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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3일 16시 27분 등록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 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 윤동주 -


한 15년 전이지 싶습니다.

대학 후배가 강원도 홍천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보내 온 편지 중에
" ... 지금 제 빰을 스치는 이 바람이 형의 빰도 스쳐 지나가겠지요..." 하면서
함께 적어 보내 온 시입니다.

그때부터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습관적으로 제 눈썹과 뺨에 손을 대고
확인하곤 합니다. 파란색 물감이 묻어 있는지...

그 후배가 다음 달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IP *.247.14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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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政
2008.05.23 17:37:01 *.193.94.117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그의 얼굴이 어린다. 나는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오래전 저에게도 강물처럼 흘러 온 사랑이 있었지요.

지금 창밖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네요.
하지만 우리 사랑은 맑음입니다.
아름다운 그가 제 곁에 있으니까요^^

두분의 인연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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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24 05:43:04 *.36.210.11
소년 같이 맑고 고운 우리 꿈벗 10기 회장님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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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5.28 08:49:31 *.193.194.22
중학시절, 체육실기시험때문에 배구토스연습을 하다 가을 운동장에 벌렁 누워서 외워보던 바로 그 시..
옆여자 고등학교담장에서 축제의 음악이 빈 운동장을 채우고
내 눈동자를 눈부신 파랑하늘이 채우던 시간이 지나갑니다.
교과서 이외의 시를 가르쳐 주시며 다음시간까지 외워오라고
그리고 시를 쓴 그 노트옆장에 시화를 그려 오게 하신 국어선생님
그 분 때문에 신석정, 황동규, 유치진.. 이름을 알았고
그분이 교과서 이외의 이 시를 가르쳐 주셔서 우리는 시를 외우며 등하교길을 덕수궁돌담길 맞은편길을 걸어갑니다.
황동규의 편지를 칠판에 써 주시며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 '이 시는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시가 아니다'며 칠판의 글씨들이 은가루를 날리던 특활시간
아, 그 국어선생님이 3학년때 담임이라는 것을 알자
반장과 나는 일어나 환호를 지릅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건 말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의 소유자
그 분과 눈맞춤하려고 내 작은 눈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2002년 봄, 그분께 남은 시간을 시를 쓰며 살겠다는 편지를 쓰고
지난 목동 주소로 부쳤지만.. 과연 도착했을까
내게는 되돌아 오지도 않았고.. 선생님께서 답장하시지 않을 분이
아닌데..

2002년 그 봄.. 고립과 단절의 극단이 찾아온 그 봄에..
그 몇개월간 유월이 오기전 인적없이 박새소리만 가득하던 낙산의 작은 방에서

잊고 지냈다. 그분에게 그런 편지를 쓴 적이 있음도
2004년도에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 시를 읽다가 기억을 되찾아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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