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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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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2일 15시 06분 등록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중에서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시경(詩經) 中 ) -

소설가 공지영 선생님이 자신의 책에 인용하신 시 입니다.
강렬한 느낌을 가진 시여서 제가 제일 좋아합니다.
IP *.67.5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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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22 16:35:44 *.36.210.11
근 20년 쯤 전인가(?)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책을 읽었더랬죠.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랬죠. 그런데 아무나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애착을 떼어내라고 위의 시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는데 살아오면서 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 부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사랑을 둘러싼 모든 것들...108 번뇌라고 해야 할까요? ㅎㅎ 또 그게 빠지면 무슨 맛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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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4.22 20:34:12 *.206.243.28
저번 주 토요일에 제가 알고 지내는 분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지 10분 뒤에 제가 찾아뵙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어나 보시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갈애와 집착을 떼는 것이 범부중생이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갈애와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알음알이라도 알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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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23 07:20:27 *.244.220.254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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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5.02 02:25:27 *.39.173.162
저는 이 시를 최인호님의 [길 없는 길]에서 보고 노트에 적어 놓았드랬습니다. 1994년도로 기억되는데요.
지금도 마지막 구절은 제 좌우명처럼 왜고 다닙니다.
너무나 반가운 글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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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정
2008.05.02 22:01:59 *.153.195.165
저는 이 시가 이렇게 긴 줄 처음 알았네요.
이십대 초반, 여성학에 관심이 많아 공지영씨의 소설을 꽤나 열심히 읽
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학과가 흔치 않아 결국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제 이십대엔 이 시처럼 살고자 했으나 지금은 두리뭉실 사람과 어울려서
화가 나면 화가나는대로 웃고 싶을땐 맘껏 웃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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