. 그런 모습이 재미나서 난 옆에 앉아 그 가락을 흉내 내곤 했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퍽이나 귀여워 하셨다.(나는 할머니 손자 20여명 중 제일 막내였다)

할머니는 1890년 생 이시다. 83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시대 어른으로는 꽤 장수하신 편이다. 16살에 시집을 와서 8남매를 낳으셨는데, 그 중 3명을 어려서 잃으셨다. 일제 36년을 온전히 겪으셨고, 일제 시대 때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몇 년간 무진 고생을 하며 5남매를 혼자 키우는 경험도 하셨다. 고향인 개성에서 해방을 맞은 후, 38선이 그어지기 바로 직전에 가까스로 서울로 빠져 나와 서울에서 생활 터전을 잡으셨다. 6.25 사변이 터지자 인근 친척 20여명의 대 식구를 이끌고 부산 광복동에서 3년간 피난살이를 하셨다. 휴전이 되면서 집안에서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던 작은 외삼촌이 월북을 하셔서 당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을 잃으셨고, 그 후 끝내 아들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식구들 중 여럿을 당신 가슴속에 먼저 묻으셨다. 우리아버님, 큰 이모부, 큰 이모, 작은 이모부, 월남에서 전사한 손자 등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셨다.(딸 셋이 모두 혼자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할아버지도 할머니 보다 2년 먼저 돌아가셨다. 막내 사위인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곡을 하시면서 ‘내가 먼저 가야하는 데,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하며 하염없이 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는 바쁘게 사셨고, 그래서인지 건강하셨다. 살아남은 5남매 슬하에 20여명의 손자와 40여명의 증손을 두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소가가 한 동네에 모여 살아서 설날, 추석 등 명절 때나 제사 때는 가내 여자들(나 같은 꼬맹이를 포함해서)이 모두 모여 함께 일을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모여 살아서 평소에도 집안 모임은 잦았다. 할머니는 이런 모임의 총 대장이셨다. 대 식구를 거느리니 할 일도 많고 항상 바쁠 수밖에 없으셨을 게다. 그 일을 수십년 동안 해오신걸 보면 할머니는 집안일을 취미생활 하듯 즐기셨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는 직계 자손만 70여명. 명절 때 자주 찾아오는 일가친척까지 따지면 아주 많은 수의 친척들이 있었다. 이 많은 친지들이 할머니에게는 가족이면서 또한 친구들이었다. 항상 그들과 어울리고 대소사를 챙기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할머니에게는 ‘집’이 세상의 전부였다. 집안에는 할머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고, 그것들은 또 할머니를 필요로 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정확하지 않지만 돌아가시기 10년 전 쯤 되지 않을까) 큰 외삼촌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본채를 큰 외삼촌 부부에게 내 주고 사랑채로 옮겨 가 생활을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경제력을 잃으셨고, 할머니도 같았다. 경제적 실권의 상실로 할머니가 어떤 박탈감을 느끼셨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주도세력’이 된 큰 외삼촌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좀 섭섭한 마음은 있었겠지만 그걸 드러내서 표현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사랑채로 거처를 옮기시고 난 후 얼마 안가 집안에서 할머님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워낙 일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분이시라 항상 몸을 움직이시고, 특히 손자들을 돌봐주는 등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은 많아 졌다. 할머니는 원래 말씀이 별로 없는 분이셨다. 싫어도 싫다는 말을 안 하시고, 어려워도 어려운 내색 안 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집안에서의 역할이 어떻게 변했던, 30여명 넘는 대가족을 희생과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사셨고, 그렇게 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보내시다가 돌아가시기 6개월 전쯤 자리에 드러누우셨다. 자리에 드신 이후로 사람을 잘 못 알아보고, 묻는 말에도 다른 대답을 하시는 등 임종 전 증상을 보이면서 6개월여를 보내시다가 비교적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이렇게 살다 가신 할머니에게 노년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들에 게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셨을까? 존재의 이유에 대한 회의를 느끼셨을까? 힘들고 괴로워서 빨리 죽기를 바라셨을까? 할머니의 세상은 ‘집’이 전부였다. 만일 할머니가 노년에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셨다면, 그 대상은 바로 우리 가족일터이고 원인제공자도 우리 가족일 수밖에 없다.

글쎄.....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싶다. 할머니는 앞에서 열거한 험난한 역사의 현장을 살아오셨던 분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 다 큰 아들과의 생이별,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의 슬픔..... 이 역사의 질곡을 할머니는 가족에 대한 희생과 사랑으로 살아오셨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얼마간 회한의 정은 품을지언정,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야’ 하는 마음으로, 모두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노년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마치 < 일본소설 나라야먀 >에서 자식의 손에 흔쾌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우리 어머님은 할머니와는 좀 다르시다.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길 줄 아시는 분이다.

우리 어머님은 지금 83세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연세이신데, 건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때문인지(47세에 혼자되심) 건강을 무척 생각하신다. 30년 넘게 베드민턴, 등산, 걷기 등 운동을 꾸준히 하셔서 기초체력이 튼튼하시다. 허리도 전혀 안 굽으셨고, 다리 관절도 튼튼하시다. 지금도 전철을 이용해 온 데를 다 다니신다. 어머님은 조그만 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우리 집 근처로 모시려고 해도 살던 동네를 떠나면 재미없다고 마다하신다.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 사시겠단다.

어머님의 일터(?)는 사회복지관이다. 주중에는 동네 근처 2곳의 복지회관에 번갈아 출근(?)하면서, 포켓볼, 합창, 고전무용, 요가, 고스톱 등 다양한 여가를 즐기신다. 점 10원짜리 내기 고스톱을 자주 치는데, 이게 치매 예방에 아주 좋단다. 매주 토요일은 내가 어머님을 고용한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집사람은 항상 쫓기며 산다. 그런 집사람이 시간을 갖고 운동도 하고 온전히 쉴 수 있는 Off-day를 만들어 주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함께 6살난 우리 딸을 돌본다. 어머님은 일주일에 한번 손주 보는 재미와 아들과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게다가 며느리를 위해 서비스 하는 것이니 보람을 느낄 만 하실 게다. 거기다 돌아가실 때 내가 드리는 일당(?)은 어머님의 주 수입원 중 하나다.

어머님은 이전부터 가지고 계신 얼마간의 자금과 아들들이 매달 드리는 용돈으로 생활 하신다. 우리가 드리는 돈은 생활비로 쓰고, 갖고 계신 비자금(?)은 목돈이 들어가는 여행경비 등에 쓰시는 것 같다. 비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우리집안의 극비 사항이다. 절대로 얘기해주지 않으신다. 그러면서도, 매년 초 용돈 인상여부를 얘기할 때면,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 용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마치 노동조합이 사측을 상대로 협상하듯이 당당하게 요구하신다.

어머님의 취미는 여행과 운동이다. 다니시는 데가 많다보니 운동은 자연스럽게 된다. 아침에 9시에 집을 나와서, 저녁 6시나 되어야 퇴근하신다. 전철타고 걷고, 복지관에서 하는 각종 놀이가 어머님의 운동이다. 복지관에서는 가끔 국내외여행을 주선해 준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기에 복지관 친구들과 자주 여행을 다니신다. 작년에는 10박11일로 북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셨다. 주위 분들은 어머님의 왕성한 체력과 부지런함에 놀라워한다.

이만 하면 어머님의 노년생활이 나쁜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 생각 역시 비슷하시다.

노후생활에 필요한 요소로 흔히 5가지(건강, 일거리(보람), 경제력, 취미생활, 친구)를 얘기한다. 어머님은 충분치는 않지만 5가지를 두루 갖고 계시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람을 찾을 만한 일거리가 없다는 점인데, 그래도 매주 한 번씩 손주를 돌보는 것이 어머님 입장에서는 생산적인 일거리라고 볼 수 있다.


할머님이나 어머님이 세대를 대표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년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비교해 보면 이렇다.

우선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사회 경제적 여건이다. 어머님의 주 활동 무대는 노인복지관이다. 거기서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어머님이 좋아하는 여행도 다니신다. 그곳이 어머님의 놀이터고 생활 터전이다. 어머님의 주 교통수단인 전철은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공짜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에 더 없이 좋은 수단이다. 할머니 시절에는 이런 시설이 없었다. 한마디로 노인들이 갈만한 곳도 갈 방법도 없었다. 또 우리나라 국민들의 경제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져서 비용이 들어가는 놀이문화(여행 등)를 같이할 만한 친구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두번째는 개인의 경제력이다. 어머님은 노년을 보낼만한 경제력을 갖고 계시다. 매월 한번 정도는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신다. 아들이 주는 생활비도 어머님에게는 큰 버팀목이다. 반면, 할머니(할아버지)는 경제력을 큰 아들에게 다 넘겨주고 빈 털털이가 되셨다. 뭘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여력이 안 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어머님은 참 현명한 분이시다.

셋째는 건강이다. 할머님도 건강한 편이었지만, 우리 어머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머님은 30년 넘게 꾸준히 해온 운동이 어머님의 건강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건강하니까 여행도 다니고, 집 밖에서의 활동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또 건강해지는 ‘건강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계시다. 반면에 할머니는 집에만 계셨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취미이고, 여가셨다. 나이가 들 수록 집 안에서 노인이 할 일은 줄어들고 결국 일거리가 없어지면 몸 움직일 일도 줄어들고, 그러면 건강은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 구조’ 속에 할머니는 계셨다.

넷째, 친구와 취미생활이다. 이건 그야말로 비교가 되질 않는다. 앞에서 말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보브와르는 ‘노인문제에 대하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노년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는 것은 그 당시의 프랑스나 지금의 우리나라나 같다고 본다. 다만, 북리뷰에서도 밝혔듯이 사회적 차원의 개선방안을 찾는 것과 함께 개인적 차원의 준비도 병행 되어야한다. 그래야 사회와 개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균형잡힌 노후복지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꽃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발전해 나아갈 것이고, 그에 따라 노년을 보내기 위한 여건은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노년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나는 어떤 노년을 보내게 될까? 사회가 발전하는 만큼, 어머님보다 더 보람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이것이 앞으로 내가 우리 사회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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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천주교의 가장 큰 명절중 하나인 부활절이었습니다. 글이 좀 길어져 읽기 힘드셨을 텐데, 끝까지 다 읽으신 분들에게 하느님의 영광과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IP *.39.1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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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09:23:40 *.36.210.80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 정감 넘치네요. 현님의 글을 읽다보니 우리 엄마가 너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속을 많이 썩혀드려서...
저희 어머니는 당신의 틀을 못 벗어나시는 것에 비해 댁의 어머님은 참 현명하고 능동적이신 것 같아서요.

우리 안에 이미 노년이 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재의 나를 잘 알지 못해서 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들구요.

비가 오는 부활절이었네요. 그동안 애쓰셨어요.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랍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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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3.27 12:13:18 *.254.16.19
차분한 시각과 온유함이 문장 전체에 배어나와,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네요.
'엇박자로 발음을 뭉개면서' ~~ 이 장면에서
동화책의 한 장면이 떠오를듯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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