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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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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3일 13시 47분 등록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원회귀의 개념에 부쳐


니체는<즐거운 지식>에서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밤에 혼자 있을 때, 악마가 나타나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당신의 인생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가감도 없이 모든 고통과 기쁨마저도 똑 같고 심지어 크고 작은 사건까지도 똑같이 일어나는 인생이 반복된다면? 그럴 경우, 우리는 어떨게 할 것인가? 절망에 빠져 울 것인가. 아니면 정말 좋은 일이라고 감격할 것인가.

이런 가정적인 이야기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무엇이든 일어난 일은 이미 과거에도 수없이 똑같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영원히 똑같이 일어날 것임을 뜻한다. 즉 우리는 과거에 이미 현재의 삶을 무수히 살았고, 미래에도 수없이 같은 생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영원회귀에 대한 개념은 입증된 진리라기 보다는 ‘사고 실험을 위한 하나의 가설’이다.

내 경우로 돌아가 본다. 어떤 가감도 없이 내가 지금까지 산 인생이 반복된다면, 크고 작은 사건까지 똑같이 반복된다면, 아, 그것도 이 생에서만이 아니고 다시 미래에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0.1초 만에 답이 튀어나온다. 그건 절망이다. 통곡하고 또 통곡할 일이다. 이 생뿐이라면,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만 이라면, 뭘 모르고 당하면서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위로할 수 있다. 그 다음 생에 혹은 남은 생에 그 삶을 보상받을 기회가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의 내 힘든 인생(지금까지의 인생)이 다시 반복된다면 그건 정말 no thanks 다.

이 시점에서 내가 인생을 돌아보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기회가 내 앞에 남아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도 없이 내 인생은 운명지어진 것이고 내가 노력하고 노력하지 않은 것 역시 예정된 일이며, 그런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태어난 것을 결코 축복할 수 없으리라.

작년과 올해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내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나는 힘들었던 일까지 ‘일어날 일들이 일어난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고, 정리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힘겨운 인생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강팍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긍정할 힘이 내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긍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창조적 혐오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만약 나의 의지는 싹둑 잘려나간 채, 앞으로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이 가설이 진실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살아온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과 그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내게도 돌아보면 좋은 일이 많았다. 그러나 좋은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았고, 납득할 수 있는 일보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도 있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더 많았다. 결혼 이후엔 더 그랬다. 나만 통제하고 살면 되던 단일의 관계 구조가 갑자기 복합 관계 구조로 재편되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실종되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가 요구하는 수많은 의무와 책임들이 들어섰다. 나는 그저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다중의 책무와 함께 힘겨운 시간들을 감당하기에 바빴다.

미리 청사진을 펼쳐 보이며 ‘네 결혼 생활이 이렇게 전개될 거야’ 라고 말해준다면 과감히결혼을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앞 날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기에, 모르는 채 당하는 것이 인생이기에, 거기에 장미빛 환상까지 양념으로 얹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길을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걸아가보는 것이다. 결혼 보다 더 우리 인간을 배신하는 것이 있는가. 암튼 내 경우에는 결혼은 장미빛 환상으로 시작해 살벌한 핏빛 현실이 되었다. 끝까지 장미빛이기를 원하는 끈질긴 허영이 내 자신에게 요구한 건 그만큼의 혹독한 희생이었고, 나는 여전사처럼 싸워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이런 나의 20년 인생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주었다. 나 역시, 무척 많은 것을 배우게 한 가혹한 학교였다고 자위하며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밤 중에 악마가 붉은 미소를 지으며 ‘그 삶을 다시 살라’고 한다면, 아니 ‘너의 그 삶은 다시 반복될 거야’ 라고 한다면, 아, 난 어쩔 것인가. 그건 악몽이다.

오늘 아침, 이 주제에 대해 끊어졌던 생각을 다시 이으며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그것은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가설이 오히려 삶을 더 잘 살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라면 우리가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예정에 있는 일일 것이다. 이 말은 가만히 있어도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말과는 다르다. 좀더 노력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바꾼다면 결과론적으로 볼 때 그것 역시 우리의 운명이고, 그렇게 바꾼 삶은 다시 반복되더라도 좋은 삶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영원회귀라는 개념은 인생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약 오늘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이 행동이 영원히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면 좀 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니체가 정말 원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이런 류의 생각에는 정말 많은 논쟁의 여지가 숨어있다는 걸 느낀다. 논쟁은 내 관심사가 아닐 뿐더러, 어느 특정 논점을 이끌어 갈 만큼 해박한 지식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오늘을 살아서 내일 조금 더 자유롭게 세상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뭐 그리 복잡한 생각이 필요하겠는가. 미욱한 인간의 머리로 증명해낼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 우리는 신을 의지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 겸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봄의 나른한 기운이 내 생각의 고리를 잡고 바람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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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13 16:24:33 *.52.236.185
문장의 장단이 있어,

글이 잘 읽혀요.

리드미컬하게.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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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4.13 18:25:24 *.248.75.5
칭찬이죠.
감사합니다.

그대는 누구신가요, 커밍아웃하시죠,
'드러내고픈' 글로 연구원들 놀려주려는 의도가
개구쟁이의 그것처럼 그대에게 있다면 혹여라도..
face to face 얼굴 한 번 보고 싶군요..
좋은 칼은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그대에게서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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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나
2008.04.15 23:30:59 *.92.140.235
저 또한 같은 삶이 계속 반복된다면 no thanks 일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내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요.ㅋㅋ 이것 저것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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