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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2008년 4월 13일 16시 40분 등록
그러면 우리들은 나무처럼 사랑할 텐데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할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아와레; 연민(憐憫) Gentle Sympathy> 12세기 일본의 궁정시(宮廷詩)



얼마 전에 조셉 캠벨이 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었습니다. ‘비교 신화학’에 관한 책입니다. 이런 책을 왜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겠습니다. 비밀. (하하) 위에 옮긴 시구(詩句)는 그 책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예쁘지요?

예전부터 시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시는 산문이 낑낑대야 할 것들을 단숨에 해쳐냅니다. 시는 글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것이고,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면 그림이 갈 수 없는 곳까지 훨훨 날아갑니다. 시는 글보다는 노래에 가까운 것이고, 가슴 속 무도회장을 내어주면 강렬한 탱고를 춥니다. 시는 글보다는 향기에 가까운 것이고, 담아 두었다가 톡톡 두드려주면 끊임없이 퍼져나갑니다. 시는 글보다는 형상에 가까운 것이고, 품 안에 끼고 문지르면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문예, 미술, 과학을 맡은 여신)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줍니다. 시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독자의 노리개입니다.

이 시를 읽고……
어떠한가요?
사랑이 날아드나요
초록빛 숲의 노래가 들려오나요
태양이 이글이글 탱고 춤을 추었나요
온유함이 코끝으로 퍼져오나요
부드러움과 뜨거움이 만져지나요
저는 이 시를 품 안에 끼고 문지르니까 뮤즈가 나타나, “옜다! 영감(flash)이다!” 하고 소원을 들어주던데.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은 역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에 열광하나 봅니다)

큰 나무가 있습니다. 밑동은 세 사람이 크게 팔을 뻗어야 겨우 닿을 만합니다. 나무는 5층짜리 아파트보다도 높습니다. 곧게 솟은 기둥에는 빽빽하게 가지가 뻗어나가고, 새로 뻗어나간 가지에는 더 작은 가지, 새 순, 나뭇잎 따위가 시끄럽게 모여있습니다. 주변의 풍경은 만화처럼 깨끗합니다.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틀림없겠습니다. <미래소년 코난>이나 <천공의 섬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따위의 만화들처럼 동그랗고 색감 있게. 물론, 나무의 몸뚱이와 초록 모자도 미야자키 식입니다.

준비 다됐습니다. 그 상태로 5초간 멀리서부터 클로즈업.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 들리고. 달팽이 기어가고, 지렁이•애벌레•누에고치 따위들은 신나는 댄스. 이따금 솟아 있는 풀들•꽃들은 하늘하늘거리고. 소년들은 한쪽에서 미꾸라지 잡느라 한창. 자, 스탠바이? 액션!

짹짹. 구구. 삐익 삑. 호잇. 호잇. 새들이 날아듭니다. 수 십 마리가 무리를 지었다가 흩어집니다. 어떤 녀석들은 조용히 숲 위를 선회하고, 좀 더 촐랑이는 놈들은 낮게 고공비행을 펼치며 먹이 감을 노립니다. 돌 뿌리에 기대어 옷 매무새를 만지는 놈도 있고, 총총 걸음으로 먹이를 찍는 놈도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30분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다시 큰 나무로 클로즈업) 나무는 어느새 태양을 등지고 좋은 그늘을 품어두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많진 않지만, 어떤 녀석들이 그곳으로 가만히 깃듭니다. 가지가 됐든, 바닥이 됐든 아무렇게나 자리를 폅니다. 어떤 놈들은 밑 동을 쪼아대며 장난을 치고, 어떤 예의 없는 놈들은 똥 오줌을 싸지릅니다. 나무는 그게 좋습니다. 많진 않지만, 어떤 녀석들이 제(나무)가 제(새) 것인 양, 휘뚜루 날아드는 것이. 나무가 웃습니다. 사라~앙 하며.



“나는 왜 나무처럼 사랑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

언젠가,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열심히 사랑을 해야지. 열심히.” (동문서답)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는 아주 훌륭한 대답을 한 셈입니다. (옆에 있었으면 새삼스레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었을 텐데.) 사랑에 대한 미사여구들이 많지만, ‘열심히’ 라는 부사만큼 사랑을 ‘위대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전에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이프 온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남녀 중에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쪽보다 상대를 덜 사랑하기 마련이다. 아니, 덜 헌신한다고 표현하자. 그러면 당연히 더 헌신하는 쪽과 덜 헌신하는 쪽간의 갈등이 생기는데, 덜 헌신하는 쪽은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게 되고, 더 헌신하는 쪽은 이 상황을 애타한다. 덜 헌신하는 자여! 그러지 말라! 그건 사랑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무지한 자여! 그에게 최선을 다하라!” (이건 순전히 제 식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제작자의 의도는 이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따금 책과 시와, 사진과 영화와, 사람들과 풍경은 거울이 되어줍니다. 이들의 사연을 나대로 읽다 보면, 그 속에서 어느새 우리네의 사연이 읽힙니다.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숨은 생각들이 열리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화들짝 놀라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벌거벗은 우리의 이야기가 거울 속에서 온통 쏟아지고 있는걸요.

그 날도 그랬습니다. 어쩌다 거울 앞에 섰는데, 그 속엔 괴물이 되어버린 멍청이가 멋쩍어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더군요.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날 저는, 반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에로스를 넘어, 애정•우정•아가페 따위의 모든 사랑을 함에 있어 저의 태도는 ‘무지함’ 그 자체였기에. 오히려 더 헌신하는 쪽이 되어야, 더욱 행복해지는 것을 전에는 왜 몰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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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4.13 18:30:15 *.248.75.5
좋은 글입니다. 감각적인 당신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칭찬도,글도, 사랑도 다 허사입니다.

헌신도 나를 세운 다음,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상처로, 앙금으로 쌓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은 이 세상 최고의 미덕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퍽퍽한 이 세상을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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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14 08:39:12 *.52.236.185
지당하십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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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政
2008.04.17 17:59:01 *.196.165.198
나무는 어느새 태양을 등지고 좋은 그늘을 품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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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구구. 삐익 삑. 호잇. 호잇. 새들이 날아듭니다.
나무가 웃습니다. 사라~앙 하며.

언젠가 남편에게 당신은 다음생에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은적이 있었지요. 그는 스스럼없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가 내게 물었어요 당신은 어떠냐고... 난 새가 되겠다고 말했지요.

남편은 큰나무가 되어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나무그늘 아래 기대어 쉴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자기를 찾아 주면 좋겠다 했지요.

난 새가 되어 늘 당신 곁에서 제잘거리며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을 했지요.

그말에 남편은 환한 웃음을 저에게 선물로 주었답니다.

그렇게 나무는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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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18 08:56:27 *.37.188.12
행복해보이세요. ㅎ

사랑이 좋긴 좋아요 ~

그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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