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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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어,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밥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진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시 전문,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번역, 시집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1964) 중에서)
******************************
나는 이 시를 만년필로 옮겨 적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내가 소년이었던 그때로. 문명 이전으로, 알지 못하는 세계, 그러나 꿈으로 가득했던 내 인생의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아무 것도 나를 막지 못했다. 그저 한 순간에 단 한걸음으로 그렇게 왔으니까.
시는 놀라운 기쁨으로 내 의식을 나르는 타임머신이다. 알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 가득한 곳에, 마치 되 돌아오듯, 그때 그곳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휘휘 둘러 본 다음 다시 지구로 돌아오듯, 가기 전의 지구와 다시 돌아 왔을 때의 지구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땅 그 하늘이 전과 달랐다. 나는 이 봄 도화꽃잎 떠가는 강물이 되어 흐르는구나.
네루다는 나를 남미처럼 뜨겁게 달구어 줍니다. 가장 처음 만난 그의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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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저서에서 아래의 이런 글귀를 적어내려 가셨었죠.
자기를 경영하고, 사람을 경영하는 '변화경영의 시인'.. 선생님의 버킷리스트! ^^
==============================================================
변화 경영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물처럼 흘러 바다를 향하는 작은 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 그러나 하류로 흐르면서 더 많은 물을 품고 더 낮아지고 유장해져 바다에서 다른 강물들과 만나는 삶, 나는 그것이 변화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 명함에는 ‘변화 경영 전문가 ’ 구본형‘ 이라고 적혀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나와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내 직업의 이름이다.
그러나 쉰 살의 중반을 맞아 나는 ’변화경영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 전문인에서부터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과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나이가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평화를 지향하는 노년은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왜 시인이 되고 싶은 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시적인 삶,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사람들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자기를 경영하고, 사람을 경영하는 '변화경영의 시인'.. 선생님의 버킷리스트! ^^
==============================================================
변화 경영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물처럼 흘러 바다를 향하는 작은 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 그러나 하류로 흐르면서 더 많은 물을 품고 더 낮아지고 유장해져 바다에서 다른 강물들과 만나는 삶, 나는 그것이 변화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 명함에는 ‘변화 경영 전문가 ’ 구본형‘ 이라고 적혀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나와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내 직업의 이름이다.
그러나 쉰 살의 중반을 맞아 나는 ’변화경영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 전문인에서부터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과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나이가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평화를 지향하는 노년은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왜 시인이 되고 싶은 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시적인 삶,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사람들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써니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진한 지혜;
.
.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바람에 풀린 사부님은 곧 우주와 삼라만상과 신비의 절대자와 도화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날에 낮술을 한 잔?
“진정한 상징은 단순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의식을 깨워 생의 내적 의미와 실재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가 담겨 있다. 진정한 상징은 주변의 다른 곳이 아니라 원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의 깊은 자아, 타인, 신과 사랑을 나누며 의식적으로 교섭한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사실 상징이 죽었다는 뜻이다.” 304p <조셉 켐벨/ 신화와 함께하는 삶>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진한 지혜;
.
.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바람에 풀린 사부님은 곧 우주와 삼라만상과 신비의 절대자와 도화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날에 낮술을 한 잔?
“진정한 상징은 단순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의식을 깨워 생의 내적 의미와 실재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가 담겨 있다. 진정한 상징은 주변의 다른 곳이 아니라 원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의 깊은 자아, 타인, 신과 사랑을 나누며 의식적으로 교섭한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사실 상징이 죽었다는 뜻이다.” 304p <조셉 켐벨/ 신화와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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