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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6일 01시 51분 등록
둘, 천형이 되어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

이혼은 어른들 둘의 상처가 아니며 두 집안의 상처도 참을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천형을 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짐작한 것이기는 했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상대를 포기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의 경우는 아이들에 대한 측은함과 죄책감에 살아있는 내내 늘 마음이 편치 못하고 심하게 아픈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인생이 있고 그것이 너무나도 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마음의 상심은 내가 어미의 길보다 아내의 길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까지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남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가장 크게 비중을 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 시에는 흔들리지 않는 관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는 그 사랑의 대상이 때로 옮겨가서 어려운 고비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마치 코나 꿰듯 아이를 핑계로 좋은 꼴도 보이지 못하면서 볼모 잡듯 아이들을 상대로 양육이라는 미명하에 한편으로 안전장치로 삼아가며 산다는 것은 결혼이라는 혼인의 신성성에 대한 모독임은 물론 아이들에게 가족으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되지 못할 것이다. 형식을 지켜야 내용을 끌어갈 수 있기도 하겠지만 내면적 이해 없이 겉도는 형식유지 만으로는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간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고 해결책이 되겠는가. 무엇보다 근본이 바로 서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삶은 그저 자연적 마음의 발로로 믿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생각해 본다. 억지로는 임시방편이나 흉내만 내게 될 뿐 결코 진실함에 미치지 못한다.


세엣, 어려울 때는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외부에 잘 호소할 줄 몰랐다. 내적인 가정생활과 특히나 부부 문제를 밖에 나가 함부로 거론할 수 없다는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창피함과 치욕스런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면서 이성이 마비되다시피 했고 그러한 상황들을 까발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남사스러움에 처하여 혼자서 끙끙 앓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내 생활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사나 하는 자책과 자격지심에 빠지면서 삶이 비참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이혼하지 못함이 혼자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살 자신과 능력이 없어서 빌붙어 사는 듯이 스스로의 우유부단함조차 비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그때에 상대로부터 받은 모욕감을 통해 드는 생각이란 ‘세상의 가장 비루한 넝마주의와 같은 사람과 산다고 해도 당장의 치욕보다는 백번 낫겠다’ 라고 하는 반발심이 불같이 일기도 했다.

상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분노는 사람의 마음을 사납고 거칠게 하여 괴롭힌다.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죽도록 아플 때를 떠올려 보라. 이마의 열은 예사로이 간과할 수 없음을 알면서 마음의 지독한 열병의 후유증을 사람들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하려 든다. 암은 무서워하면서 마음이 상처를 입어 죽어가며 생성해가는 암 덩이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원인 제공자가 병들어 가는 자를 타박하기가 예사이기도 하다. 손톱 밑의 가시와 염증은 펄펄 뛰며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심장의 염증과 그 곪아 터지는 심연의 상처에 대해서는 참으라고만 강요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 모르면 모르겠다고 하지 않고, 더군다나 깊이가 없어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함에 대한 자각도 없이 무턱대고 참아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자신들의 삶만 옳은 양 공연한 역정을 내기 일쑤다. 이것은 상황과 경험의 문제이지 섣부른 충고나 조언으로 결코 해결 되어질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고난도의 심층 분석과 깊이를 지닌 이해와 공감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에 대한 제안과 모색이어야 함에도 주변의 인식은 막무가내인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이데올로기적 혁명과도 같이 ‘그래야만 한다’일 뿐 무엇을, 어떻게, 왜 풀어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설득은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은 우선 자신의 입장에서만 옳고 그름의 잣대로 마치 신의 지위에 있는 양 하며 판단부터 하려 드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누구라서 참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참을 수 있다는 사람들과 참아본 사람은 나와 보시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상처가 몸의 염증보다 덜 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게 정말 수양이라든지 마음공부만으로 되는 것인가? 공동의 가족이 중심이 흐트러진 채 왜 한 사람만 아픔을 격어야 하고, 아니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 도리어 마음을 달래고 병을 치유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되는 것인가? 원인제공자와 그릇됨으로 재미를 나누는 무리와 이익을 누리는 무리들이 따로 있는데 어찌하여 사태의 진상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자가 그 모든 상황을 수습하듯 감수함은 물론, 오히려 자신의 탓인 양 전혀 사과 받거나 이해조차 얻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기운으로 고통을 덜고자 노력하며 나가야만 하는가 말이다. 세상은 왜 배운 대로 이치와 합리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못된 무리들로 하여금 가당찮은 안락을 누리게 하며 알면서도 속아주는가 말이다. 밥벌이 좀 하고 재능 꽤나 있다고 우쭐 대는 무리 가운데 덕은 어디다 팔아치우고 큰소리나 쳐가며 감쪽같은 모습을 취하며 이런 작태를 보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이들의 사고방식은 말려도 좀처럼 이야기를 듣지 않고 더욱 기세가 등등해 하기까지 한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고 아니 세상이 그렇게 겁 없이 막무가내로 버젓이 돌아감을 그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 사회의 어설픈 성과주의의 폐단의 일면이요 암암리에 숨겨진 곳곳의 썩어빠진 사고라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결코 한 둘에 해당되는 희귀종들의 처사가 이미 아니기도 하다.

때로는 상처 입은 쪽에서 단단히 자각하여 한번 해보자고 벼르며 죽기 살기로 문제에 덤벼들어 부당함이 바로 잡히고 전세가 바뀌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간혹 기선이 잡힌 상대가 발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말도 안 되게 똑같은 상처를 공유할 것처럼 공정해 지는 척하며 자기와 똑같이 해보라고 선심 쓰듯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똑같이 하라는 것이다. 마치 달게 받겠다는 식이다. 그게 말이 되나? 그렇게 처신하면 과연 공평해 질 수 있을까? 상대가 상처준대로 바람을 폈으면 핀 것만큼 맞바람으로, 잃은 돈이 있으면 잃은 돈만큼 실패로, 때린 만큼 그와 똑같이 때려 준다고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웃기지 마라. 말장난이나 하자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게 해결의 방안과 모색이 될 수 있겠는가. 그 말은 추호도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공정하고 경우가 바른 사람들은 애시 당초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그런 제안을 하기보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뉘우친다. 자고로 잔대가리 굴려대는 인간 군상들이 어디에도 득세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위인들이 자리를 들어차고 앉지 못하도록 단호하고 윤리적인 질서를 이 사회는 유지해 나가야 한다. 사랑이 북어대가리 말라비틀어지듯 제멋대로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면 책임 있는 성실성이어야 한다. 마치 책임감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성실을 위장한 사악함의 가면이어서는 안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해서 섣불리 아무나 칭찬하지도 말아야 한다. 칭찬 받을 자가 오히려 울고 사악한 무리가 선량함을 비웃지 못하도록 옳은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져서 콩나물시루같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군상들이 득시글한 이 사회에 반드시 바른 경계가 확립되어나가야 한다. 사랑을 아무나 하냐고? 그렇다. 그러기에 섣불리 아무나 사랑하지도 말아야 한다. 재능과 성공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삶도 못지않은 가치로 추앙받아 마땅하다.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서 판단이 안서고 도무지 혼자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거든 조언을 청해야 한다. 혼자 해결할 일이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때에 미련을 떠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나는 그러한 점들이 미숙했고 도저히 상대가 개선의 여지나 협조의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아서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리 하지 못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거든 반드시 행해보는 것이 좋다. 해볼 대로 다 해봐야 미련 따위가 남지 않는 것이다. 혼자서 마음에 저장해 두면 그 깊이와 세월만큼의 한이 서리고 그 고통의 쌓임으로 인해 급기야 뻥하고 사태가 크게 터지거나 병이 들고 만다. 그러니 누구보다 먼저 우선 자신을 사랑하라. 수습하려고 모든 창피를 무릅쓰고 달려들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라. 아무에게나 당신의 자리를 함부로 내주지 말라. 빼앗기지 말라. 단호히 대처하라. 속지 말고 전투태세로 나아가 적극적으로 무찔러라. 그러한 대처야 말로 달갑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에 처한 각자가 나서서 지키고 가꿔나가야 하는 인생의 한 부분이요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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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은 영혼
2008.07.18 08:50:23 *.34.156.43
제 얘기를 쓰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요. 가해가들은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또 만나고 연락하고 그러는데,피해자인 내가 상처 치유한다고 여기저기 심리상담소에 들락거리고, 그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입니다. 내면을 돌아보며 아무리 나를 끌어 안으려 해도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이내 저를 삼켜 버립니다.
얼마나 흘러야 이 상처가 아물까요?
얼마나 더 노력해야 내 삶을 다시 찾아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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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19 19:28:09 *.36.210.11
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한없이 서운할 테지만 그래도 꾹 참으세요. 사랑하시잖아요. 마음이 아프다는게 바로 그런 거죠.

경험상 살다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어른들 말씀에 '돈으로 나가는 것이 제일 싸다' 하시곤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미련을 곧잘 떠는 사람입니다만 살기 위해 돈도 필요한 것이니 돈으로 막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돈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태와 일들이 종종 있기도 하니까요.

가족이나 좋은 집보다 스스로를 위해 먼저 투자해야 할 때가 있어요. 만약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생각된다면 저축을 조금 덜 하시더라도 그 비용을 나누어 쓸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에요. 밍크 코트나 해외여행 혹은 훗날의 멋진 집보다 현재의 자신에게 먼저 투자해야 할 때가 우리 살아가는 일 가운데 더러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모든 일을 정상의 기준에서만 생각하면 해결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제 젊은 날의 미망도 바로 그런 것 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님께서는 저보다 나으시길 바래요.

살아가는 일에 노력은 끝이 없는 일이 아닐까 해요. 또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도 마찬가지로 한 없는 길이구요. 그래서 지루하고 약오르고 힘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참는 만큼 좋은 결과도 있으리라 생각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젊어서는 불같이 솟던 분노도 나이드니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젊어 한 때라는 어른 들의 말씀에도 납득이 가곤 한답니다. 저는 버리고 아파하기로 하였습니다만 님께서는 더 나은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제게 이혼을 상담해온 사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저처럼 살아갈 수 있느냐고 물어 오더라고요. 겉 보기에 잘 견디는 것으로 보였을 테지요. 그래서 그랬답니다. 이혼은 남과 비교해서 선택할 일이 아니라 바로 당신 문제이니 당신이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으라고 했어요. 다행이 그 사람 지금 잘 살고 있답니다.

10년 지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다른 여자와 있던 그 장면도 별 의미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10년간 내가 본 그 여자에 대해 잊어버리기도 쉽지 않기는 했지요. 제 자신에 몰두하면서부터 쓸모 없는 인간들에게 헛심 빼앗기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요즘에는 참 우습기만 해요. 썩어 뭉그러질 불쌍한 영혼들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어리석어 그랬고 당시 상황이 도저히 그렇지 못하였습니다만 님께서는 상대에게 너무 많이 애정 쏟기보다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볼 수 없을까요? 더 좋은 일에 당신을 쏟아부을 방법을 찾아보셨으면 해요.

기다리려고만 하면 기다림은 너무 길고 지루하고 아주 힘든 일이지요. 세월과 함께 님께서도 흘러가면 안 될까요? 종교도 좋고 취미도 좋고 공부도 좋은데 뭐 하나 갖고 싶은 것으로 스스로를 잘 가꾸고 지켜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해보자는 노력, 좋은 뜻으로 하는 노력이라면 힘이야 들지만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님의 영혼이 상처로부터 탈출해 나오실 수 있기를 응원보냅니다. 아자! 탈리다 쿰!! 달리자 사랑 그리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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