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써니
  • 조회 수 219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7월 22일 12시 19분 등록

어려서 아버지는 내게 최고의 영웅이었다. 사춘기 이후에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설문을 대할 때면 언제나 서슴없이 부모님 가운데에서도 단연 아버지가 그 선봉의 자리를 우뚝 차지하셨다. 다른 친구들이 가슴 설레는 음성으로나 철학적 고뇌를 잔뜩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별의 별 근사한 위인들을 들먹일 때에도, 독서부족으로 설령 내가 그들의 위대함을 모를지라도 아무 거리낌 없고 확신에 차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위인의 자리에 아버지는 당당하고 환한 모습으로 자리 하시기에 충분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을 더 먼저 생각하시고 자신의 행복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언제나 염두에 두며 개인에 앞서 항상 전체를 보듬어 나라의 위태로운 상황이나 비상사태 시에는 초개와 같이 한 몸 불사를 수 있는 최 일선의 현장에서 하시라도 목숨을 담보하며 불철주야 정념으로 살아가시는 아버지가 나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비록 함부로 발설하여 뽐내지 않을지라도 마음속 깊이 철통같은 신뢰와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언제나 아버지가 유사시 불가한 위험에서 굳건히 건재하시기를 항상 온 마음으로 비나리 하며 한마음으로 살기에 보지 않아 본 듯하게 아버지 말씀은 곧 사실과 진실뿐인 것처럼 인식하며 자랐다.

남들과 같이 때때로나마 여유롭고 한가한 가족의 한때를 즐겨 나누지 못하는 형편에 늘 놓여있을 지라도 남들의 삶과 비교해서 우울하고 속상하기보다 가족과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에 소중한 자랑스러움을 간직하며 오히려 긍지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향해 뿌듯한 마음을 교감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유년시절 아무도 허투로 사고를 치며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표면적 일이거나 강요된 억압 따위는 결코 아니었다. 비록 비전과 세상에 대해 크고 넓은 열린 사고를 열어주시지는 못하였을망정 언제나 당신의 의견보다 우리들의 생각을 먼저 물으시고 도와주시려고 애쓰며 민주적인 분위기로 토론문화를 지향하여 관대함으로 이끄셨다. 따라서 우리도 어려서부터 각자 제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율적으로 자랐다. 다른 집들도 다 그런 줄 알았지만 대학이후 좀 더 넓게 친구들을 사귀면서 모든 가정이 다 그렇게 운영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겨우 알았을 만큼 나는 세상의 여러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 둔한 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바깥일과 집안일을 철저히 구분하시듯 전혀 밖의 일로 집안 식구들을 걱정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노고를 더욱 챙기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자연스레 그렇게 따르며 자랐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의심하거나 함부로 세상을 살 것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말씀하시지만 미련할 만큼 성실한 자세 오직 그 하나로 평생을 일관해 오신 분이라는 걸 자식들에게 설파하셨고 우리가 봐도 적어도 절대 게으른 분이거나 허풍선은 아님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따로 큰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노후에 들어서 안쓰러운 마음에 힘든 일일랑은 그쳐도 좋으련만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셔도 좋으련만 왜 사서 고생을 하시느냐고 할뿐이고 더 나은 향상을 욕심하고 부러워하는 마음 때문에 조금만 더 이러 저러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요구이지 아버지 때문에 속을 썩었거나 아버지로 인해 혹은 부모님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은 없이 살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항상 자신들 보다 자식을 먼저 염려하심을 보고 느끼며 자랐고 또 아직까지도 한결같은 자세일 뿐이시니까. 그러기에 비록 호의호식을 통한 호강스러움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정말이지 밝고 티 없이 단란한 가족 관계를 가꾸고 유지하며 지내올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이런 애쓰심은 그저 당신 몫으로 끝나지 않고 저절로 마음의 통로로 이어져 자식들에게 연결되고 뿜어져서 우리들 각자의 일상에 잔잔히 스며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성품은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화하시고 인자하신 품을 지니셨는데 다만 성질이 급하신 것은 직업적 습관과 발로이신지 원래의 타고난 기질로서 성격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성격에다가 항시 바쁜 것이 어느 정도 습관에 배이신 것은 아닐까 한다. 소위 버릇이라는 것도 한번 몸에 배이면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도 아버지의 이런 점을 얼마간 닮은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어머니의 총명함 보다 아버지의 약지 못함과 고집불통인 기질이 더러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시곤 하셨다. 씨도둑 질은 못한다고 제 아비 딸이니 당연 닮았을 거라고 하신다.

짧은 인연 동안에 나도 그랬지만 한평생을 함께 살아오신 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해 애증의 갈등을 곧잘 토로하신다. 답답할 정도의 성실성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을 보이면서도 고집불통의 옹고집에 대해서는 이를 박박 가는 심정으로 한탄을 하신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시는 말씀이 남에게는 간이라도 다 빼주면서 집안 식구에게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다고 넋두리를 쏟아내시고는 한다. 성인이 되어 어머니가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지켜보게 되면서 그 마음을 백번 헤아리게 되었다. 아버지를 보면 정말 그런 점이 많이 눈에 뜨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투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고 항시 아버지보다 어머니 쪽에서 먼저 아버지를 걱정하시며 오매불망 지내시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며 자랐다. 그런데 이제 그 노심초사勞心焦思 애태워가며 지내던 젊은 시절의 긴박한 상황을 다 이겨내고 나니 다소 안심이 된 상태라 그런지 지난날에 쌓아두었던 서운함과 함께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숙맥 같으신 아버지 성품을 탓할 수 있는 한가한 여유로움이 생기신 건지 연세가 드니 불만이 더 많으신 것처럼 타박이 흘러나오곤 한다.

하기야 우리들 사남매를 키우시고 보살피느라 정년퇴직 시까지는 거의 정신이 없이 살아오시며 한갓지게 다투고 자시고할 경황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우스개로 왜 아버지와 같이 사셨느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사느라고 정신이 없어 다른 생각은 가져보지도 못했다는 말씀으로 대신 한다. 웬만큼 성장해서도 제대로 기반이 잡힐 때까지는 당신들의 휜 허리보다 젊은 자식들의 서투른 삶을 더 염려하시며 어떻게 해서라도 보탬이 되어주시려고 항시 애가 닳도록 힘써주셨다. 그러니 사실 요즘 사람들처럼 마음 놓고 투정부리실 겨를도 좀처럼 없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제법 많이 안고 계시다가 화가 치밀거나 답답한 마음이 드는 날에는 영락없이 하던 말을 반복해 가며 억울함을 하소연하시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들이 봐도 아버지는 옹고집에다가 어머니보다는 일 수완이 많이 느리고 모자라신다. 어쩌면 그러하기에 요리조리 생각지 않으시고 한 직장에서 평생을 마무리 하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 되며 이제까지도 다른 생각 없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꾸준히 이어오는 무던함으로 일관해 오실 수 있지 않을까 느껴지기도 한다.

요사이 단독집인 우리 집에 물이 차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럴 때면 금세라도 다 죽어가던 기운이 어디서 그리 뻗치시는 지 어머니는 당장에라도 집이 넘어갈 듯 신속히 대처해 나가시느라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시느라 여념이 없고, 아버지는 멀뚱멀뚱 보고만 계시다가 도움이 되기보다 답답하고 미숙하게 말씀하시거나 엉뚱하게 처리해 나가실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면 두 분이서 서로 다투시게 되는데 아직도 당신 부족함보다 잔소리가 듣기 싫은 아버지는 경우와 이치에 바른 어머니에게 사고가 뒤처지면서도 무척이나 신경질적으로 큰소리로 고집을 부리시곤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집에 대해 어머니만큼 구체적으로 모르는 나도 큰 힘이 못되어 멀찍이 선 상태에서 도움이 못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전에는 별로 그렇지 않으셨는데 아버지께서 요사이 부쩍 왜 저리 신경질적으로 변하시는가 생각해 보니 암 투병 이후 당신께서도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유가 좀 없어지신 듯하다. 아니면 약에 의한 호르몬 등의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하기야 그 연세에 무에 그리 신나는 일이 있겠는가. 이제 친구들도 몇 안 남았다고 하시는 날에는 마음이 절로 숙연해 짐과 동시에 안쓰러움 넘어 죄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그러니 연로하심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사고 기능이 떨어지기도 하고 힘에 부쳐서 의식하지 못하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상태를 감지하지 못하니 매번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장에 판단이 흐려져서 나오는 대로일 뿐 진정한 당신 뜻은 아니지 싶다. 상대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이 당신 의식에서는 옳다고 판단해서 하는데 고작 머퉁이를 당하는 양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고는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언제고 차근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 주장이 옳기 때문에 당신의 짧은 소견은 언제나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아버지는 어머니께 늘 항복하실 수밖에는 없는 입장에 놓이고는 한다. 물론 아버지는 당신의 부족함을 오기부리거나 하지 않으시고 백번 인정하시는 편이다. 그래서 항시 이런 상황의 반복이 일어날 뿐이고 더 이상 다툼을 그치고 마는 것이다. 어려서는 늘 어머니가 아버지를 염려하며 아버지를 추켜세우셨지만 연세가 들어가면서는 오히려 아버지가 어머니의 노고를 많이 치하 하시곤 한다. 서로의 마음에 대한 깊이를 아시고 그러면서 더러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서로를 의지하며 사신다. 서로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오해가 풀려서 내일 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고 속을 것이 빤할 테지만 또 믿어보려는 심사가 생겨나고는 하는 것이리라.

사람 살아가는 일이 늘 그렇듯이 한 고비 넘고 나면 또 넘어야할 한 고비가 튀어나오고 그렇게 늘 정신없고 바람 잘날 없이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란 놈이 저 만치서 희롱이나 하듯 세월이라는 현상으로 달아나 살아가는 일의 속절없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하고, 어째 늘 고만고만하게 별 뾰족한 수가 없이 개갈 안나니 짜증스러운 일면이 있기도 하다. 특히나 현실적 여건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한갓지게 쉴만하다고 생각지 않는 한 삶은 어쩌면 늘 고뇌의 연속일 런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늘상 생활해 오신 습관대로 아직까지도 연세에 비해 생활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정년퇴직이후 경제적으로나 집안일에 대해 당신의 하실 일은 다 하신 모양 한 발짝 물러난 자세로 일의 판단으로부터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신 것이 더욱 그러한 현상들을 가중시켜 온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한마디로 절실하게 매달리기보다 한가롭게 멀찍이 생각하시다 보니 어느덧 차츰 긴장감과 사고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반면 어머니는 같은 환경과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오다보니 상대적으로 훨씬 더 판단 등에 여전한 신속함과 안정감이 의식의 절차 없이 습관이나 재능처럼 깃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진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사람의 습관과 일관된 행함이 무서운 한편 무시하지 못할 힘이 되는 것이란 걸 느끼게 된다.

오늘 아래층에서 아버지의 목청이 크게 들려온다. 해결해야 할 일보다 귀찮고 감히 엄두를 못 내어 싫은 것이 역력하게 목청에서 배어나온다.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게 서서히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이라는 게 감지된다. 날은 무덥고 몸은 쇠약해 졌는데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일이 터지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고 예전 같은 빠른 판단도 안서며 그래서 더욱 짜증스러우신 일면이 있는 것 같다. 젊은 새댁처럼 어머니는 여전히 당신의 최후의 판단은 아버지가 늠름히 내려주시기를 바라지만 아닌 말로 아이같이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듯한 미완의 모색을 대할 때 마다 존재의 기대가 준 허무함만 가중되어 푸념으로 또 한바탕 이어지기 일쑤다. 해결은 못하고 소리만 지른다며 한평생 등신처럼 괜히 저런 위인과 평생을 같이 살아왔다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궁시렁 거리시니 말이다.

지난 번 계림 여행을 어머니와 함께 할 때 어느 60대 부부가 우리 일행에 속했는데 아주머니는 여전히 어린 새댁같이 어리광을 부리고 아저씨는 호기어린 장군마냥 아내를 보살피며 무리 가운데 가장 멋진 사람이기라도 하듯 뽐내며 아내의 비위를 잘도 맞춰주는 것을 보시고는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부러워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 아버지는 여태 저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나는 내게 어머니가 그렇게 푸념하시는 모습이 우스워 내가 과연 어머니에게 친구와 같은 미더운 딸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서방도 없는 딸에게 토로하시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더라고 하면 너무나 속될까마는 아직도 여인네의 심정으로 살아가시는 풋풋하고 앙증맞은 어머니 속의 여자가 마치 내 자식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과 다르지 않게 안쓰럽고 예쁘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사주었노라 으스대며 진주목걸이를 꺼내 들어 자랑하였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웃으며 어머니께 속삭였다. “엄마, 부러우세요? 우리 아버지가 엄마를 더 사랑하시지요. 평생 수중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꺼내어 다 내놓으셨잖아요. 엄마에게 일체를 다 맡기시는 데 고작 진주목걸이에 비할까? 엄마는 아버지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신 거예요.” 라고 하니 어머니도 웃으시며 “그래, 그런 양반이시지.” 하시며 흐뭇해하시는 반면 그래도 당신 가슴속 여자를 품으시고 아쉬워하시는 일면도 있으셨다. 그러시면서 여행지에서 고작 천 원 정도나 주면 살 수 있어 보이는 것을 분명히 바가지를 옴팍 쓰신 채 만원에 사셨을 것이라며 어머니에게 멋쩍게 내놓으신 그 목걸이를 못이기는 양 차시더니만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도 줄곧 목에 걸고 계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만져보시며 마음을 느끼시는 것을 보니 참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그리고 두 분의 사랑의 깊이에 대해 새삼스레 감동이 밀려왔다. 정말이지 나는 어머니가 결코 그 시시한 목걸이를 착용하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사조로나 하는 수 없이 몇 번 거시다가 내팽개쳐 버릴 줄 알았던 것이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몇 년이 지나도록 줄곧 차고 계셨고 싸구려 진주 목걸이 또한 내 생각보다 훨씬 튼튼하고 질기게 변색 없이 오래 가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목걸이는 만 원짜리가 아니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천만금보다 더한 마음의 보석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것을 익히 알고 계심인 것이다. 그것보다 나은 목걸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싫지 않으신 어머니 마음이 어머니 마음속 수줍고 순결하며 고귀한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여자 마음임을 누구보다 알겠다.

어느덧 우리도 이제 제각각의 인생을 지고 삶을 살아가노라니 어린 시절 영웅의 아버지보다 그 뒤에서 항시 당신을 따르며 넉넉히 지원한 어머니의 품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하고 느끼게 된다. 영웅이 바뀐 것 까지는 아니지만 더하고 덜하고 순서를 매길 수 없이 부모님 양쪽의 품이 온화하고 우리들을 향해 그지없이 크셨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를 향해 가끔 원망을 한다 해도 원망이 아니라 애정의 서툰 표현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정리가 굽이굽이 묻어나는 하소연을 넘어서 부모님 당신들만의 사랑과 우정의 질긴 연가戀歌가 아닐까 이 저녁 다투는 소리가 오히려 정겹게 들리기까지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또 영락없이 내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나의 부덕이 빤히 고개를 쳐들고 내 양심을 향해 거칠고 뾰족하게 가차 없이 찔러대기 때문이다. “당신은요? 어떻게 살아오신 것입니까? 겨우 5년 동안을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다고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겁니까?” 하고 항시 물어오는 통에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언제나 내 어머니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느끼게 되곤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부모님께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해서 무얼 하느냐고 하는 말들은 내 자신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아무 해결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더 나쁜 상태로 이어지지는 않아야겠다고 하는 자각 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설령 부모님과 자식에게 다하지 못한 회한을 지니는 것이 나쁘거나 부끄러울 일만도 아닐 것이라고 우기는 심정 비슷하게 되어본다. 어차피 수직으로 관통하는 천륜이기에 미안함 가운데에도 오해란 없을 것 같은 미더운 정이 솟아나기도 하고 정녕 기회가 없더라도 나름의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곤 한다. 더 깊이 마음 가지지 못함이 때때로 더 경계할 일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면서. 모쪼록 닿을 수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하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또한 이런 저런 삶의 곳곳에서나마 들리지 않을 메아리로 마음을 전하고 심기일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인가 하며 소 잃은 사람이 외양간만 쳐다보듯 쭈그리고 앉아 잃어버린 어린 소들의 안녕을 빌어마지 않는 심정이 되곤 한다.

IP *.36.210.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99 내가 빠져있었던 사람들.. 책들 [5] 김나경 2007.10.10 2193
1598 [잡담]그냥 사는 이야기 [2] 햇빛처럼 2009.02.04 2193
1597 시작 [3] 이수영 2011.02.16 2193
1596 인터뷰 – 박경숙연구원 [2] 수진 2018.03.19 2193
1595 궁합 [3] 초아 서 대원 2007.05.04 2194
1594 사람의 마음을 얻어오려면 [9] 한명석 2007.06.05 2194
1593 [99] 계림 여행에서/ 첫째 날 (1) [1] 써니 2008.07.24 2194
1592 [스승님의 시] 아침에 비 정야 2015.04.29 2194
1591 효, 자식과 부모, 한국적인. [3] 김나경 2008.03.10 2196
1590 한 귀퉁이에서 훌쩍이는 사랑 [3] 써니 2010.08.23 2196
1589 [0018]궁금증 - 용혜원 [1] 햇빛처럼 2011.01.19 2196
1588 [8기 지적레이스 3주차/ 정나라]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14] 터닝포인트 2012.03.04 2196
1587 어느 동화 작가의 이야기#3_5 [1] 개구쟁이 2008.05.01 2197
1586 칼럼3 나에게 시간이란 [13] 신진철 2010.02.28 2197
1585 딸기밭 사진편지 87 / 이별 file 지금 2010.09.03 2197
1584 [예비8기 3주차]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11] [1] 레몬 2012.03.05 2197
1583 나는 코치다 (5. 지금 선택할 수 없다면 끝까지 가라) 백산 2011.09.09 2198
1582 [예비8기 4주차 김이준] 서문 [3] 레몬 2012.03.12 2198
1581 [꿈지기의 겨드랑이] 5 - 신뢰는 인정받는 순간에... [2] 이철민 2010.07.27 2199
1580 [진영이의 단군이야기] 내 몸의 아침열기 [5] 진영 2012.01.15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