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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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 2
< 1995.5 현대시 김리영 >
오후에 홍콩 무술영화를 보러 갔다.
옷이 찢기고
발목이 부러져도
지붕에서 뛰어 내리는 남자 배우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인생의 배역을 맡은 무대 위에서
목숨 걸고 연기 해 왔는가?
조금이라도 멍이 들까봐
난 언제나 움츠렸다.
스턴트맨 없이
하루가 간다.
깨어진 유리조각 위에서
매맞고 뒹굴다 또 일어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삶도 절찬 상영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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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후반에 시작한 나의 직장 생활이 벌써 십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과 내 뒤를 돌아보니 지난 세월 동안 이룩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남은 생에 대한 조바심이 느껴지던 삼십 중반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 마음이 조금 편할 것 같아 찾아갔다가 건진 시가 바로 이 시였다. 당시 이 시는 ‘지금까지 나에게 맡겨진 배역을 목숨 걸고 수행하기는커녕 스턴트맨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멍이 들까 봐 늘 움츠리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괴 하였고, 앞으로의 내 삶은 홍콩영화 속 주인공처럼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절찬 상영 중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들었다.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본 홍콩 무술영화 속 주인공인 외팔이 왕우가 그랬고 그 이후 이소룡, 성룡, 주윤발에 이르기까지 홍콩무술영화 속 주인공들은 옷이 찢기고 발목이 부러져도 분연히 일어서며 끝까지 싸워 승리한다. 그래, 대신해 줄 스턴트맨이 없는 우리의 삶은 오늘도 절찬 상영 중이어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영화 속 주인공들과 이 시를 함께하고 싶다. 우리 부서지고 넘어지더라도 일어나자.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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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건달 끼가 도는 오선배 무척 멋쟁이다. 이 시도 꽤나 멋이 있네요. 어쩐지 담배 연기 뻐꿈 대며 쓸쓸히 찬기운에 옷깃을 세우면서 길가의 포장마차 한 켠에서 안주 없는 깡소주를 들이키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네요.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의 인생에는 내 대신 맨몸으로 부서지고 까지도 째질 스턴트맨이 없지요. 부서지고 넘어져도 일어나지 못하면 그만 뚜.......뜨......ㄸ....... ㄷ.........ㅡ........ 0........ 0.........0......하고 말겠지요. 그래서 살아가는 한 언제까지라도 절찬 상영 중이어야 하겠지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아~~~자~~~짜자잔~ 짠! 짠! ㅎㅎㅎ
왠지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왠지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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