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idgie
  • 조회 수 5173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8년 9월 29일 10시 53분 등록
97. 家人有過,不宜暴怒,不宜輕棄。
此事難言,借他事隱諷之。
今日不悟,俟來日再警之。
如春風解凍,如和氣消氷,?是家庭的型範。
채근담

집안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마땅히 몹시 성내지 말고 가볍게 버리지 말라.
그 일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빌려 은근히 말해라.
오늘 깨닫지 못하거든 내일을 기다려 다시 깨우쳐 주어라.


봄바람이 언 것을 풀듯이 따뜻한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이 하라. 이것이 바로 가정의 규범이니라.  

최근에 내게 이거다라는 감을 준 글.. 경빈의 아버님 블로그에서 길어왔다.
 써보고 외워보는 글이다.
엄마학교를 떠올리니 가장 잘 어울리는 글같고 외워보니 소중해 진다.


엄마학교에서 주제로 정해 준 것들인데..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느껴져서 옮겨본다.

1. 짜증내는 아이, 웃음으로 대할 수 있어요.

2. 아이를 아이로 보게 되었어요.

3. 아이와의 싸움이 줄었어요.

4. 아이 깨우는 아침이 밝아요.

5. 웬수 같던 남편이 사랑스러워요.



* 엄마학교의 가르침

1. 삶의 목표를 정한다.

2. 서두르지 않는다.

3. 환한 웃음으로 대한다.

4. 아이를 믿는다.

5. 아이 스스로 하게 한다.

6. 아이가 선택하게 한다.

7.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게 한다.

8.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9.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우리 아이로 여긴다.

10. 먹는 것에 신경써서 아이의 건강을 돌본다.

*******************************************************************

어떤 것이 고민이었는데 무엇을 배웠는지

임신 육 개월 출산과 육아에 대해 저녁시간에도 배울 곳은
그 당시에 엄마학교밖에는 없었다.  그런 교육들이 대개 비슷비슷하면서
주부들이 갈 수 있는 오전시간이나 저녁 전 오후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한 두 번은 몰라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기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한옥건물에서 진행되는 수업이 기대가 되어 현미밥 색이 나는 천 위에 쓰여진
엄마학교 간판을 지나 출퇴근하면서 그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보다 더 큰 선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출산을 앞두고 되는 것이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일었다.
학교가 있다면 들어가 배우고 싶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라는 짧은 네 단어에 대한 상업적 접근과 문화센터강좌들
집단적인 임상결과를 토대로 한 표준화 된 육아 방법과 이론은 많다.  
그러나 정작 아기에게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사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엄마가 계시지만, 사실 1차 대화. 서로 얼굴 알고 함께 밥 먹고 이외의 더 심도 깊은 대화가
단절된 지 너무 오래였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만날 때마다 하셨다.  막막했다.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자존감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가장 두려웠던 점이다.

그런 이 아이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아기를 갖게 되자 회사 선후배, 교회나 이웃의 먼저 엄마가 되신 분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아 행복했다. 알음 알음 들은 것들은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상충되는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윤섭을 돌봐주시는 큰엄마(나는 그렇게 부른다.)는 사랑으로 아이를 기르다 보니
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모두 들어간 후 어느 순간 보니까 엄마 알기를 발바닥에
때만큼도 모른다고. 뼈있는 농담을 건 낸다. 내후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고 말씨도 엄마한테는 반말을 한다고.
너그러이 기다리다가도 싸우고 힘들어하고 고민하신다.
나는 그분께 [엄마 학교] 책들을 드리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나누었다.
큰엄마도 교회에서 하는 어머니학교에 가서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배운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고운말 쓰려고
마음을 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큰엄마의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을 듣고서 감동을 받았다.
또 다른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와 기 싸움을 해서 이겨야 한다고
아이에게 휘둘리지 말라 한다. 떼 쓸 때 확실하게 제압하고 절제하도록 해두어야지..
아무리 길바닥에 드러누워 엄마에게 창피를 준다고 해도 지면 안 된다고 했다.

다정하고 인자하게 대한다. 이것만이면 쉬운 듯하다.
그러나 집에서 질서와 리듬을 가꾸어주려는 엄마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인격체, 구성원으로 대하고 분별하면서 이끄는 것은 또 다른 어려운 문제다.
그러니 무언가 바로 잡아주어야 할 때 아이와의 교감을 이용해서 성정에 맞는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생각하고 고민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됨을 느낀다.  
아이의 성격은 원만하고 누구나 쉽게 친해지고 사교적이라는 돌보시는 분으로부터 들었다.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치며 넘어져도 쉽사리 울지 않는다.
하도 울지 않아서 순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14~19개월에서 자기주장을 하고
싫은 음식 좋은 음식도 생기고 떼도 쓰고 한다.
걸음마 떼기 시작하면 순한 아이 없다는 시어머님 말씀이 떠올랐다.

직장에 다니는 내가 아이가 요구할 때마다 그때 그때 들어주지 못하니까
떼를 써야 엄마가 반응한다고 아이가 인식하게 될 까봐
무언가 의사표시를 하거나 옹알이를 하면 바로 응답해주려고 했다.
일일이 곧바로 대응을 못하니까 큰소리로 떼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떼쟁이 아이 뒤에 떼 쓸 때까지 집안일을 하는 떼쟁이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떼를 쓰고 난 뒤에는 엄마를 점령하려고 아기는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떼를 부리기 전에 여유를 가지고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주말에는 아이가 떼쓰기를 덜 하는 것을 느낀다.
엄마를 찾아 개수대 앞 가스레인지 앞에서 혹은 세탁기 앞에서 빨래를 하거나 걸레를 빨면
달려와 ‘안아!,안아!’ 한다. 그럴 때는 아무리 바빠도 손을 놓고 아이를 안고 달랜다.
상을 먼저 펴놓고 세 식구 수저젓가락을 건넨다. 윤섭아 우리 밥 먹을 거다.
윤섭이가 수저 상에 가져다 줄래? 아이는 신이 나서 밥상으로 간다.
아이 돌봐주던 아이린 가족은 식사를 마치면 각자 그릇을 개수대에 옮겨 놓는다.
윤섭도 그것을 보고 따라 하더니 집에서도 다 먹고 난 후 아가수저를 개수대에 넣는다.

처음에는 음식재료를 주거나 밀가루를 주어서 관심을 돌리고 얼른 내 할 일을 했다.
화장실에 들어올 때, ‘엄마 똥 눈다 엄마 아 창피 윤섭이가 문 닫아주세요’ 이 말을 반복해서
하니까 까꿍 놀이 하듯 중간에 한 두 번 열지만 화장실까지 들어오지는 않는다.
식사 준비하는 동안 신랑이 데리고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플릇이나 하모니카, 피리를 불어주거나 음악을 틀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춤을 춘다.
요리하는 내게 ‘얘 좀 보라’는 감탄이 섞인 신랑의 목소리와 눈빛을 주고받는다.
나도 같이 합세해서 춤을 추는 시늉을 한다.
이제는 집으로 저녁에 데려오면 가장 먼저 음악을 켜달라고 한다.
그리고 반주 나오는 부분에서 춤을 추다가 활짝 웃는다. 제법 나름대로 장단을 맞춘다.
느린 곡에는 느리게 팔을 벌리고 빠른 곡에 엉덩이를 씰룩 쌜룩 거린다.
시댁에 가면,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까지  ‘일어나! 일어나!’ (‘인나, 인나’로 들린다.) 한다.
모두 손잡고 춤추자는 것이다. 한참 웃다가 저녁먹고 TV를 보면서
과일이나 차를 마시고 있으면 아이가 먼저 현관으로 가면서 ‘가자,가자!’ 한다.
아빠 엄마 신발을 신고서 때로는 모자를 찾는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표현하는 것을 억눌린 내 어린 시절 내적 반항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뒤바뀌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 살았기에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육아법을 배우고 싶었다.

엄마학교에서 배운 핵심은 따뜻함이 전달되게 해주라는 것.
아이가 내 앞에서는 제 맘대로 할 때가 요새 많아졌다.
떠받들지 않고 리듬과 질서를 배우면서도 다정한 의사소통이
봄날 언 시내가 녹듯, 스르르 풀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는 요새 나를 우습게 보니까 그렇게 행동한다는 주변의 어른들의 말씀을 듣는다.
단지 내 말을 즉각적으로 듣지 않는데 순종을 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보시는 분이 이를 닦는다면 입을 벌리고 치솔질 하는데 협조를 한다고
뒷집 온유할머니께서 신퉁해 하신다.
나나 신랑이 하면 아주 입술을 꼭 다물어 울려야 이를 닦아 줄 수 있다.
차라리 그냥 대충 닦아도 네가 닦으라고 제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면 치약만 빨아먹는다.
저녁에는 치솔질을 자기전에 하는 습관을 만드는 중이니까 절반의 성공이라고
여기고 굳이 아이를 울리면서 싹싹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부부가 같이 치솔을 들고 아이 앞에서 치솔질을 하느라 거실로 나와서 했다.
아이가 내 치솔을 쥐고서 엄마 이를 닦아주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손에 쥐어 주게 한다.
그럼 자랑스러운 듯 내 입안을 치솔로 문지른다. 하루는 엄마 치약을 저도 묻히겠다고
해서 쬐끔만 손에 묻혀서 혀에 대어 주었다. 아이는 그 이후로 엄마치약 달라고 하지 않았다.

밥을 아주 잘 먹는다. 국도 대접을 들고 후루룩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밥을 물고 있다. 식사가 끝났는데도.
무언가 욕구불만은 아닐까. 고민.
씹어서 삼키라는 말을 최대한 다정하게 한다.
손을 새머리처럼 구부려서 입이 씹는 모양을 흉내 낸다. 꼭,꼭,꼭, 씹어아지? 꼭,꼭,꼭
처음에는 밥을 씹는 것이 아니고 ‘꼭,꼭’ 하면서 내 발음을 흉내내느라 밥알을 흘렸다.
근래에는 입에 물고 있다가도 씹는 시늉이라도 한다.
밥상을 치우고 나서까지 오랫동안 입에 밥을 물고 있지 않은 날들이 하루하루 늘어간다.

2008년 8월31일 성북초등학교에 갔다. 뜨거운 늦여름의 오후를 아이와 그곳에서 보냈으나
아이는 뜨거운 것을 상관하지 않고서 놀고 싶어 했다. 아이를 뜨거운 열기를 피해주려고
정문으로 향하는 동안, 미아동에서 온 어느 교회에 차에서 청년들이 내려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축구공이 윤섭의 왼쪽머리를 치고 떨어졌으나, 아이는 꿈쩍 하지 않았다.
청년이 놀래면서 와 대단하다고 한다.
윤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깐 멍하니 보더니 일어나서 뛰듯이 걷는다.
초등학교 골목으로 들어오는 초입 씨앗 파는 가게에서 키우는 개 ‘샛별’에게 간다.
창살 문이 닫혀있고 수돗가에 비누와 세숫대야에 물이 가득 담겨있다.
아이가 ‘물, 물’ 한다. 윤섭은 집에서 돌보다가 내가 설거지, 빨래를 하면
이제 혼자서도 일, 이십분 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표정을 설핏 어깨너머로 보면 시무룩하다.


어떻게 풀었는지

억지로 재워야 하는 것일까?

주말에 하루 종일 함께 있어보면 낮잠을 자지 않는다.
간혹 잠이 드는 것은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하도 뛰어다녀서 지쳤을 때다.
아이가 지칠 때까지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 4~6시 무렵 잠이 든다.
다시 활기를 찾아 생글생글한 얼굴로 깨어난다. 밤에 잠드는 것이 아주 싫은 듯이 요리조리 …
장난만 치려고 한다. 자는 동안 나를 찾는다. 신랑도 소용없다.
처음에는 초보 엄마라 아이가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고 노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그런데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의 리듬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알았다.


윤섭은 잠들기 싫어서 똥 마렵다는 시늉도 하고 갑자기 '물, 물'하면서 물을 찾는다.
이 아이가 초저녁에 잠든 엄마를 깨우려다 때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졸다가 문득 깨어서 보니 내 조는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개처럼 내 다리랑 배를 혀로 핥으며 장난을 치려고 한다.
반복해서 그건 개나 하는 짓이라고 말해주어도 아이는 그럴수록 재미있는지 배 .. 배 ... 하면서
우리에게 장난을 계속한다.
어제도 아홉 시경부터 재우는 분위기를 잡았다. 온 집안의 불을 끄고.
그러나 아이는 계속 물을 찾고 응가를 눌 것처럼 하더니만 화장실로 나를 이끌고
내가 일어서서 데려가면 변기에서 내려가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하다.  
꼭 자지 않는 애를 리듬 만들어 주려고 재워야 할까. 장 볼일도 있으니 동네 마트에 가기로 했다.
윤섭은 유모차에 앉기 싫어해서 한동안 유모차를 태우지 않았는데 밖에 나왔다는 것 하나로
순순히 유모차를 탄다. 내리려 하다가도 앉으라고 하면 그냥 또 앉았다고 뒤돌아서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유모차에서 일어서서 우리를 보면서 웃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선유길이라 부르는 동방 대학원 가는 골목길 초입에 대나무가 있는데
윤섭은 그 대나무에게 꼭 안녕인사를 해야지 그냥 지나치면 우는 시늉을 하면서 짜증을 낸다.
신기하게도 윤섭이 뭐 대단한 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닌데...
그저 그 안녕을 하기 위해서 늘 우리를 대나무에게 데려가는 것이다.

윤섭이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고양이가
어디 있나 찾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개는 보통 묶어서 키우기 때문에 돌아다니지 않고
골목을 걸어 내려갈 때마다 철 대문 앞에 서서 멍멍이, 멍멍이 한다. 맞다.
철 대문 안에 코를 내밀고 있는 개를 보았나 보다.

직장에 다니면서 최대한 윤섭과 함께 있기 위해서 밤에 꼭 데리고 잤다.
초저녁잠이 많아서 직장에서 돌아온 후 피곤해져서 늘 아이보다 먼저 잠들었다.
잠처럼 무심한 것이 없다는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새벽에 깨어나면 떠오르곤 했다.
그래도 남편이 완전히 잠든 새벽 1~2시경이 지나 아이가 깨면 내가 아이 옆으로
침대에서 내려가 누워서 자고 있다.  

내가 먼저 잠들어 버리면, 신랑은 아이와 놀아주었다. 하모니카도 불어주고
쿵쿵쿵 배에 태우고서 말타기도 하고 이리저리 흔들고.


아이의 일, 아기가운 짓이라 여기고 크게 어른이 문제삼지 않으면
어느새 아이도 한 때의 짓.. 그 시기에 해야 할 짓일 뿐 그것이 나쁘게 뿌리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말로 일러주고 때로는 제지도 하지만 제 풀에 꺾여 그만두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어른이 선을 그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실랑이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와의 실랑이를 하는 중에 엄마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곤 했다.
남매가 어릴 적에 싸우자 엄마가 우는 흉내를 내어서 아이들이 엄마가 울자
싸움을 멈추고 엄마를 위로하느라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는.
내가 먼저 선생님 따라서 그렇게 하니까
어느 날, 큰소리로 윤섭이름을 부르면서 제압하려던 남편이 그 와중에 마음을 바꿔
우는 시늉을 하면서 윤섭을 설득한다. 윤섭아, 아빠 아퍼.


어떤 말에 공감하고 행하게 되었는지

아이 기르기에 앞서 내 삶의 목표를 세운다는 말이 내 폐부를 찔렀다면
심.식.의.주.  라는 말에 공감한다.
인사동에 가서 나무 찻숟갈과 나무 접시를 준비해서 사용하도록 했다.
작은 찻잔에 물이나 우유 요구르트를 주었다. 플라스틱 빨대 컵을 싫어했기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양이 갑갑해서인지 빠는 힘이 부족한 아이는 아닌데.
유리잔이나 사기 컵을 집어 던지거나 깰 까봐 조금 염려를 했다. 그런데 돌보시는 집에서
더 무거운 손잡이 없는 도자기 컵에 매실 주스 잘 먹는 것을 보고 아이를 믿었다.
아이는 아직까지 컵이나 그릇을 깬 적이 없다. 싱크대안쪽에 위험한 것을 정리하라고 했지만,
부엌칼만 치웠을 뿐이다. 신랑이 반대였다.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치워도 늦지 않다고.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 엄마학교 가르침인데 돌이켜보니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두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돌 전에 가스렌지 앞에서 음식을 하면 아이는 내 뒤쪽으로 기어오곤 했다.
‘아, 뜨거워‘라고 말해주면서 나무주걱에 후끈함을 느끼게 해주려고 가까이 아이 손가락을 가져갔다가
손가락이 살짝 데였다. 순간 어머나.. 했지만 늦었고 미안했다.
어른에게는 그렇게 뜨겁지 않아도 아이에게는 그 주걱이 그렇게 뜨거웠던 것이다.  
아이가 크게 운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후 뜨거운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싱크대 앞까지 오지만 살림을 끓어내지는 않았다. 남자아기라서 그런지.
대신 냉장고 옆 드럼세탁기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냉동실이 아래쪽에 있어 냉장고 문이 아이 키보다 높아서 문을 열지 않는다.
엄마가 문을 열면 들여다 보려고 까치발을 든다.
아이는 책이나 장남 감을 늘 늘어놓는다. 옷이 들어있는 서랍을 웃으면서
헤집어 놓을 때도 있지만 나무라지 않으니까 금새 딴 곳에 정신이 팔려 그만둔다.

아이가 밥을 먹고 자기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러 가는 것을 본 순간,
아이를 낮에 돌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에 배웠음을 직감했다.
좋은 습관을 보여준 그분들의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모유수유를 하고,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였다.
돌보는 분께 맡겨버리면 아이가 하루 종일 무얼 먹었는지도 모르게 되고,
또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엄마로서 모르는 것이 싫었다.
엄마 맛이 훌륭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정직하게 준비된 음식일거라서.

결혼 전, 우연히 가회동에 유기농 매장이 생겨서 이용하곤 했다.
친환경 세제와 유기농산물을 교회에서 쓰고자 앞장섰던 사모님이 떠올랐기에.
너나들이 가죽공방을 하면서 친환경 운동에 열심이었던 언니도 지금 소나무길이 된
그 길에서 음식점에서 찌게를 먹다가 남으면 싸가지고 와서 먹는 것을 실천하던 다른
환경운동가의 예를 들어주고 늘 음식을 손수 해서 드시곤 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으나 찾아 다니면서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우연히 구본형선생님의 꿈 캠프에서 만난 진욱이가 2005년 생일 선물로 나무액자와
녹색고형 주방비누를 선물했다. 다 쓰고 난 뒤 나는 늘 고형주방비누를 쓰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 비누로 설것이를 많이 해도 손에 습진이 심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래도 한살림에서 만든 천연유지의 고형빨래 비누는 손빨래를 해도 손의 습진이 악화되어
갈라지거나 심해지지 않아서 애용하게 되었다.

엄마학교에서 한살림을 알게 되어 회원이 되어서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먹이는 과정이
매장에서 단순하게 구매하기만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배웠다.
그리고 생산지에 계시는 분들과 교류하려던 선생님의 마음과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장을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도 하려고 한다. 사과 생산지에서 배달된
사과 박스안에 사과향 배인 농부님의 편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고 읽는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인가보다고 생각한다.
가계부도 못쓰는 내가 계획 식단을 세워서 일주일분 내지
한 달 분을 주문해서 먹는 것은 보통 준비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거의 이년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에서는 15개월 무렵 젖을 거의 끊을 때쯤에 영양이 모자랄지 모르니
시판되는 분유나 두유와 우유를 먹이라 했지만, 나는 첨가물이 많은 그것을
정기적으로 먹이는 대신 유기농 두유와 우유를 간식 정도로 먹이도록 했다.
하루 건너 먹일 때도 많다. 두부나 생선이나 달걀 쇠고기 감자볶음 위주로..
그런데 나의 조리법이 지나고 보니
거의 기름에 볶거나 삶아 익힌 것이 많았다.. 국물도 많이 하기는 했다.
다시마가루랑 새우가루 청국장 가루 등을 섞어서.
내가 만든 참 실험적이고 무모한 음식들 때문에 도대체 음식에 무엇을 넣었느냐는 말을 들었다.
특히, 연근은 갈아놓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쉽게 갈변을 해서.
아, 윤섭은 연근 갈아서 죽을 쓰면 이유기 때 아주 잘 먹었고.
나중에는 부침으로 부쳐주어도 잘 먹었다.
누룽지 만들어 튀겨도 보았는데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딱딱해진다. 식으면.  
아이를 길러주시는 집에서 초등학교 세 딸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이것저것 과자니 음료수니 주전부리를 하자 언니가 아이 과자를 준비해 달라고
해서 사다 주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주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안주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성의로 사탕이나 과자를 사주는 것은 눈감았다.
그리고 밤에 조금 아이가 울어도 양치를 하기 시작한 때가 이무렵 부터이다..
야채를 잘 안 먹어서 좋아하는 고기볶음에 야채를 섞어서 먹였다.
된장국, 콩나물국 같은 것을 해서 보냈다. 지금도 고구마, 호박, 나물종류, 당근, 콩을 싫어한다.
이것만큼은 입에서 뱉어낸다. 그런데 고구마, 호박에 생크림이나 우유를 섞어주면
아주 잘 먹는다.

집에서 되도록이면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먹이지만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고집하지는 않는다.
남편이나 시어머님과 갈등 일으키지 않으려고.
최근에 유기 농산물 중 야채에도 농약 쳐서 둔갑해서 비싼 값에 파는 기사가 실리니
어머님이 충고를 하신다. 그러나 어머님은 최근에 '우리밀'가루를 쓰시기 시작했다.
맛이 더 쫄깃하고 좋다 하신다. 재래시장에 가도 농산물 볼 눈이 만들어지지 않는 나로서는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한살림 선택을 잘 했다고 여긴다.

나이드신 시어머님표 김치 가져다 먹는 게 죄송해서 제일 간단한 부추김치를 자주 해먹었다.
겉절이도 몇 번 해보았다. 이틀 전에는 결혼 후 처음으로 포기김치를 담가 보았다.
퇴근하자마다 절구고 새벽 4시에 깨어나 버무렸다. 작은 포기 배추 3통과 무하나가 들어간
김치 맛이 어떨지 긴장된다. 그렇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3,4일후 그 김치 소퇴다.
처치곤란 김치통 위에 누렇게 뭐가 뜨기까지. 헉. 그렇지만 다시 도전할거다.
가급적 외식을 하지 않는다. 반찬 만들며 정성들이다가 보면 아이랑 놀 수가 없다.
싱크대로 아장아장 와서 ‘안아 안아’ 하는 아이에게
밀가루 주무르고 만지며 놀게 했다. 물을 넣고 휘휘 섞으면 더 좋아라 한다.
마침 있는 양배추 껍질에다 밀가루 반죽을 붙이면서 노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다.
이렇게 아이가 조용할 수가. 말 시켜도 계속 주무르느라 밀가루 반죽만 본다.
우엉을 다듬다가 우엉지팡이라며 놀게 손에 쥐어 준다.
버섯, 연근, 배추, 무를 다듬다가 아이에게 건네주고 만지며 놀게 한다.
완두콩, 울타리 콩을 깔 때 아이도 그것을 다가와 흩뜨려 놓아도 두면서
‘콩 껍질 봐라 한 몸에 여러 알이네‘ 하면서 콩을 아가 손에서 콩 껍질과 바꾼다.  
아이가 손에 위험한 가위나 뾰쪽한 것을 집으면 낚아채듯 빼앗지 말고
무언가 주의를 끌만한 다른 것을 주고 손에 있는 것을 놓게 한다.
마늘을 까면 그 아이도 마늘을 만지작거릴 수 있도록 했다.
그 사이에 내 할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말을 건다
=====================================================================

‘야훼께서 너를 향하여 미소 띄우시기를.. 네게 평강 주시기를’
아침이면 늘 하는 기도를 소리 내어 귀에 대고 말해 준다.
아이가 베시시 웃으며 안겨온다.
평소보다 일찍 깨어난 날, 아침밥과 아가도시락 준비하는 나를 부른다.
먼저 ‘엄마 엄마’ 제법 씩씩하게 부르고 내가 달려가면 활짝 웃는다.

직박 구리가 또 감을 먹고 있네..벌써 감이 익었나보다.
저 직박구리 우리 거실 앞 나무에 열린 복숭아
서로 먹여주던 그 새들일까.  들어봐 어린 박새도 같이 왔나봐 하면서
아이에게 말을 건다.

민들레 꽃이 참 많이도 피었다. 이 서양민들레의 생명력은 놀랍다. 늘 여기저기서 본다.
아이랑 화단이나 여기저기 피어 바람만 기다리고 있는 민들레 홀씨가
꽃차례를 지키면서 얌전히 앉아 있다.
줄기를 뚝 꺽어서 아이 손에 쥐어 준다. 후우 불어보라고 하면서.
선생님이 하신 꽃 놀이, 나도 따라 해 본 것이다.
오늘 아침, 헤어지면서 꺾어 주었더니 엄마의 그런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이
손에 쥐고는 웃는다.  울고불고 했던 아이가 아니다.  
15개월 지나고서는 출근 길에 나에게  엄마 안녕 한다.
헤어질 때마다 사랑한다고 두 팔을 머리위로 들어서 사랑한다는 동작을 했더니
이제 그 아이는 내가 그 동작만 하면 안녕이라고 말해 안타까웠다.
그냥 안녕이라고 손을 흔드는 것으로 바꾸었다.

동네를 지나다가 한 두 집에 살구가 자두만하게 열린 것을 보고 감탄.
늦봄. 어제 일요일 윤섭과 초등학교 갔다. 이른 장마로 생긴 진흙탕에 앉아서
한 시간도 넘게 놀아서 학교 수돗가에서 벌거벗고 씻는 일이 발생..
그 하얀 바지 아무리 빨아도 그 흙탕물 빠지지 않더라.
그러나 나는 너무 행복.. 폭 잠는 너.. 나를 안아달라고 하는 너..
기분 좋은 시원바람 따가운 햇살.. 2008.6.23 메모중에서

쉬는 날이면 아기랑 동네 여기저기 꽃과 꽃나무를 보면 냄새를 맡아보자 했다.
봄, 여름, 가을..  동네 곳곳의 꽃나무와 풀꽃이 여는 혼인잔치를 들여다 본다.
학교 운동장에 아이를 풀어 놓고 나도 풀어 놓고
흙 바닥에 다니는 개미를 보면서 놀았다. 서서 하늘 한줌 손에 쥐고 한 걸음 뗀 것이
스스로도 그렇게 재미가 나는지. 표정이 '아, 이렇게 좋을 수가'이다.
학교 운동장에 심겨진 꽃이 진 벚나무 허리를 안고 까꿍 놀이를 한다.
내 손을 찾는 아이 팔이 짧아 나무를 안게 된다. 그 이후에 아이는 나무만 보면 안는다.
아이는 가로수를 보면 두 팔 벌려 안는다. 그러면서 까꿍 놀이할 엄마 눈동자를 찾는다.
일요일 교회에 가서 지하를 떠받치는 대리석 기둥을 안고 아이가 먼저 까꿍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거리에 물구덩이만 있으면 반색을 하면서 발을 내민다.
아이는 물이 더럽든 깨끗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철퍼덕 주저앉아 논다.

아이랑 최순우 옛집에 자주 간다. 아이는 물을 무척 좋아한다.
올 여름, 빗물이 고인 물확에 띄워진 수련잎. 부레혹잠 들을 만지작 거린다.
나지막이 주의를 시키면서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리려 하는데 물확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띄워진 향나무 열매를 쥐고 놀기에 달래서 다른 곳으로 가려니 되지 않았다.
기다렸다가 아이가 뒤뜰로 가면 뒤쫓아 가면서 아이를 살폈다. 여기저기 물확에 손을 넣고 좋아한다.
그러더니 아예 물확 속에 두 발을 넣고 첨벙 들어앉는다.
아이를 꺼내려 하니 울고불고 떼쓰기 시작..
그곳에 어현숙 선생님께서 보시고 아이를 달래시더니 내게 건네신다.
바가지를 들고 물확속에 물을 퍼내 화단에 뿌린다.
그러시고는 도슨트 활동하는 청년들에게 빗물이라 아가에게 더러우니 새 물을 채워달라 하신다.
그리고 윤섭을 앉히시고는 물에서 나와 짜증내다 금새 펴진 아가 얼굴을 들여다보신다.
물 좋아하는 아이 자고로 술 좋아하는데… 하신다.
그리고 아이가 하는 것을 막지 않고 위험한 것만 피하도록 어른이 치워주었던 선생님의 육아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엄마학교에서 배운 것을 몸으로 체득하신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감사하기가 그지없다.
어떤 희망이 손짓하는 듯이 기쁘다. 아이를 키우는데 용기가 생긴다.
아, 함께이면 이렇게 멋진 순간을 선물로 받는 구나.
지금 생각해도 다른 관람객들도 함께 아이를 보며 즐거워한 기억이 새롭다.
점심을 김밥으로 간단히 하고 토요일날 도슨트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감동받아
새벽에 튀겨놓은 연근과 누룽지, 일주일전에 만들어 놓은 레몬차를 가지고 그날 오후,
문닫기 전에 살짝 들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점심 때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관제엽서를 쓴다.
백일도 안지 낸 아이를 두고 일터로 나온 내 아쉬움이 컸다.
첫 돌 선물로 집에서 한 돌상 옆에 두고서 뿌듯했다.
엄마학교 서형숙선생님 말씀대로 세상에서 오직 하나인 선물을 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일 중에서 청소와 정리정돈은 미루거나 대충하고 산다.  
청소기를 아예 사지 않았다. 그 소음이 싫어서. 효과도 별로인 듯하고.
TV도 사지 않았는데 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하루 종일 컴퓨터에 시달려온 나는 20분만 TV를 봐도 눈에서 눈물이 난다.
세탁은 세탁기가. 밥은 전기밥솥이. 걸레도 세탁기가 빨아준다.
나보다 낫다고 신통해 하면서 매일 3kg 세탁기를 마구 돌렸다.
손에 일년 내내 습진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아이 돌보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거였다.
평소 말이 없는 편이었다. 아이에게 그럴 수는 없어서 아름다운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저녁마다 열렬한 환영이 기다리고 있다. 이토록 나를 반갑게 달려와 맞이하는
존재는 이후에도 이전에도 없었다.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먼저다.
벨소리만 듣고도. 어떤 날은 다른 방에 있다가 현관쪽으로 달려 나온다.

아이 돌보시는 분 집에서 나오면 시멘트 길에 비친
내 그림자와 아기 그림자를 손가락으로 가르친다.
긴 그림자를 보면서 '엄마', 자기가 디딘 그림자를 보면서 '아가' 한다.

골목을 나와서는 비탈길의 시작..
홍익고등학교 앞, 가파른 고 바위가 무섭지도 않은지
가속이 붙은 채로 달려지는 자기 몸이 신기한지,
뛸 때 어깨 넘어 부는 바람이 좋은 것인지.
손을 잡자고 해도 뿌리쳐서 손잡는 것을 포기했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아이 무릎에 상처날수도 있지. 나도 늘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대신 뛰는 아이가 넘어져도 받을 수 있는 거리를 가늠하며 마주하고 뒷걸음질로 내려온다.
아기 가방에 비상연고 넣고 다닌다.
웬만한 상처에 아이는 울지도 않는다. 울지 않을 때는 얼러주지도 않고
일으켜 세워주지도 않는다. ‘털고 일어나자’ 한다.
그러면 아이가 제 아버지가 보여준 대로 털고 일어나 다시 뛰듯이 걷는다.
한 발 한 발 걷는 것이 잘 안 되는 것인지. 아이는 늘 뛸 듯이 걷는다.
아이가 알려주었다. 걷는 것이 자신의 몸의 중심을 찾는 섬세한 행동이라는 것을.
많이 아파 울 때는 얼러주고 호우 호우 입김으로 흙을 털어내고 안고서 등을 두드린다.
어릴 때 내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 아기는 넘어지면 나를 불러 호우 호우
해달라 한다. 그러면 다 나은 듯 무릎에 설핏 피가 비치는데 다시 씩씩하게 뛰듯이 걷는다.
금새 또 넘어지고 무릎 슬쩍 까진 곳에 또 상처가 나고. 집으로 데려가 씻기고 약을 발라준다.
그것도 나중에는 심한 상처 아니면 꼭 약 발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단한 상처 아니면 흉이 남거나 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경야독시간에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다음 번에는 바람개비 만들어서 아이랑
그 길에서 놀라고 알려 주신다.

파출소 앞은 아이의 참새방앗간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놀이기구다. 비탈만 보면 그쪽으로 간다.
장애인용 출입구로 만들어 놓은 적당히 경사진 비탈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노란 국화꽃 냄새 맡아보고 방긋 웃더니 다시 오르락 내리락 시작.
하루는 그만 가자는 말에도 계속 왔다 갔다 하기에 몇 번인지 헤아렸다.
그런데 세다가 잊어버렸다. 비탈 난간 위로 두 팔을 내밀고 손잡자고 했기 때문이다.
난간위로 손이 만나지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지 까르르 까르르 숨 넘어갈 듯 웃어 보인다.


식어진 여름 해가 길게 드리운 날,
헤아려보니 토요일 아침 먹고는 늘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를 데려갔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올라가자고 하면 간다.
아이랑 놀 수 있는 저녁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잠자리 떼 사이로
저녁 노을과 성곽을 바라본다.
까지가 둥지를 찾는 모습, 깍깍 까까 소리를 흉내 내는 아이에게
가지 높은 나무를 가리켜 준다.

그 학교 앞 골목 초입에만 가면 비탈길을 재미있게 올라가 버린다.
해가 져버린 운동장에는 수녀님 혼자 걷기 운동을 하신다. 흙을 쥐어서 공중에 뿌린다.
그러기를 여러 번 축구골대 네트 밖으로 뿌린다. 두 손을 펼쳐서 아이가 뿌리는 흙을 받는다.
더 신이 난 아이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두 손 가득히 흙을 주어 내 손에 놓는다.
기분 맞춰주려고 ‘감사합니다, 더 주세요.’ 한다.

집으로 가는 길 주차된 차들 사이로 숨으면서 얼마나 재밌어 하는지. 매일 그런다.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럼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간다 하면서 나를 따라오게 해보았다.
안 따라 온다. 따라오는 척 하더니 도로 내려간다.
억지로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꽉 안고 업고 데리고 가면서 설명을 보탠다.
어디선가 엄마가 가버린다는 식으로 아이를 위협하면 안된다는 것을 읽고서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하늘에 달떴네. 떼쓰면 달이 안보이지.’
‘어.. 고양이 왔나 보자’ 한다. 야옹이 좋아하기에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아니면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를 불러준다.
‘얼굴색이 하얀 아이, 얼굴색이 까만 아이 모두 모두 친구죠.’
‘백두산 갈 사람 여기 붙어라.
어흥 어흥 동네 아이들아 다 나와라.. 호랑이 등에 타고 놀아보자.’
내 엄지에 제 검지를 대보려고 나에게로 온다.
그러면 엄지를 붙이라고 가르쳐주어도 꼭 집게 손가락을 갖다 댄다.

아이는 분꽃냄새를 좋아한다. 표정이 환해진다.
저녁이면 오래된 연립의 층계와 좁은 복도를 가득 채우는 달콤한 냄새.

아이는 대나무를 좋아한다. 아니 그 대나무들만 유독 좋아한다.
동네 골목으로 들어오려면 왼쪽으로 어느 집 담장 밖으로 대나무가 제법 많이 심겨져 있다.
걷기 전부터 그곳으로 가자고 해서 데려갔다.
꼭 골목초입의 그 대나무한테 가자고 한다.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잎을 만지작거리고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누구신지 담장 밖까지도 무궁화나 대나무를 심은 그 분께 감사하다.

집으로 올라가는 층계도 무척 좋아한다.
층계를 혼자 간다고 잡은 내 손을 뿌리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손을 놓는다.
두 계단도 못 가서 아이는 다시 엄마에게 손을 내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대신 아이가 쓰러질 때를 대비에서 자세를 잡고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현관에 열쇠를 꼿으면서 늘 아이랑 함께 하는 말이 있다.
'문을 열어요 활짝 마음의 문을 열어요.'
신을 벗고 거실 불을 켜면서 '불을 켜요. 반짝 우리 마음의 불을 켜요'
일주일전쯤 내가 '문을 열어요'하니까 아이가 받아서 '맘 문 여요..'하고 해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요새는 집에 들어서면 너무 환한 불을 켜지 않고 거실 창 쪽의 작은 백열등을 먼저 켜다가
어스름 저녁을 즐기면서 아이하고 전지를 펴놓고 색연필로 그리기를 한다.

저녁이면, 아이는 그림책을 지칠 때까지 읽어달라고 한다.
아마 낮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어내려는 것인지…
끝이 없다. 아이를 흥분시키지 않고 환기시키고 온방의 불을 끄고
아빠엄마도 이부자리에 함께 누워서도 자지 않으려 한다.
밖이 어두우니 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일 때는
밤 산책을 나가 잠들게 할 때가 많았다.

아이를 아이로 대접하는 것과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고 인지할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지켜보며 한걸음 물러나 봐주고 속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나를 너그러이 살도록 한다.

밤마다 자지 않으려고 해서 울더라도 불을 끄고 평소 열어두는 문들을 닫고.
아무리 울어도 달래면서 자야 한다고 수없이 말한다.
남들이 보면 애원 같아 보일지도. ㅎㅎ
이 때 아이는 아무리 울어도 지치지 않는지 계속 운다.
한 삼십 분이 넘도록 한 시간 가까이 되도록
평소 웬만한 일에는 제 풀에 꺽일 때까지 저만치 두고 모르는 척 기다린다.
요구 하는 것을 들어줄 때는 ‘떼쓰지 말고 주세요 말하면 좋지’라고 꼭 덧붙인다.
그러면 내가 요구하는 것을 먹고 싶은 것들을 냉장고에서 꺼내는 것을 확인하는
아이는 금새 주세요 라는 말을 흉내 내며 먹을 것을 본다.
그림책을 들고 오는 아이에게 엄마가 밥 먹을 때는 기다리라고
남편이 반복해서 식사 때마다 말해준다. 남편이 서둘러 먹고 읽어준다.
남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날은 내가 할 때도 있지만. 거의 내가 준비할 때가 많아
조금 지쳐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바람에 늦게 먹게 된다.
집으로 오는 길거리에서 자꾸 포도나 물을 달라고 하던가 우유를 찾을 때도 있다.
아이에게 참으라고 집에 가면 있다고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리고 다른 곳의 주의를
환기 시키면 아이는 잊고 나를 따른다.

굳이 정한 시간에 낮잠을 재우려고 않고 그 대신 활기차게 걷을 수 있도록
주중에는 저녁 먹고 아이랑 동네 산책을 한다.
손님 뜸한 예츠 ets’ 라는 금연카페가 문을 닫는 9시경까지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학로에 있으니 유모차밀고 집까지 걸어오면 10시정도 된다.
그 날에는 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곤 했다.
유모차에서 잠들면 집으로 돌아와 눕히곤 하면서 성공했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
동네에서 아이 데리고 밤에 그렇게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6월 11일 윤섭이 지난 3일 동안 오른 고열이 낫는가 싶더니..
12일 저녁 혀끝이 혓바늘이 보여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13일 병원 데리고 가니 수족구병.. 덕분에 새벽글쓰기 리듬을 미뤄두고

6월 14일 엄마학교 양귀비 수놓아 변기덮개와 헌 옷 재활용 재사용 내용들과 가정꾸리는 것이,
수놓는 것과 닮아 있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면 그곳에서 인생을 보고 느끼고 적용해보자.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세를 배운다. 틀려도 고칠 수 있고, 잘못해도 괜찮다.
그렇지만, 배우는 자세로 또 나쁜 점도 자신에게 약이 되도록 생각을 키우는 마음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도 있고 어느 정도 실천해 온 것들이지만.
안되고 못하는 것은 영원히 못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정성과 시간을 들이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6월 19일 새벽 0시 40분쯤에 일어나
재디가 만든 홈 비디오 보고 한시 반까지 샤워..하고 잠들다.
새벽3시에 윤섭 칭얼칭얼 깨었다.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몇 번씩.. 이젠 습관..
윤섭이 자다가 나를 찾는다. 아프니까... 자꾸 안스러워서.
어제는 엄마를 자꾸 때려 방안에 5분 정도 혼자 두었더니 서러워서 울고불고 .
몇 번씩 말해도 안 듣고 계속 재미로 한다. 두 번 정도 휴가였던 6월 17일에도..
과연 큰소리 내고 위협하면 그것을 따라 하니.

10시 반쯤 잠들고 0시40분 깼다가 1시 반에 잠들다가 다시 5시 25분쯤 기상..
일곱 시 반 윤섭 보따리 준비.. 팽이,표고.양파.계란.밀가루 섞어
한 수저씩 프라이팬에 붙이고..
카레 보온병에 싸고. 우유.. 새로 한 밥 싸고. 두부 부쳐 표고버섯, 양파랑 간장조림..
윽 너무 짜서 해물육수 부어서 냉장고로 직진..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추 가루, 청양고추 더 넣어서 부두찌개로 변신..할 예정..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이나 돌보시는 분의 얼굴을 때릴 때,
‘윤섭아, 엄마 예쁘다 해야지? 때리면 엄마 아파?’    
그러면 아이는 장난스런 얼굴로 내 얼굴이나 몸을 쓰다듬는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14개월 무렵 아이의 이 반응을 보고 말을 제법 알아듣는구나 생각했다.
타이르다 타이르다 안되면 나도 아이를 아플 만큼 손등을 때려본다. 아이가 얼굴을 찡그린다.
어떤 날은 우는 시늉을 한다. 우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아이가 그런 버릇이 든 것은 내가 초저녁잠이 워낙 많아
늘 아이보다 일찍 잠드니까 잠들고 조는 엄마를 깨우느라 생긴 버릇인 걸 알았다.

보통 9시경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졸다가 잠이 든다.
막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15개월까지 노력해 보았다. 앞니 옆에도 이가 나기 시작했기에.
새벽 2,3시에 아기랑 같이 자고 깨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30분쯤 지나면 깊은 잠에 들어버린다.
남편이 그 동안(저녁 9시경부터 새벽 1,2시까지) 아이를 얼러 분유를 타고 먹일 정도였다.
아이가 밤에 잠들지 않아서 우리 부부는 집에 모든 불을 다 끄고 안방 문을 닫고
아기 양 옆에 누워서 이런저런 졸린 이야기를 시도한다.
처음에 아이는 늘 열려있던 방들의 문이 닫히는 게 무서웠던지
문으로 달려가 열어달라고 또 떼를 부리고 운다.
방으로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기 때문에 방이 그리 어둡지 않은 편이다.
불을 다 끄고도.. 이것도 어두워서 그런가 싶어서 회사동료가 결혼 때 선물한 스텐드를
창가에 두고 켰는데 우리 눈에만 보기 좋은 듯. 스텐드를 처음 본 아이는 불 켜자마자
그 불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면서 잠을 깬다.
아이는 조금 졸기만 해도 모든 피로가 씻기는 듯, 다시 눈이 똘망똘망 .. 놀아줘요..
그림책 가져오고. 그림책을 바닥에 다 빼서 한바탕 꺼내놓고.

아이를 잠들기 전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부부가 장단 맞추기는 8월부터이다.
남편이 섬세하게 배려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아이 재우기는 남편의 몫이 되서
밤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느낀다. 미안하고 감사하다.
우리를 재워놓고 남편은 홀로 밤 산책을 나갔다 들어와 샤워 후 짧은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나는 새벽에 깨어나 짧은 일기나 책을 본다. 졸리면 서서 본다.

아이가 10~11시 사이에 잠들고 나는 아가 옆에 누웠다가 아가보다 먼저 잠든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안경 빼고 자라고 하면 아직 안 잘거야 해놓고.
거실에서 졸다가 몇 분 후 나는 잠이 들고 안경은 남편이 빼주기를 여러 번.
이제는 남편이 들어가 자라고 하면 순한 아이가 되어 안경 빼고 잔다.
  
지난달 무렵 19개월로 접어드는 아이는 초저녁에 읽어달라고 들고 온 그림책을
읽어주다 졸다 깼다.  졸고 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자지 않겠다고 떼쓰고 엄마 아빠도 모자라 돌보시는 분까지 얼굴을 마구 때려서
아이를 확 잡아 떼쓰는 버릇들이지 말라고 충고들을 받았다.
이 아이가 엄마를 우습게 안다고 너는 아이랑 기싸움에 졌다고. 고민이 되었다.
지나치게 떼쓰고 울면서 12시가 넘도록 놀자고 해서 몇 번 감정에 휘말려서
화낸 적이 있다. 그도 화를 벌컥 낸 적이 있다. 뒤이어 목격한 것은
그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놀랐다.
험상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제압하거나 큰소리로 혼내거나 엉덩이로 손이 가는 것을
그대로 아이가 배우게 된다는 것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편은 내가 아이를 버릇없게 키울까 걱정이 됐는지
화를 내도 무서운 표정을 해도 아이가 너글너글 웃는 일이 여러 차례..
남편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와 아이의 실랑이를 보다가 아이에게 화가 나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려고 하면
아이가 먼저 빙글 웃어와서 푸하하 웃게 되는 남편의 얼굴표정은
나로 인해서는 만들 수 없는 표정.
특유의 저음을 이용해 "너 아빠랑 이야기 좀 하자"로
점잖은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내었다.
아빠가 그 말을 하면 풀 죽은 시늉(항복의 표시인지 갑자기 떼를 안 쓴다.)으로
아빠랑 두 눈동자를 맞추고 있다. 나는 반복해서 부드럽게 말한다.


이로 젖을 깨물면서 서서히 젖을 뗄 때는 가슴을 찾는 그 아이의 얼굴을 밀어내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지금도 옷 속에 손을 넣거나 얼굴을 파묻고 간지럼을 태우면서 장난을 치면
'엄마 젖 이제 안 나와.. -실은 아직도 조금은 나오지만-.
윤섭 알지? 윤섭 이제 밥 먹지?' 하고 최대한 곱게 말하면서
얼굴을 떼어놓거나 부드럽게 '윤섭아 손 빼야지' 하고 말하고 기다린다.
그러면 못 이긴 척 슬그머니 웃으면서 손을 뺀다. 잠시 후 다시 넣는다.
아이는 여전히 가끔 때리고 밤이면 안 잔다고 떼쓰고 운동장에서 더 놀겠다고 한다
어제 밤에도 어김없이 내 옷 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한다. 목욕시키고 옷을 벗고 있으면
자기 성기를 만지 작 거리기도 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아이도 성본능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고 남편이 이야기 해준다.
그래서 별일 아닌 것으로 문제삼지 않고서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렇게 하면 엄마 아, 창피’ ‘쏜 빼라’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다른 엄마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이 아이랑 함께이면 어디서든 환영을 받았다.
동네 어디서든지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 아이들까지 인사를 건네준다. 감사하다.
생명의 신선함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우리는 아이에게 길들여지고, 하늘 아이가 우리를 어른 만들도록 지어졌나 보다.


기억에 남는 문장
'삶의 목표를 정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나의 목표는 관계에 의해 변하기 일쑤였다. 미루어 오거나 포기해버리거나 바뀌어졌다.
습관으로 굳어진 이후에는 아예 목표세우기 계획세우기는 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전략을 세우기는 한다. 이게 안되면 다음에는 이렇게 그 다음에는 이렇게..
고정된 계획대로 몰고 가다가 관계는 끊어지곤 한 경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두렵지만 솔직한 내 모습이다.

엄마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은 그 동안 외우기 식으로 알았던 의.식.주가 아니라
심. 식. 의. 주의 순서로 우선순위를 뒤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엄마학교에서 배운 것 들 중 실천해 본 것 중 하나가  '들여다보기'이다.
나를 들여다 보고, 아기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이가 그려달라고 색연필을 내밀기 때문이다.
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평생 소통이 끊이지 않고 자잘한 대화.. 대화하게 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려는 노력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가 머쓱해지지 않도록 소소한 노력을 한다.
그것이 노력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오랜 함묵에 익숙해져 버린 내게는 도전이었다.
아이가 돌 이전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과
손에 기다란 연필굵기 만한 것을 꼭 쥐고 다니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아기들은 손에 무언가 꼭 쥐는 것을 좋아하려니 생각했다.
과연 윤섭 흥얼대기를 즐기더니만 이제는 노래를 해달라고 한다.
아이가 소하면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다른 노래를 부르면 짜증을 낸다.
야옹이하면 ‘바둑이는 멍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만나자.’
감자하면 감자노래를‘감자 꽃을 보려면 감자밭에 가야지
감자밭에 가지 않고는 감자꽃을 볼 수 없어’
‘노누’ 하면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나는 개,고양이를 무척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실물을 볼 때는 주눅 들어서 피할 곳을 찾는다. 참, 아이 앞에서 망신스럽게도
윤섭 아빠 뒤에 숨는다. 동네 개들이 묶어놓고 키우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다니지도 못한다.
그러나 고양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자세히 관찰한다. 따라서 그려본다.
아이에게 그려주기 위해서. 여러 포즈들을 관찰한다.
고양이는 어쩌면 저렇게 유연할까 하고 본다.
집으로 오면서 커다란 전지를 가져온다. 집에 달력 뒤에 그리다가
아예 큰 종이를 써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색연필로 바닥이나 여기저기에 선들을
그어 놓는다. 이따금 아이 아빠가 여기저기에 낙서 같은 것을 그리니 타이르기도 하고
혼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눈감는다.
왜냐하면 무서웠다고 기억되는 엄마가 유일하게 내게 너그러웠던 기억이
방벽에 낙서를 하도록 허락했던 기억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회사 앞 문방구에서 산 색연필이 잘 지워지는 거라 소다를 걸레에 묻히고 닦는다.
유성매직도 곧바로 닦으면 쉽게 지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새 돌려놓은 세탁기 속 빨래 널어 놓느라 옥상에 올라간다.

후드득 날개 짓소리가 먼저 나고서 푸른 가을 옥상 느티나무 위로
기다란 전주에서 뻗어간 전선위로 날아가 버린다.
이 가지 저 가지에 있던 직박 구리들이 하늘을 난다.
엄마학교 서형숙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내가 보는 그 새
이름 모를 그 새들이 직박구리인 줄 알았다.
나는 사실 목소리가 그리 곱지 못해 별로였다.
선생님 왈, 직박구리는 원숭이처럼 운다는 거였다.
그런 직박구리를 보려고 직박구리가 좋아하는 붉은 열매가 달리는 산수유 나무를
이사한 집에 심었다는 말을 듣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느꼈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저 새가 어떤 매력이 있길래 하고 자세히 보게 됐다.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동네에 얼마나 그 새들이 많은지 저절로 눈이 갔다.
새소리도 원숭이처럼 요란스러워서 자기들이 모여 날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지
시끄러웠다.
첫 번째 가까이서 본 것은 최순우 옛집에서 명자 나무에 있는 꿀을 먹는 직박구리였다.
그 이후로 길을 가다 직박구리 소리가 나면 하늘을 휘저어 직박구리를 찾는다.
낙원연립으로 이사 온 후에는 2층에서 머리꼭대기가 만져지는 복숭아나무에
놀러 오는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선생님과 수업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새가 되었다.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늘공중이 푸른 강물이 되는 공상을 하게 된다.
배의 노를 저어가듯이 날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날개로 허공을 가른 다음, 몸을 내밀기 위해 날개를 몸에 찰싹 붙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순간 물고기모양이 된다. 날개가 몸에 붙는 순간 미끄럽기라도 한 듯 쭉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이 예뻐서 고개를 들고 그들이 지나가는 장면을 올려다 보곤 한다.
찍 찍.. 귀에 약간 거슬리는 직박구리 소리는
한번 날개를 펴고 몸에 붙인 그 순간에 난다.
박자가 일정한 게 4분의 4박자 정도.

그 순간에 허공을 50~70cm미터씩 앞으로 간다.

이 가을 동네마다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다.
부엌 앞 온유 할머님 댁 감나무에 직박구리 부부들이 작년처럼 찾아오고
자고 있던 남편도 벌떡 일어나 사진기를 가지고 싱크대 앞으로 올 것이다.
올 여름 유난히 과일이 풍년이었던 올 해는 거실 창 앞 복숭아를 먹는 것을 목격했다.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인지 급하게 찍 찍 거린다.
이십 년도 지난 2층 연립에서 삵아 뚫어진 방충망 사이로 윤섭과 나는 흥분해서
윤섭 아빠를 불렀다.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한 컷 한 컷 찍어두었다.
직박구리들은 꼭 짝수로 날아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세어 볼 때마다 짝수라 그런 추측을 한다.
둘씩 둘씩 하늘을 나는 직박구리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부리로 과육을 쪼고 부리 속에다 넣으면서 보이는 혀가
징그럽고 너무도 야생적이라서 순간 소름이 돋기도 한다.
박자를 그리면서 함께 날아가는 그들의 비행은 음악처럼 아름답다.


*****************************************************************

길지 않나?
 더욱 간결하게 압축하고 싶다.
너무 세밀하게 터치한 느낌이다.
글에도 뽀샵이 있습니다.
그걸 극도로 두려워해서  내면을 먼저 다 쏟아 놓아야 했나보다.
난 그 뽀샵이 싫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 같은 뽀샵
초첨을 흩뜨리는 빛의 산란을 만드는 행위가 꼭 나쁘다고만 생각할 정도로
고정관념에 들어차 있지는 않다.

*********************************************************************

이제 겨우 20개월 키워놓고서 이렇게 긴 글을 올려 놓아 쑥쓰럽습니다.
임신 6개월이 지나면서 계동 [엄마학교]에 갔습니다.
거기서 배운 것을 적용해서 어떻게 살았나 수행기를 써보라고 말씀하셔서
9월초부터 3번에 걸쳐서 몇 십 페이지를 써내려 갔습니다.
아이에 관련된 것보다 내 스스로에 대한 것을 쏟아 놓기 일쑤여서 힘겹게
써내려 갔습니다.
그후에야 평온한 마음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맞벌이 초보엄마로서 겪어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
엄마학교에 보내기전에 올려봅니다.



IP *.193.194.22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8.09.29 11:58:57 *.169.188.48
제가 idgie님이 지금 알고 계신 것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참 좋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밀한 그림을 보니 참 보기가 좋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좋은 엄마가 되실 것을 믿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은미
2008.09.29 13:02:19 *.161.251.172
좋은엄마, 윤섭엄마..난 선이씨를 보면서
나도 이런 엄마였더라면 ..진하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합니다.
진하가 윤섭이만 했을때 많이 힘들어하고 지쳐했었어요.
그래서 좋은엄마 윤섭엄마는 진하엄마를 늘 반성하게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buyixiaozi
2010.10.12 15:03:23 *.141.228.3
Doch die Blumen geformte Ringe sind nicht darauf beschränkt. Es thomas sabo online shop deutschland gibt viele Möglichkeiten, wie die Blumen-Design in eine Reihe von Mustern und Modellen Ring thomas sabo charm club anhänger wäre. Vier verschiedene Sorten von Verlobungsringe sind beliebte nämlich die filigrane Verlobungsringe, art deco angebote thomas sabo anhänger Verlobungsringe, Celtic Ringe und gravierte Ringe. Im zarten künstlerischen Arbeit von filigranen thomas sabo charm Ringe, ist ein kompliziertes blühenden Reben gesehen Hervorhebung eines oder sabo charms mehrerer Edelstein Blüte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