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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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월의 끝이라 부르는 그곳에
사실 나도 함께 있었어
하지만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생각해보니
우린 목적지보다 더 많은 정거장을
무심히 그냥 지나쳐 온 것 같아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쩌다 기억나는
아스라한 이별의 추억처럼
길은 그쯤에서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잉태되듯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오백 년 전의 내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고
옷을 벗은 채 맨몸으로 빗속에서 하늘 향해
손을 한껏 벌리고 있는데 얼굴은 마냥 웃고 있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
내가 웃는 것은 오로지 당신 때문인 것을
시간이 끝나는 그곳에서 당신은 울고 있었어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울음은 오후가 되도록 멈추질 않았지
당신이 우는 건 그저 내버려졌기 때문이 아니야
당신이 정작 서러운 건 홀로 길을 떠나왔기 때문이지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야
강을 건너면 또 하나의 강이
봉우리를 넘으면 다른 봉우리
파도를 견디면 또 다른 한 물결의 파도인 것처럼
내가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고 바라보듯이
상처 입은 당신도 지금 그랬으면 좋겠어
당신이 세월의 종점이라 부르는 그곳에
물론 나도 함께 있었지
함께 바라보던 저녁노을은
붉게 천천히 물들고 가고 있었고
어디선가 희미한 기타소리도 들리는 듯했어
그 음악소리를 따라 함께 광장을 지나가면
다시 길은 시작되고 있는 거야
길이 끝이 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된다
이야기가 끝이 나는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듯이
시간이 끝나는 그 강가의 억새풀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시간이 잠시 춤을 추는 듯
한 순간 널뛰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당신은 이내 울음을 멈추었고
새롭게 잉태된 희망을 간직한 채
당신의 어깨로 팔을 올려놓은 우리의 자취를 넘어서
큰 새는 그렇게 광활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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