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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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직원 식당에서 몸을 쓰는 알바를 오늘로 마지막으로 마쳤다.
식당 서빙인데, 사람들이 좋아서 행복하게 했다.
물론 먹는 장사하는 데니까 마음껏 먹는다는 것, 그것도 큰 행복이다. 오늘은 점심이 좀 부실하긴 했는데... 쩝.
마지막 순간에 배가 고팠다. 밥을 한그릇 다 비우고 났는데, 맞은 편에 앉은 녀석이 속을 긁어댄다. 갑자기 배가 확 고파졌다. 한 그릇으로는 부족해서 삽겹살 몇 점을 더 줏어먹고 있는데, 내일이 금요일이어서 대청소 하는 데 내일 안나오면 어떡하냐고 하루만 더 나오라고 한다. 청소해야 하는데, 나 없으면 더 힘들다고. 딴 사람 나오다고 해도 그래도 일에 필요하니까 나오라고 하는데...
이걸 이쁘게 봐줘야 하는지 먹던 삼겹살을 던져야 하는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그놈 얼굴로 날릴까 하다가 협박만 하고 말았다.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다. 일을 잘해서만이 그곳에서 인정받는 존재라면 난 슬퍼질 거다.
같이 일하던 주방 식구들과 서빙하던 언니들과 메니저님과 영양사님이 서운해한다. 언제든 다시 오라고.
다행이다. 재미나게 잘 살았나보다.
정말 재미났다. 따뜻한 사람들과 따뜻하게 잘 보냈고, 따뜻한 밥 먹으면서 잘 지냈다.
삼겹살 던지지는 것은 그냥 애교다. 일터에서 그녀석이 제일 감이 떨어지는 녀석인데, 일이 한참 바빠지면 신경이 곤두서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 녀석이 화풀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농후하다. 나이 어리고, 귀염성 있어서 잘 풀어질 것 같은 타입이기 때문에... 그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녀석이 눈에 띄는 거다. 일에 감이 떨어지는 녀석이라 남들보다 더 움직여도 가끔은 밉보일 것 같다. 그런 녀석에게 나쁜 놈이라고 하면 못쓴다. 그런 놈이 일 때문에 날 필요로 한다니 한 순간 기분이 착찹해졌다.
거의 6개월은 같이 보내면서 알아온 이들과, 그리고 겨우 한달을 일하면서 일을 가르친 두 놈 때문에 3월 한달 너무나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을 맞아서 일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시켜본 것, 감이 떨어지는 놈을 가르치기 위해 그 한 녀석 때문에 한번에 할 일을, 두번 세번 반복해야 했던 것, 착 하면 척하고 알아드는 놈 너무 일 열심히 하지 않도록 쉬게 하려 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생님을 하면 애들을 아주 잡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칠 때는 아주 무섭게 가르친다. 협박이라는 것도 하고,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옆에서 계속 시범을 보이는 것도 있고,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될때까지 반복하는 독한 면도 있다. 가끔은 '나쁜 놈, 무거운 것도 안들어주고.'하면서 우스게 소리도 하고 속도 박박 긁어가며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 한달 후에 떠난다고 생각하니 나 없이도 잘 돌아가게 제대로 일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메니저님이 하실 일인데 말이다. 하여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버리는 것도 내 성질에 있나보다.
성질 괴팍한 나와 같이 한달 동안 일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부드럽지 못해서. 가끔은 독기를 부려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고 싶다.
IP *.72.153.12
식당 서빙인데, 사람들이 좋아서 행복하게 했다.
물론 먹는 장사하는 데니까 마음껏 먹는다는 것, 그것도 큰 행복이다. 오늘은 점심이 좀 부실하긴 했는데... 쩝.
마지막 순간에 배가 고팠다. 밥을 한그릇 다 비우고 났는데, 맞은 편에 앉은 녀석이 속을 긁어댄다. 갑자기 배가 확 고파졌다. 한 그릇으로는 부족해서 삽겹살 몇 점을 더 줏어먹고 있는데, 내일이 금요일이어서 대청소 하는 데 내일 안나오면 어떡하냐고 하루만 더 나오라고 한다. 청소해야 하는데, 나 없으면 더 힘들다고. 딴 사람 나오다고 해도 그래도 일에 필요하니까 나오라고 하는데...
이걸 이쁘게 봐줘야 하는지 먹던 삼겹살을 던져야 하는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그놈 얼굴로 날릴까 하다가 협박만 하고 말았다.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다. 일을 잘해서만이 그곳에서 인정받는 존재라면 난 슬퍼질 거다.
같이 일하던 주방 식구들과 서빙하던 언니들과 메니저님과 영양사님이 서운해한다. 언제든 다시 오라고.
다행이다. 재미나게 잘 살았나보다.
정말 재미났다. 따뜻한 사람들과 따뜻하게 잘 보냈고, 따뜻한 밥 먹으면서 잘 지냈다.
삼겹살 던지지는 것은 그냥 애교다. 일터에서 그녀석이 제일 감이 떨어지는 녀석인데, 일이 한참 바빠지면 신경이 곤두서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 녀석이 화풀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농후하다. 나이 어리고, 귀염성 있어서 잘 풀어질 것 같은 타입이기 때문에... 그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녀석이 눈에 띄는 거다. 일에 감이 떨어지는 녀석이라 남들보다 더 움직여도 가끔은 밉보일 것 같다. 그런 녀석에게 나쁜 놈이라고 하면 못쓴다. 그런 놈이 일 때문에 날 필요로 한다니 한 순간 기분이 착찹해졌다.
거의 6개월은 같이 보내면서 알아온 이들과, 그리고 겨우 한달을 일하면서 일을 가르친 두 놈 때문에 3월 한달 너무나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을 맞아서 일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시켜본 것, 감이 떨어지는 놈을 가르치기 위해 그 한 녀석 때문에 한번에 할 일을, 두번 세번 반복해야 했던 것, 착 하면 척하고 알아드는 놈 너무 일 열심히 하지 않도록 쉬게 하려 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생님을 하면 애들을 아주 잡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칠 때는 아주 무섭게 가르친다. 협박이라는 것도 하고,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옆에서 계속 시범을 보이는 것도 있고,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될때까지 반복하는 독한 면도 있다. 가끔은 '나쁜 놈, 무거운 것도 안들어주고.'하면서 우스게 소리도 하고 속도 박박 긁어가며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 한달 후에 떠난다고 생각하니 나 없이도 잘 돌아가게 제대로 일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메니저님이 하실 일인데 말이다. 하여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버리는 것도 내 성질에 있나보다.
성질 괴팍한 나와 같이 한달 동안 일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부드럽지 못해서. 가끔은 독기를 부려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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