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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 08시 41분 등록
어느 동화 작가의 이야기(어른들을 위한 동화)_5




#2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방 한가운데에 구슬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구슬의 중심에서는 오색(五色: 청적황백흑)의 영롱한 빛이 표면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척 보아도 귀한 물건임이 틀림 없었습니다.

“이거 정말 귀한 물건인가 보오. 그 노인이 이걸 왜 줬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이걸 내다 팔아봐야겠소. 상당한 값을 매길 수 있을 것 같소.”
남편의 말에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당장 목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농에 넣어 두고 좀 지켜보도록 해요.”
남편은 부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흠…… 그럽시다. 시간이 지난다고 구슬이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당신 말대로 좀 지켜보는 것도 나쁠 거 없지.”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갔습니다. 이들 부부는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동화를 쓰고, 부인은 산에서 먹을 참을 준비하며 집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마루 걸레질을 끝내고 농의 먼지를 털던 부인은 구슬에도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져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먼지가 많이 쌓였을까.”

부인은 걸레로 구슬을 문질러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구슬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방이 온통 하얗게 빛났습니다. 부부는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초간 엄청난 빛을 내던 구슬이 잠잠해지자, 부부는 더욱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웬 기품 있는 신사가 부부를 향해 씨익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부르셨소? 허허허허.”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한 손에는 백과사전처럼 큰 책을, 다른 한 손에는 채플린의 지팡이처럼 짤막한 지휘봉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 왼편에는 은박을 두른 이름표가 예쁘게 붙어 있었습니다. 이름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Mr. Muse (미스터. 뮤즈)’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뮤즈라고 합니다. 고대부터 지금껏, 사람들에게 영감(flash)을 주는 일을 해왔지요.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돌아다니며 기발한 착상을 도와줍니다. 물론, 내가 사람들을 기다려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일이 과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줍니다. 번쩍! 하고 말입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공평한 편입니다. 되도록이면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영감을 받으려면, 반드시 내가 찾아갔을 때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껏 찾아갔는데, 딴청을 피우고 있다면, 그 영감이라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끔 특별한 일도 하곤 합니다. 바로 이번 같은 경우이지요. 이 구슬을 가진 사람에게는 저를 불러 낼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입니다.”
그의 고풍스런 지팡이는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구슬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동화를 쓰지요?”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더니 왼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을 겨드랑이에 끼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가만 있어보자…… 누가 있었더라…… 그래. 여기 있구먼. 2,400년 전에는 호메로스에게 갔었고, 500년 전에는 단테에게 갔었고, 100년 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근까지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있었지요. 셰익스피어 그 친구……. 얼마나 귀찮게 하던지…… 한번 불러 내면 보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허허. 좋은 친구였는데…… 어찌 되었든,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시겠소?”

부인은 아직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물었습니다.
“그럼, 저도 그런 대 문호들처럼 당신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겁니까?”
뮤즈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하루에 한 번 나를 불러 낼 수 있습니다. 물론 토요일, 일요일은 쉽니다.”
그는 점잖을 빼며 헛기침을 했습니다.
“끄으음.”
“당신이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당신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부어 줄 것입니다. 하루 종일 말입니다. 다시 말해 월화수목금 5일간, 당신이 쓰는 동안만큼은 계속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펜을 내려 놓으면, 나는 사라집니다. 다시 나를 보려면 다음날 새벽 4시에 구슬을 문질러야 합니다.”
남편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호!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요. 당장 작업을 시작해야겠어요.”
“허허. 당신이 좋다니 나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뮤즈의 눈이 번쩍였습니다.
“당신은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매일 새벽 4시입니다. 나는 1분 이상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는 방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단 하루라도, 저 시계의 눈금이 4시 2분을 지날 때까지 나를 불러내지 못하면, 당신은 영영 나를 볼 수 없게 됩니다. 잠깐이라도 좋습니다. 피곤하더라도 매일 4시에는 나를 불러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월화수목금. 4시입니다.”
“아하하하. 그럼요. 4시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시요.”
뮤즈의 말에 남편은 싱글벙글하며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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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01 10:13:15 *.36.210.11
"끄으음" 영감의 신 Mr. Muse의 강림은 월화수목금 매일 새벽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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