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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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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5일 00시 08분 등록
난중일기를 읽다가 한 부분에서 눈물이 흘렀다.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다. 몸이 아파서 그런가. 1596년 윤8월 12일과 13일의 일기이다.

12일 맑다. 하루 내내 노를 빨리 저어 밤 10시쯤 어머니가 계신 곳에 당도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숨이 끊어지는 듯하시는 모습이 하루하루를 지탱하시기도 어려운 듯하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서 밤새 위로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풀어 드렸다.

13일 맑다. 어머니를 모시고 옆에 앉아 아침 진지를 올리니 대단히 즐거워하시는 빛이었다. 늦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오후 6시쯤 작은 배를 타고 밤새 노를 재촉하였다.

윤8월 11일부터 순신은 순천에 온 체찰사 이원익을 수행하여 관할부대를 순시하게 되는데 순천으로 가는 길에 하루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뵈러 간다. 순신은 오랜 만에 어머니를 뵈러가는 마음에 들떠 배를 빨리 몰았다. 8월 한 동안 바람이 사나워 배가 드나들지 못한 탓에 어머니의 안부를 듣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어머님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노심초사했다. 오랜 만에 어머니를 뵙고 지극한 마음으로 진지상을 올리는 순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급히 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또한 얼마나 기쁘셨을까.

당시 그의 어머니는 수군의 본영인 여수 근처 고음내에 기거하고 있었고, 순신은 수군의 주력 부대와 함께 한산도에서 지냈다. 꿈에만 그리던 어머니와 하루를 보낸 순신은 밤새 배를 몰아 체찰사를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향한다. 사적인 일로 인해 공무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596년 10월 순신은 어머니를 위해 벼르고 벼르던 잔치를 벌인다. 같은 해 어머니의 생신(5월 4일)을 챙기지 못했던 그였다. 10월 3일, 6일, 7일, 8일, 9일의 일기를 조금씩 옮겨 본다.

"새벽에 배를 돌려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일행과 더불어 배를 타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하루 내내 즐겁게 모시게 되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흥양 현감이 술을 가져왔다."

"비바람이 크게 일어 오늘은 잔치를 차리지 못하고 이틀날로 물렸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위해 수연(壽宴)을 베풀면서 하루 내내 매우 즐겁게 보냈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니 매우 다행스러웠다."

"하루 내내 어머니를 모셨다. 내일 진중으로 돌아가는 것을 어머니께서 퍽 서운해하시는 기색이었다."

1596년 어머니는 80세를 맞았다. 생신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의 짐이었던 순신은 큰 마음을 먹고 여수 본영에서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잔치를 연다. 7년 간의 조일전쟁 기간 중 이 시기가 순신과 어머니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1596년 10월 11일을 끝으로 다음 해 3월 31일까지 일기가 빠져 있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느 기록에서도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만났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순신은 1597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어 서울로 끌려 올라가 3월 4일 하옥된다. 그 후 28일 만인 4월 1일 옥문을 나서지만 4월 13일 순신은 백의종군을 하기 위해 떠나는 길 위에서 어머니의 부음(訃音)을 듣게 된다. 그의 슬픔과 통곡은 여기 다 적을 수 없다. 전해에 수연마저 해드리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난중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장군의 일기를 읽으며 한 친구를 생각했다. 그녀와 이순신 장군은 상관이 없건만 왜 일까? 읽는 내내 그녀가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내 마음이 그래서 일 것이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술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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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15 01:23:09 *.36.210.80
어제 나는 남자 후배(싱글이고 사유는 모름. 절대 불륜적 만남이 아님을 밝혀둠.^^ 나는 내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깨끗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함.^^ 해서 자격도 못 갖춘 너절한 것들이 함부로 엉기는 것에 대해서는 농담도 불쾌하게 생각함.^^)와 영화를 보았다. 몇 번 만난 적은 없는데 아주 간간히 가끔씩 연락을 해오는 알 수 없는 친구다. 그리고 꼭 내 일을 거론해 가면서 만났을 뿐이다. 두 어번 식사에 간간히 전화를 받았을 뿐인데 그가 물고 오는 일이 수락할 조건이 되지 못해 안부 전화로 끝을 맺고는 하고 말았었다.

결론은 이걸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정말로 내 자신이 묘했다. 언제부터인가 특히 요즘에는 전혀 조금이라도 이성으로 인해 아무런 가슴이 뛰지도 않고 상상조차 해봐 지지 않으며 그저 아이들 생각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대목에서 부터인가 울기만 했다. 가끔은 내가 절의 공양주나 수녀원으로 가야 하는게 아닐까를 이따금씩 생각해 보기도 한다. 크하하.

나는 연구원 과정을 통해 나의 본성을 찾기에 많은 노력 중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정말로 어떤 이성에게도 관심이 없다. 예전에는 일부러 그러한 자리를 피해오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이미 늙어 버렸나? 연구원에 몰입하기 전 한때 이렇게 늙어 병들다가 겨우 죽어가게 되는 걸까 혼란스러움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마음이 방황을 했던 적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의 꿈 같은 좋은 장면을 보면서도 내내 내 아이가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 저녁을 하도 꾸역 꾸역 오래 많이 먹어서 더 이상 참지 못한 그가 내게 "선배, 이제 제발 그만 좀 먹어요." 하며 쿠사리까지 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줌마는 원래 배부른 것은 참아도 아까운 것은 못 참아 했다. ㅎㅎㅎ

아우야, 그대는 아마도 그녀를 몹시 사랑해서 아픈가보다. 나는 내 안에 이렇게 아이들이 꽉 들어차 있는 줄 잘 몰랐었다. 그저 나쁜 어미라고만 생각하고 살았거든.

나는 언제나 맑게 흐르는 내 눈물의 의미를 아주 잘 새기고 싶다.

고얀 놈, 너 땜에 나도 따라 울고 말았다. 빨리 나아서 밥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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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2008.04.15 09:34:29 *.180.231.71
맘 편히 먹고, 마이 먹고, 마이 우세요. 눈물을 버리는 것도 약 됩니다.
요즘 몸살기는 오래가는데, 술 마시면 더 고생합니다.
컨디션 좋아질 때까지 금주 하세요.

시간 나면 술 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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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4.15 10:00:52 *.209.27.89
함장님의 강단있는 몸을 떠오르게 하는 댓글이로군요.
"눈물을 버리는 것도 약이 된다"
ㅎㅎ 이제부터 제가 가져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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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008.04.15 23:56:34 *.21.188.39
승완이 많이 아픈가 보구나.

5월 꿈벗 모임에 맞춰 휴가를 내었다.
넉넉하면서도 살짝 빈 것 같은 네 웃음이 보고 싶구나.

몸 잘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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