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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7일 23시 14분 등록
매우! 신비로운 이야기



요즘처럼 사람들의 기호가 분명한 시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빠른 것, 명쾌한 것, 재미있는 것, 쉬운 것에 열광합니다.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가령, “자 이제부터 철학, 종교, 신화에 대해 차례로 알아보지요” 라고 하면, 슬금슬금 꼬리를 감추며 꽁무니를 뺄 사람, 아주 많을 겁니다. 그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태산일 뿐 아니라,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쉽고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말입니다. 굳이 고리타분한 구닥다리(?)들에 정력을 소모할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문명의 출현 이후,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그게 바로 철학, 종교, 신화로군요. 인류는 왜, 이렇듯 답답하기 그지없는 형이상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그뿐인가요? 역사상 가장 지각 있는 사람이라 일컬어졌던 위인들의 대부분이, 이 분야에 헌신했다는 것은 또 왠 말입니까?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공자, 노자, 부처, 성 어거스틴, 성 바오로. 그야말로 인류 최대의 자산이라 할 분들은 모두 이 분야에서 발굴된 셈입니다. “복잡해. 따분해. 어차피 답도 없어.” 하며 터부시 해버리기에는 오히려 그 뿌리가 너무 거대하지요?

예전에 ‘누미노제’라는 개념을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C.S. 루이스가 쓴 <고통의 문제>에 소개 된 개념입니다.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누미노제’는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가 명명한 것으로, ‘공포의 대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학창시절에 많이 들어봤던 무서운 이야기를 떠올려보지요. 무서운 이야기는 크게 세 종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깜짝 놀래 키는 것. 2)스토리를 가진 것. 3)”네 뒤에 귀신이 있다” 처럼 유령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시킴으로써 으스스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누미노제’는 그 중에서도 마지막 타입에 해당하는 경험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지금 내 뒤에 영적인 존재, 유령이 있다” 는 생각을 해보세요. 이것은 강도가 칼을 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른 두려움입니다. 으스스함 뒤에 찾아오는 일종의 경외감. 어느 곳으로 숨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력한 기운. 이렇게 등줄기 어디에선가 스르르 찾아오는 소름 돋는 절망감이 바로 ‘누미노제 경험’의 핵심입니다. 특별히 장례식장에 가면 우리는 ‘누미노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특별한 두려움을 계시하지요. 영(靈)적인 존재를 감지하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운 신비. 공포를 넘어 경외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이런 느낌은 ‘누미노제’의 존재감이 전하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지요.

C.S. 루이스는 이런 ‘누미노제’의 경험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인간 정신의 비꼬인 부분에 불과하거나, 조물주가 피조물의 정신에 새겨 놓은 직접적인 경험, 즉 ‘계시’라고 불러야 마땅한 경험” 이라는 것이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조셉 캠벨이 <신화의 이미지>에서 쓴 것처럼, “우리들이 스스로 믿는 바, 우리는 어떤 고결한 신비의 반영이다” 라는 것입니다.” 좀더 캠벨식으로 쓰자면, 세계를 아우르는 우주적인 에너지(누미노제)가 인간의 무의식 심연을 향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따분해했던 철학, 종교, 신화의 실체가 바로, 그 우주적 에너지의 작용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건드리면 우리는 ‘꿈쩍’ 하는 식이지요.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가장 지적으로 반응하려 했던 것이 철학이고, 그 다음이 종교, 그리고 가장 신비적으로 반응한 것이 신화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신비로운 이야기를 해보지요.

비로소, 신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아~ 따분하게 무슨 신화야” 하며 지레 멀리하거나, “요지가 뭔데?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신화?” 하며 어리둥절해 하시는 분들의 문제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신화가 과연 그런 것이었나?”를 조리 있게 증명해 내는 일이 되겠군요. 거침없이 가보죠.

비교 신화학의 거장인 조셉 캠벨의 주장에 따르면, ‘신화와 심리학과 꿈’은 강력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화의 상징 체계가 지닌 심리학적 의미를 감지해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 신화의 패턴 및 논리가 꿈의 패턴 및 논리와 일치한다는 발견 (…) 신화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 온 심리학이다. (…) 신화와 꿈은 같은 근원(환상이라는 무의식의 샘)에서 유래하고 그 문법도 동일하다.” 신화-심리학-꿈에 이르는 이 강력한 연결고리는 ‘신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지요.

큰 그림을 그려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꿉니다. 의식에 드러나든, 무의식에 감추어지든, 그것은 개인에게 남아 있습니다. 꿈에 대한 놀라운 비밀은, 사람들이 꾸는 꿈은 모두 동일한 모티프를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문명이 처음 발현하던 고대의 조상들이 꾸었던 그것과도 동일한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꾸는 꿈은 선사시대의 조상들이 꾸었던 그것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심리학의 추론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꿈, 상념, 착란 따위의 기능을 이용해 정신활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고대의 조상들이나 우리나 같은 정신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편, 세계의 신화들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재규어 신이 취하고 있는 자세와 아시아의 불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일치하고, 인디언들의 구전 신화 플롯이 유럽의 기사 전설 플롯과 일치하는 식입니다. 신화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예는 한 트럭이라도 가져다 댈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같은 꿈을 꾼다 2)인간의 무의식은 꿈을 통해 우리의 정신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3)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같은 정신활동을 한다 4)세계의 신화들은 유사성이 많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3)번과 4)번 항목을 연결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임을 파악했을 겁니다. 들어가보지요. 요지는 간단합니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서 기원한 정신활동의 표출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요상한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겼던 것은, 무의식에 심겨진 무언가가 꿈 따위의 통로를 통해 발현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세계의 신화가 그토록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모두가 같은 꿈을 꿔 왔으니, 그걸 토대로 한 정신활동(신화)도 비슷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꿈은 제 각각(재규어와 불상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무의식이 말하고자 했던 것(플롯)은 같은 것이었고, 그것이 제 각각의 형태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의미이지요.

책의 반 이상을 삽화로 꾸민 <신화의 이미지>라는 책에는 C.G융의 환자들이 꿈속에서 보았던 것을 그린 그림이 여럿 나옵니다. 놀랍게도 이 그림들은 고대 문명의 잔존인 벽화나, 그 유물들에 남아있는 문양들에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이 꾸는 꿈과, 선사시대 사람들이 꾸었던 꿈의 발현인 신화가 일치하고 있음이 증명된 셈이지요.

이 분야의 선배들은 신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 – 프레이저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 – 뮐러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 – 뒤르켐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 융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 – 쿠마라스와미
우주 에너지의 은밀한 통로 – 조셉 캠벨

새삼 말씀 드리지만, 이들의 정의는 놀랍도록 정확한 것이 아닙니까? 비교 신화학과 관련하여 여러 권의 책을 쓴 조셉 캠벨은 신화 이해의 큰 틀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세계의 신화들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둘째, 신화를 해석할 때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그 상징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들의 정의는 모두, 이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제 논의는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대개 그렇듯, 마지막이 가장 비중 있는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첫 번째 개념(유사성)은 책을 통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개념(상징)은 그렇지 못합니다. 두 번째 개념을 명쾌하게 하려면, 그 상징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짚을 수 있어야 하는데, 캠벨은 이것을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행간으로 읽혀지길 바랬던 걸까요? 아니면 그 상징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인도 잘 몰랐던 걸까요?

제가 읽은 바로는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책이 제법 상징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가 말하는 상징은 바로 ‘사랑’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찾을 수 있으며, 그 경험은 인간들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됨’의 깨달음을 준다는 것이지요. 내가 그인 양, 그가 나인 양,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캠벨에 따르면, 신화의 메시지는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되겠지요.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이 결론은 조금은 갑작스러운 것입니다. 내면에서 신을 찾는 다는 것과 그걸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됨’을 느낀다는 부분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갸우뚱해 하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신화가 이런 거였군. 근데 좀 거시기하네?”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좀더 보편적인 깨달음 쪽으로 결론을 가져가려 합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서겠다는 말입니다. “저도 상징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로 시작해보지요.

두 번째 개념(상징)에 대해 좀 더 파보겠습니다. 위에서 나열한 각 정의들이 담고 있는 상징의 의미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자연계가 의미하는 바’ ‘오인되지 않은 것’ ‘집단 귀속에의 가르침’ ‘심성 깊은 곳의 원형적 충동의 근원’ ‘형이상학적 통찰의 근원’ ‘우주 에너지’. 어떻습니까? 좀더 명확해졌습니까?

캠벨식의 표현을 한번 더 빌리자면, 이 상징의 근원은 소위 신이라 하는 절대 에너지의 의인화입니다. (오토 교수는 이것을 ‘누미노제’라 칭했지요) 세계 신화들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이 절대 에너지의 의인화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무의식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캠벨을 비롯한 많은 신화학자들은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갑작스럽고 엉거주춤합니다)

물론, 저 역시 이 에너지의 의인화가 하고 싶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를 명쾌하게 꼬집지는 못하겠습니다. (캠벨의 이유와는 다른 것입니다) (저의 입장은 기독교입니다) 자칫, 치우친 발언이 될 수 있을뿐더러, 이에 대해서라면 저보다 더 권위 있게 말해줄 수 있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다만, 한가지 사실 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그(God)가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즉, 무신론은 너무나 허무맹랑한 것임이 드러난 셈이지요. 무신론을 주장하려면, 우선 극명하게 드러난 신화의 메커니즘을 뒤집어 엎어야 할 테니까요.

인간의 영혼에는 신이(제 입장대로 표현하겠습니다), 자신을 섬기라는 증거로 무언가를 심어두었고, 인류는 그것을 철학, 종교, 신화의 형태로 표출해 왔습니다. 그리고, 신화는 매우 ‘신비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드러내었군요.




신화에 대한 또 다른 정의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 – 기독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IP *.52.23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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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01 09:52:27 *.36.210.11
깊은 통찰이시네요. 연구원 누구보다 열심히 책을 읽고 계시는 군요. 궁금해들 하던 걸요? 모른다고 했죠. 모르니까. 글이 좋으시네요. 누가 끼어들어 함께 물장구를 치나 했는데... 좋은 자극이 되겠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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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5.01 22:42:14 *.235.31.78
써니님이시군요. ㅎ
칭찬 감사해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저 역시, 써니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좋습니다. ㅎ
특별하게 쓰시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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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08.05.10 13:20:12 *.75.127.219
저도 켐벨의 책 몇권을 읽었습니다만 개구쟁이씨의 글을 읽고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지 지금의 우리의 삶과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집요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잘 읽었습니다.

저는 캠벨이 신화는 우주, 절대적인, 자연의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하였는데 왜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이토록 힘이 드나 하는 점에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저는 결국 인간은 일찌기 주위와 관계에서 의식을 확대 내지 형성시켜 왔는데 그것이 확 바뀌어서 즉 과거에는 자연과의 관계가 깊었는데 지금은 온통 인간끼리의 관계가 대부분이 되었으니 이를 읽어내기가 힘이 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좀 쉽게 해석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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