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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1일 20시 59분 등록

올해 여든이신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였다. 조촐한 팔순 잔치인 셈이다. 봄에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큰오빠의 생일이 들어있다. 큰 오라비는 이번에 환갑이 되었다. 이국 만리 타향 객지에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형제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이라도 시켜드리라고 경비를 보내와서 수행 요원으로 대동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시면 좋았겠지만 재작년에 미국여행을 다녀오신지라 이번에는 내가 꼽사리를 끼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많은 벌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약간의 일을 하고 계시고 철두철미하고 고지식한 성품 때문에 개인 사정으로 인해 상대편에 피해를 끼치는 일에 대해 한사코 마다하시어 주어진 일정에 공석이 생기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내게는 좋은 여행 기회가 주어졌다.

여행지는 어머니 연세에 맞추어 풍광 좋기로 유명한 중국의 계림지역 일대로 정하였다. 4박 6일의 일정을 따라 엄마와 단 둘이 국외 여행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태 그리도 만만한 짬이 없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중년 초에 접어들어 내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최근 10여 년간을 삶에 허덕거리게 되어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더욱 그리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 온다. 4남매 가운데 두 집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살고 있으니 얼마든지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막내로서 뒤늦게 외톨이가 되어 새로이 홀로서기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여 살다보니 두 분 함께 가시는 여행에 맞추어 따라 나서기도 쉽지 않았고, 내 형편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도 되는 듯 해외여행에 대해 남의 일인 양 생각지 않고 살기도 했다.

홀로서기 첫 해에는 앞으로 긴 여정의 혼자만의 삶을 이겨내기 위해 일종의 정신무장 같은 마음으로 2주간의 유럽 10개국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것이 최근까지 전부였다. 그러다 변화경영연구소의 3기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하계연수 차 작년 8월에 목적하는 프로그램과 활동이 있는 몽골여행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여행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가져보게 되었다. 그도 그렇기도 하려니와 이제 어느덧 인생 반평생?을 훌쩍 넘겨 살아오다보니 마음 한편에 삶에 대한 관조적 여유와 시선을 갖고픈 자각이 들기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언젠가 어느 사진작가가 “보지 못하면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하는 견해를 밝히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요즘 여행을 하면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우리의 상상력 혹은 창의력 이라는 것도 결국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무척이나 제한 적이고 단조롭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번 여행팀의 최고령자로 참여하신 어머니는 고단해 하시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남들 못지않은 투지를 발휘하시며 일정표에 맞추어 무리 없이 잘 따르시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서로 잘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고 인솔자와 가이드는 서로 다른 조합으로 이루어진 18명, 우리 팀원들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70대 이상 네 명, 60대가 4명, 4~50대가 7명, 30대 2 명, 9살 늦둥이 꼬마 한 명 이렇게 구성 되었다. 하지만 칠순의 노부부와 일흔 넷의 할머니 한 분을 제외하고 여든에 이른 분은 어머니 한 분 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더욱 긴장을 하며 팀에서 이탈되지 않으려는 듯 프로그램의 빡빡한 일정을 꼬박 꼬박 성실히 잘도 따라 하셨다.

가장 힘이 드는 것은 무엇보다 음식이었다. 워낙에 평소의 식습관이 채식 위주에 매식을 하지 않는 편인데다가 더군다나 중국 특유의 느끼하고 힘이 없는 안남미 쌀로 지어진 푸석푸석한 밥으로는 끈기가 없어 식사가 원할 치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식을 맛보고 느껴 보고픈 호기심도 적지 않으셔서 위장에 큰 탈 없이 잘 견디어 내셨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애써 앞장을 서서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림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봉우리를 오르내릴 때에는 스스로를 장하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나 여행을 하시며 내내 하시는 말씀은 “언제 또 오겠니?” 하는 말씀을 되풀이 하시곤 하였다. 내가 봐도 예전 같지 않으신 기력이시다. 가불가불 가불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그러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역력하니 말이다.

여행을 하며 내내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된다. 삼십대만 하여도 세상이 만만했고 기회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사십에 들어서자 마음은 더 바빠지고 아직 할 일은 많은데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어느덧 마음 같지 않은 틈들이 벌어짐을 느꼈다. 일을 하며 더 많은 부와 성공을 향해 가야 할 것 같았고 그래야만 안정된 노후에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은 더 바빴지만 어느덧 젊음은 뉘엿뉘엿 해거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언제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들을 하고 싶은 대로 누리며 살 것이라 기대하며 사는 동안 세월만 속절없이 화살보다 빠르게 흘러갈 뿐 좀 더 나아졌다고 해서 크게 변화되거나 달라지는 것도 별반 없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 속에 묻혀 지낼 뿐이었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몸도 예전 같지 않게 마음의 샘솟음처럼 생기를 유지하기보다 나이 들어감을 나타내고 있지 않던가. 나도 어머니처럼 언젠가 언젠가 마음속의 그날을 애타게 그리며 삶에 헐떡거리며 살다가 어느덧 세월의 덧없음에 떠밀려 가는 것이 고작이겠구나 하는 생각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생각지 않은 좋은 풍광과 경치를 보면서는 감탄을 뿜어내며 소녀 같은 신비와 황홀감에 젖어들며 가슴 팔랑거리지만 자신보다 힘겨워 보이는 삶을 대할 때는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하시며 당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반추하고 계신 듯하였다. 당신의 삶을 굳이 해피엔딩이라고 애써 믿고 싶기나 한 것처럼 마음 한 구석 쓸쓸함을 감추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셨으리라. 돈보다 형편이나 상황보다 시간을 내어 몇 달간 체력을 보강한 연후에 정말로 더 늦으면 느껴보지 못할, 세상 소풍 구경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눈감게 될지 모를 우리들의 여행을 좀 더 시켜드리고 해야겠다고 하는 다짐 절로 밀려든다. 어머니는 어느덧 더는 욕심 부리며 살고 싶지 않은 듯 “이번이 마지막이다. 언제 또 가겠니? 이만 하면 됐다.”를 마치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반복하며 되뇌고 계셨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치아들은 모두 내려 앉아 틀리로나 겨우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오망하게 뒤로 물러나 나자빠진 아래턱은 합죽 할미티를 절로 내고 있고, 눈은 뜨려고 해도 가물가물 가부러지며 축 늘어진 눈꺼풀은 눈알맹이까지 뒤덮으며, 시들지 않은 마음과 상상 속에서나 자유로울까 현상은 그저 고단함에 지쳐 보일 뿐이다. 내 보기에 그러하면 벌써 오래 전 당신의 몸 상태는 더욱 힘겨웠으리라. 이것이 보통의 대다수 우리들 인생이던가? 계림 지역 일대의 기후처럼 하루 중 흐렸다 맑았다 연신 변덕을 부리는 모습이 흐뭇했다가 안쓰러웠다가를 반복하는 꼭 내 마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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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5.12 04:41:18 *.221.78.72
연로하심은 서러움 그 자체임을 사무치게 느끼고 있어요.
죽음은 인간의 한계상황(죽음, 고통, 투쟁, 죄책) 중 첫째라지요.
사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아쉬움보다 쇠잔해진 노구로 겨우겨우 지탱해 가는 나날을 보내실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더 안타깝습니다.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보살펴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진대, 저는 아직 그걸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죄스럽습니다.
써니님은 곁에서 모실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모녀 간의 중국여행,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네요.
써니님이 안보여 많이 궁금했어요.
좋은 이야기와 함께 다시 만나니 또 반갑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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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5.12 20:03:04 *.52.236.185
이 글을 읽고 나니, 문득 이 구절이 생각 나네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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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2 23:13:16 *.36.210.11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시편 90: 12

성경을 자세히 읽으셨군요. 저는 형편없는 나이롱에 냉담자인데...


그대에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개구장이의 신념 말이에요. 이제 결코 외롭지 않으시죠? 여기는 다 같고 또 다 달라요. 그래서 재미나지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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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08.05.13 08:49:53 *.75.127.219
잘 읽었습니다.감동 그자체입니다.
맑고 깊은 강물처럼 담담히 흘러가는 고운 마음씨
그것을 깔끔하게 담아내는 글 솜씨
좋은 글을 읽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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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政
2008.05.13 09:57:32 *.196.165.238
올해 8월 어머니의 칠순이시라 아버님의 생신을 맞아
가족여행을 하려 했으나 남동생에게 일이 생겨 그리하지 못했지요...
늘 사느라 바빠 어머니와 여행 한번을 해보지 못한 것같아요...
언제고 어머니와 단둘이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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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4 12:40:34 *.36.210.11
이수 형아님, 부끄럽게 왜 그러시와요.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해주셔서 저희가 다 부끄러운 걸요. 이번 꿈 벗 모임에 시간이 되시면 참여해 주세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한 분 더 초청하고 싶은 문학 소녀 같은 분이 계신데 이번에 오실 수 있을 지 여쭤봐야 겠어요. 모두 오신다면 좋은 벗들이 되실거라 믿거든요. 큰 일이 없으시다면 함께하시면서 사부님도 뵙고 초아선생님도 뵈어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해요. 시간이 나실까요? 특별히 형아께서 오신다면 회비를 많이? 받을 용의가 있답니다. ㅎㅎㅎ

세정님, 그대는 주위에 그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효도 백 배에 마음 만땅의 이겠더이다. 두 분의 그윽한 모습 참 보기 좋아요. 변.경.연에 마구 자랑하고 다니셔도 좋겠더라구요. 바깥분께도 안부 전해 주세요. 써니가 부러워서 몹시 배아파 하더라구요. 참, 이번에도 한쌍의 원앙새처럼 두 분 꼭 참여하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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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혜
2008.05.17 22:39:13 *.34.17.93
ㅎㅎ 여행때문에 요즘 홈페이지에서 모습을 감추셨었군요~ 모녀가 함께 하는 여행. 꼭 해보고 싶던 일인데.. 내년 쯤에는 저도 꼭 해봐야겠어용~써니 선배니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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