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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일 08시 43분 등록
어느 동화 작가의 이야기(어른들을 위한 동화)_5




#3
남편은 다음날부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전보다 1시간 이나 빨라진 것입니다. 전에는 매일 5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었으니까요. 새벽 단잠을 1시간 줄여야 하는 고통이 있긴 했지만, 뮤즈와 함께 하는 작업은 그 고통을 말끔히 씻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7시가 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펜을 내려 놓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꼬인 실타래가 풀려 나가듯 술술술 써지는데도,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펜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싫은 일인지…… 아마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렇게 매일 새벽마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장에 나가 나무를 팔고 돌아온 부부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방이며 주방이며 창고며, 온통 쑥대밭처럼 어질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둑이 든 것입니다!

망연자실해하는 부인을 뒤로 하고 남편은 황급히 농으로 달려갔습니다. 농은 아예 반쯤 부숴져 있었습니다. 물론 구슬은 이미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구슬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책상 위에 놔둔 원고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그 동안 써 두었던 원고는 그대로였습니다. 도둑은 책상 한 쪽에 쌓여 있던 종이뭉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한바탕, 태풍이 휘두르고 간 듯한 방 한쪽에 기대어 부부는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여유 있게 마실을 다녀올 즈음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얼른 치우십시다. 내일 나무하러 가려면 일찍 자야지요.”
남편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천천히 옷가지를 정리하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구슬 따위는 잊어버리세요. 어차피 생각해봐야……”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 구슬이 어떤 구슬인지 알아!”
남편이 날카롭게 소리쳤습니다. 부인은 깜짝 놀라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남편의 눈에는 토끼 똥 만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이젠 다 끝났어. 뮤즈는 가버렸다고.”
남편의 말에 부인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가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게 모야.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 줄 알아? 아…… 이렇게 떠나버릴 줄이야. 내가 처음에 습관 들이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남편은 부인에게 양껏 속 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습관이란 게 말이지…… 지금이야 꼬박꼬박 눈이 떠지긴 하지만, 처음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도 알잖아? 뮤즈 그 양반이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했어? 피곤한 몸 만들어서 일찍 자려고 일과 중에 내가 굳은 일 다했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7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 먹었지. 4시 정확히 맞추려고 20분씩 일찍 일어났지. 이게 어떻게 들여 놓은 습관인데……”
부부는 어느새 도둑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좋아했잖아요. 예전부터 글 쓰는 일이 좋았잖아요. 나무하러 가자고 하면 매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뜸을 들이고. 그 어려운 시간에 일어나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습관이 저절로 든 거 아니에요? 물론 당신이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남편은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흠…… 당신의 말도 맞아. 그런 것도 좀 있긴 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었으니까, 그 고통도 감수 할 수 있었던 게지. 게다가 조금 지나니까 그 고통도 사라지더군. 습관이 되어 저절로 일어나지는 거야.”

부부는 그렇게 전혀 엉뚱한 주제로 한참 동안을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3시 55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5분만 더 지나면, 뮤즈는 영영 불러낼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구슬이 있어야 뮤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터인데, 도둑이 구슬을 가져가 버렸으니, 도무지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부부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의 초침만을 쳐다 볼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째깍. 째깍. 띡! 4시 정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방 한 가운데서 구슬이 쏘옥 하고 튀어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치 호수에서 구슬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부는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부인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어서 구슬을 문질러보세요!”
남편은 구슬을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계는 4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푸쉬쉬수시쉐슈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빛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뮤즈가 나타났습니다.
“나를 부르셨소? 허허허허.”
뮤즈는 예의, 그 정겨운 목소리로 부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남편은 너무 기뻤습니다.
“아! 뮤즈다! 뮤즈야!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뮤즈도 웃고, 부인도 웃었습니다.
“허허허” “호호호”
“아하하하하”
남편과 부인과 뮤즈는 한동안 그렇게 웃음 꽃을 활짝 피우며 신나게 웃었습니다.

분위기가 정돈되고, 뮤즈가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요? 그리고, 집은 또 왜 이리 어수선한지요? 허허허.”
사실 뮤즈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왜 웃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부부가 자신을 보고 웃어 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함께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부부는 나무를 하고 돌아와보니 도둑이 들었다는 것, 구슬이 없어져서 슬퍼했다는 것, 그리고 다시는 뮤즈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해 했다는 것 등등의 지난 일들을 뮤즈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뮤즈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비밀을 이야기해주지요. 이 구슬은 절대 주인을 떠나지 않습니다. 주인이 먼저 구슬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이 구슬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새벽 4시가 되었는데도 문질러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때에는 구슬도, 나 뮤즈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뮤즈의 눈이 번쩍였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다른 걱정은 할 필요 없이, 그저 ‘4시’ 걱정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허허허허”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남편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즐겁게 동화를 썼습니다. 물론 뮤즈도 함께 말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끔씩 뮤즈가 방귀를 뀌어서 잠시 동안 대피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의 냄새는 정말이지 지독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남편은 뮤즈와 함께 쓴 첫 번째 동화 <못난이 아저씨>를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이 동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초대형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요? 과연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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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01 10:23:11 *.36.210.11
"푸쉬쉬수시쉐슈식" 그분의 소리, 음성, 움직임, 그리고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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