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홍스
  • 조회 수 4138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08년 5월 3일 02시 53분 등록
비단길 2
강연호

잘못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등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 앞의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 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꿀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1995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강연호님의 시집에서
비단길2을 보았습니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숨이 머질것 같았습니다.
한편의 시를 읽고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이시를 읽을 때 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IP *.39.173.162

프로필 이미지
구본형
2008.05.03 08:21:29 *.160.33.149

홍스,

나이지리아에서 돌아 온 것이냐 ?
아니면 시집을 싸 짊어지고 간 것이냐 ?
아니면 외웠느냐 ? (외운 것은 아닌 것 같구나. )

밥 잘 먹고 있느냐. 먼곳에서.
프로필 이미지
홍스
2008.05.03 19:12:09 *.39.173.162
사부님 아직 나이지리아입니다.
귀국은 아무래도 5월 20일 이후가 될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시와 글을 USB에 담아가지고 다닙니다.
가끔 꺼내보구요.
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냥 보고 느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밥 잘 먹고 있습니다.
한국인 주방장이 따로 있어서 된장국도 나오고 김치 복음도 나옵니다.
한국에서 보다 먹는 것은 더 규칙적으로 잘 먹고 있습니다.ㅎㅎ

연구원 숙제는 틈틈히 하고 있습니다. 5월 세번째 과제까지는 책을 같고 왔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이 없어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제일 큰 회의실이 있는데 저녁 9시 이후에는 사람들 발길이 뜸합니다.
그곳에서 책 옮겨적기도 하고 읽기도 합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큰 낙입니다. 인터넷은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는 조금 나아집니다. 그래도 접속하고 글까지 남기는데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재수 좋을 땐 빨라지기도 하구요. 로딩 시켜놓고 책 몇페이지 보면 됩니다. 한 30분쯤 기다리면 왠만한건 가능합니다..ㅎㅎ

근데 쉬는 날이 없는 것이 곤욕입니다.
이곳은 쉬지도 않고 일만합니다.
너무 비합리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몇개월째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돈이라지만 현명한 운영방식은 아닌듯싶습니다.

이번주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해 칼럼을 써볼까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8.05.04 09:47:19 *.52.84.228
홍스야 고생이 많다.

그래도 그 고생이 고생만은 아닐 것 같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너의 일상이 나에게는 뜨거운 연탄불 같은 느낌이구나.

안도현시인의 연탄이라는 시가 너의 모습에 겹쳐진다..
프로필 이미지
춘희
2008.05.05 01:26:17 *.111.241.162
멋있는 시다. 너의 그 숨 멎을 듯함이 느껴진다.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들고
그 길이 비단길이라니...
그렇게 비장하게 외치며 나아감이 숨을 멎게한다.

너를 닮은 시다.
너를 꼭 닮은 시다.
눈으로 읽지 않고 너의 목소리로 읽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미카엘라
2008.05.07 08:22:30 *.213.44.2
오빠...가슴이 조금 저려오는 시네요..
그리고 왜...눈물도 날까요...

프로필 이미지
이범용
2008.05.08 00:45:44 *.234.78.45
왜 형은 25에 이 시를 보고 숨이 멎을듯 함이 느껴졌을까?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을 것 같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였을까?

나도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학교때부터 좋은 글귀를 적어놓았던 노트가 한두권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져버렸고 작년 이맘때쯤부터 다시
노트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는데..최근엔 주로 복사를 해서 노트북에 끄적거리지.. 이 시..형이 가끔 꺼내보는 시...내 노트북으로 옮겨갈께..^^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