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 조회 수 4253
- 댓글 수 3
- 추천 수 0
바 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대학 1학년 때 나는 처절한 주변인이었다. 깊이를 모를(?) 내향적 성격에 작은 목소리, 자신없는 표정과 작은 체구까지. 주변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여러 필요 조건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고로 난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대학 1학년 때 친구조차 몇 명 사귀지 못하였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취미가 되어준 것이 바로 ‘작곡’이었다. 잘 못치는 기타실력이지만 그 기타를 가지고 콩나물 대가리를 만드는 작업은 나에게 큰 흥미와 창조적 작업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까지 안겨 주었다. 평소 시를 즐겨 읽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유치환의 이 시는 읽으면서 바로 ‘곡’으로 만들어보고픈 욕심이 일게 하였다. 그래, 나는 현실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아마도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며 느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풀어놓은 시의 내용이 당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과 친구녀석 중에 한 녀석이 이 ‘곡’을 상당히 좋아했었다. 그리 부르기 좋은 멜로디도, 듣기 좋은 화음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이 ‘곡’을 자기에게 달라고까지 하였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당시 힘들었던 상황과 대학교 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렴풋한 멜로디와 함께.
댓글
3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29 | 구부러진 길 - 이준관 [3] | 이지정 | 2008.04.26 | 7246 |
1928 | 이타카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6] | 늘픔 | 2008.04.26 | 6217 |
1927 | 행복 - 천상병 [3] | 최지환 | 2008.04.26 | 5108 |
1926 | 序詩 |윤동주 [2] | 바다보배 | 2008.04.27 | 3419 |
1925 |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10] | 백산 | 2008.04.27 | 4419 |
1924 | 이런 사람이 좋다 [1] | 김혜경 | 2008.04.27 | 3894 |
1923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1] | 춘희류경민 | 2008.04.27 | 4129 |
1922 | 일요일 아침에(아마추어의 번외경기) [3] | 창 | 2008.04.27 | 3415 |
1921 | 매우! 신비로운 이야기_4 [3] | 개구쟁이 | 2008.04.27 | 3842 |
1920 | Sea Fever [2] | Mar | 2008.04.28 | 3520 |
1919 | 뻘에 말뚝 박는 법/ 함 민복 [4] | 푸른바다 | 2008.04.28 | 4926 |
» | 바위/유치환 [3] | 양재우 | 2008.04.28 | 4253 |
1917 | ::충만한 힘:: 파블로 네루다 [3] | 사무엘 | 2008.04.28 | 4529 |
1916 |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적련선자 이막수) [4] [2] | siso | 2008.04.28 | 11275 |
1915 | 사랑스런 추억 [2] | 지희 | 2008.04.29 | 3843 |
1914 | 아내가 있는 집 [1] | 걷기 | 2008.04.29 | 3122 |
1913 |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 | 世政 | 2008.04.29 | 3670 |
1912 | 체로키 인디언의 축원 기도 [2] | 춘희류경민 | 2008.04.29 | 4505 |
1911 | 들어주세요 [2] | 하뜻 | 2008.04.29 | 3233 |
1910 | 아내의 봄비 / 김해화 [4] | 현제 | 2008.04.29 | 3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