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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7일 09시 59분 등록
1. 기분 좋은 공간 만들기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 하나가 있다. 즐거움에 입이 벙그러지고 갖고 싶은 의욕이 생겨나는 곳이다. 내가 머물 곳이 생기면 저것을 가져다 놓아야지, 이렇게 꾸며야지 하는 꿈을 꾸어보게 하는 그런 곳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그리 비싸지도 않은 도전해 볼만한 가격대가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주변에는 넉넉히 쉴만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공연 하나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허락하면 꼭 휙 하니 들러보고 난 후에 차를 한 잔 마셔도 좋은 그런 장소다. 계절에 따라 비교적 자주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진열품이 지루하지 않게 소개될 수 있도록 생동감과 변화를 주는 곳이다. 물건을 고를 때면 지갑은 가벼워도 흔한 것을 싫어하는 내게 창작과 개성미가 살아있고 정성이 들어간 제품들을 고를 수 있게 해주어서 가격대비 만족감을 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렇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과 붙어있는 아트샵이다.

나는 그곳에 가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가슴도 기쁘다. 마음이 맑아지고 눈이 생기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잠시나마 나도 모르게 일상의 나를 벗어던지고 살아보고 싶고 되고 싶은 나로 날아가게 만든다. 그러면 나는 거실도 꾸미고 서재도 꾸미고 옷장과 서랍 여기저기에 이것저것을 놓아가며 즐거운 동경에 빠져들고 만다.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머물고 마음은 사뿐사뿐 날갯짓 하는 나비처럼 가볍고 발랄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이 좋다. 이름 모를 작가가 자신의 자존심을 내걸고 계약을 하는 곳이어서 좋고 창작품이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서는 곳이라서 풋풋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액세서리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흔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다소 정제된 낮은 가격의 제품과 그보다 조금 비싼듯하지만 개인의 수공예 작품이어서 운치가 있는 것으로 나뉘어 있으며, 요란한 세계적 브랜드의 이미테이션들로 각 나라마다에 대량 생산되어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에 나오는 로열티 비싼 중저가 물품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고, 괜찮은 재질과 함께 무엇보다 작품에 작가의 열기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나를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망설이고 맴돌며 미뤄왔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의 한마디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 날 찾아드는 각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데 그것의 구체적인 가르침이 내게는 흰 머리카락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그렇게 애가 타게 누누이 이르시건만 건성으로나 알듯 용기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금세 가라앉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도망가곤 하면서 겨우겨우 어거지로 붙어있기 민망할 지경이지만 미망迷妄을 안타까워하는 스스로의 안쓰러운 자성인지 백발로 다가서는 머리카락이 보다 극명하게 내게 깨달음으로 다가와 거세게 흔들며 일침을 가한다. “너를 알라. 너를 보듬어라. 너의 시작의 주인은 바로 너로부터다. 그러니 너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사랑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조금씩 차츰차츰 키워나가라. 멈추지 말라. 뒤돌아보지 말라. 계속해서 가라. 계속 지속시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너 자신을 껴안아 사랑해 주어라. 선물도 해주고 성취도 주어라. 예쁘게 아이처럼 보살펴라. 그게 바로 살고 싶은 나, 너, 그리고 우리들의 되고 싶은 삶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하고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머리로 들어간 것이 저마다의 속도로 온몸을 휘돌아 가슴으로 뛰쳐나오는 것이다. 알면서도, 안다고 하면서 정작 박차고 나가는 뒷심이 부족한 듯 잘 바뀌지 않는 일상을 하나씩 개선하며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곳도 처음엔 무심한 듯 찾아낸 그러나 한 번 두 번 비교적 자주 들르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가는 것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반복해 새기다보니 불현듯 어떤 장소 어떤 계기로 인해 순간 뭉클 이루고픈 마음으로 솟아나게 하는 그런 기분 좋은 곳이다. 나는 이제 그곳에 자주 갈 것이다. 주뼛댐을 덜고 혼자서도 갈 수 있다. 오늘은 혼자 다녀왔다. 공연 하나를 한가로운 마음으로 보고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어서 그곳을 빙 둘러보면서 마치 시집가고 싶은 새악시의 빨갛게 달아오르는 볼처럼 두근거림을 안고서 꿈을 꾸어보기도 했다. 아니 그곳에 가면 그냥 저절로 꿈이 꾸어진다. 사실은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그곳에 있는 몇 개 안되는 작품 가운데 고가에 속한다. 그럴 때면 나는 저걸 사야지 하는 마음보다 누가 저것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탐이 나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만다. 목돈을 팍팍 써버릴 정도는 아직 못되니 의타심에 기대보려는 얄궂은 심보이기도 하겠거니와 상상 속에서나 실컷 해보면서 실상 헛돈을 쓰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니 그만하면 눈요기로 깜찍한 상상과 함께 현명한 대처라고 봐줘야 하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깜찍이 아니라 끔찍한 여우같은 경우라며 돌이 날아드는 것 같다.ㅋㅋ) 그래, 그랬다. 언젠가 내가 이불 하나가 너무도 고와 마음에 든다고 썼을 때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사거라 하고 덧글을 달아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고 알겠다.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기다려야 할 여러 일들이 있는데 그 과정들 가운데서도 방법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서 일상이 현저히 달라질 수 있고 개인의 역사가 얼마든지 바뀌어 나갈 수 있다.

나는 몹시 자주 맴돈다. 억제하고 참으면서 착한 사람인양 해야 하는 길들여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또 하나의 벽으로 스스로를 칭칭 감고 강박 속에서 에고에 에고 또 다른 에고로 이어지는 기껏 에고의 높이만 쌓아가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 슬픈 지난날에 대한 한풀이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살아났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삐약대고 있는 병아리나 진배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의 10년은 누구보다 나를 시작의 중심에 두고 사랑해 나가리라 마음먹는다. 그렇지 않고 기쁠 수 없고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도 작은 보상을 주어야 함을 이해하였다. 10년 넘게 기다림과 막막함 속에서 공연한 끌탕에 들볶이면서 나만을 위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열심히 자립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허덕였고 무엇보다 어미다운 어미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강박과 죄의식이 지난 10여 년 동안의 내 삶의 현실에 가장 갈급하며 구체적인 굴레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아픔은 살아있는 한 무엇으로도 아이들에 관한 내 허물을 변명할 여지가 없음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직시해야 할 것 역시 우선의 내 삶을 지탱해 나가는 것이고 나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의 회복과 확립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의 내면의 울림을 간과하였고 나를 우선적 가치로 두기에 뻔뻔스러운 듯 버거워하며 지내왔다. 우선 빵을 향해 허덕이면서 마음속에서만 어떻게 해서든 나아져야 한다고 끌탕을 했지 실제로는 이혼 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더한 억압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적이고 가시적인 외양에만 집중했을 뿐 내면은 여전히 썩어 곪아터지는 상처를 어쩔 줄 몰라 낑낑대고 있었던 것과도 같다. 더군다나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학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염없는 방황과 맴돌기를 연거푸 해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엇을 참신하게 꾸준히 나아갈 수 있었으랴. 에고에 에고만 키워 나오는 또 하나의 벽들에 갇혀 갈팡질팡 하였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일 년 동안의 독서는 무엇보다 나를 ‘성실한 참여자’로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제부터는 진정한 나의 길을 항해해 나가야 함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내가 바로 서지 않고는 세상은 아무 존재 의미가 없다. 내가 깨닫지 못한 세상은 헛바퀴나 다름없다. 매일 보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뿌연 매연 속을 굴러가기만 하는 무수히 많은 자동차 바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집착執着과 회한悔恨을 덜고 나를 가꾸어 돌보며 원하는 대로 되어갈 수 있도록 보다 나의 일상을 즐겁고 신나며 재미나게 살아보겠다. “수고했다. 미망迷妄아, 너 참 깨닫지 못하고 뱅뱅 도느라고 애썼구나. 먼 길 돌아 돌아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더냐. 그렇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너로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 너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되는 것이고 너의 시간을 깊이 가진 것이라고 이해하여라. 그리고 이제부터 네가 갖고 싶고 원하던 삶으로 되고 싶은 네가 되어라. 너 만이 할 수 있고 너의 일이며 네가 바로 그것의 전부요 원천이다.” 내가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내 자아自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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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7.08 15:35:07 *.169.188.175
= 아이 =
간밤에 저는 아이의 꿈을 꾸었습니다.

= 꿈 =
간밤에 저는 하늘을 걷고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 맴돔 =
하루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에 닿을 것 하다가도 그 다음날은 내리꽂히는 롤러코스터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간 하루와 일보후퇴후 이보전진을 믿으지만 일보가 아니라 이보 삼보 때로는 제자리 맴돔..그런 세월을 보내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와보니 앞으로 겨우 한발짝 나아왔음을 느낍니다.

= 존재의 의미 =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나 재미있게 살다가 가야하는 것일까요?

= 사랑 =
나를 사랑함이 어떤 것일까요? 내가 나를 사랑함이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또 생각하고 고민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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