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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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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 15시 28분 등록
최근에 나는 책 세권을 내리 읽었다.첫책은 스스로 궁금해서 선택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고 두번째는 연구원 과제책인 찰스 헨디의 코끼리와 벼룩이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높은 분이 추천한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장회익씨의 공부도둑이라는 책이다.요근래에 읽은 책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서 책을 읽자마자 끝낼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울림이 큰 책들이었다. 찰스 헨디책은 지난 달에는 품절이어서 살수 없어 그냥 지나가 버릴가 하다가 그래도 다시한번 11월 책을 살 때 시도해보니 있어서 사서 읽어본 책이다.

이번에 읽은 책 3권은 그 배합이 기가 막히게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우선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은 거창한 역사얘기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과거경험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로 읽었다.나의 평생의 지론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문제는 이것을 찰스 헨디는 무엇을 기억하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느냐이라고 했는데 나는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그것이 나한테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하는 것이다.허기사 옆어치나 둘러치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사람은 지난 경험을 끊임없이 재해석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때로는 그 경험에다가 새로운 재료를 뒤섞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 요리를 해보고 새로운 양념을 넣어 보기도 한다.그러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이번에 이책을 읽으면서 우연에 대한 얘기가 과거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다가왔다.우연은 그냥 남한테 좋게 오고 나한테는 나쁘게만 오는 것으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예외적으로 반대방향으로 생각해온 것이다.사실은 같은 것인데도 말이다.말하자면 우연은 중성이다.내가 어찌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꿈보다 해몽이다.그다음 문제는 사실과 바라는 것의 차이다.사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세샹을 살면서 익히 알고 있다.알고 있지만 바라는 바나 나의 능력이나 사실을 그대로 이해하거나 볼 줄 모른다면 그냥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보아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그래서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수 있는 능력이 문제다. 

그다음 읽은 찰스헨디 책은 나의 직장생활에서 내가 미처 느껴보지 못한 부분을 상당부분 다시 살려내고 새롭게 해석하도록 했다.내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에 비하면 왜소하게 보였다.그러나 나는 나식대로 살았고 이책에서 여러번 나오듯이 다르게 보고 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이작가는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솔직했고 자기가 잘 못한 것도 스스럼없이 밝히고 무슨 일이든지 좋은 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좋지 않은 면도 있으니 그점을 감안하라고 한다.당연한 얘기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고 또 무슨 일을 생각할 때 좋지않은 부분은 가급적이면 없거나 작게 보고 싶은 것이 상정이다.이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내가 그냥 지나가면서 편하게 세상일을 볼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어찌하든 벼룩이 되어 보겠다고 맘을 먹은 상태라 이것을 예사로 볼 것이 아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 다짐을 한것은 적어도 나자신 한테는 정직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냥 저절로 책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에 상응하는 진통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어느날 갑짜기 책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책을 쓸 수있을 만큼 시간 노력 내 온갖 재주 즉 나의 모든 것를 쏟아 부어야 된다는 것이다.문제는 콘텐츠다.아무리 매끄러운 글 재주가 있다해도 알맹이가 시원찮으면 이야기가 다른 것이다.하마터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릴뻔한 이 책을 챙겨 읽고는 내가 앞으로도 한참을 더 배워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아니든다.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할가 하면서 읽어보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읽기가 되었다.그래서도 변경연 과제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그다음 읽은 책이 장회익 교수의 공부 도둑이다. 장교수는 나와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단과대학이 다르고 나보다 10년가까이 년상이시다.보통 때 같으면 별로 차이가 안난다고 하겠지만 이시대는 같은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확 다른 세상을 살았다.예를 들면 장교수는 대학 4학년때 419를 맞았고 나는 중학교 1학년때다. 물론 서울하고 내가 있었던 대구하고는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장교수는 100여명이나 죽었다는 총살 현장에 있었고 나는 그소요에 휩쓸리긴 해도 죽을 염려는 없었다.장교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지만 나는 4살때 625를 맞았다.
요즈음도 통하는 얘기겠지만 아마 장교수와 나는 중.고 .대학입학시험을 같은 방식으로 본것이 없을 것이다.어른 들이사 그게 그거라고 할런지 모르지만 당사자 들은 평생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사느냐 문제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나는 대학입학시험은 5개 과목으로 대학마다 시험과목과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방식도 달랐다.국가고시는 아에 없었다. 그런데 5개 과목중에 영어문제만 같고 수학과 국어는 문과 이과가 달랐고 나머지 두과목은 대학교나 단과 대학마다 선택과목이어서  다 달랐다.그래서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고 싶으면 적어도 두과목은 새로 공부를 해야 되니 왠만하면 엄두를 못낸다.그대신 5과목으로 승부를 내야 하니 그 난이도가 높았다.그래서 내가 당시에 선택했던 과목은 40년이 지났지만 머리속에 뱅뱅돈다.그러니 세상살면서 그 과목의 특성에 맞는 사고방식으로 사니 어찌 그영향이 작다고 할 수 있나.

이 장교수의 공부도둑을 읽으면서 지난 과거 경험중 새로운 경험읽기를 알려 주었다.그중에 하나는 나역시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고 어떤 때는 교과서를 끝내고 부교재로 공부를 하는데 이것도 없이 할 때도 있었는데 이때는 꼼짝없이 혼자 끙끙대며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나는 평소에 책읽기를 즐겨 해서 그덕에 그래도 왠만큼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응용실력이 좋아서 그리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나는 그런대로 스스로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 소화를 했다는 것이다.수학 문제 같은 것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며칠을 씨름을 하면서 끙끙대다가 꿈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었다.그런 방법이 결국 남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엇던 것이다.

장교수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찌 어찌해서 난관을 헤치고 남부럽지 않게 평생을 즐기면서 공부를 원없이 했다.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겹다고 하겠지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장교수는 공부하는 장애를 하나의 장래를 위한 시련으로 보았고 이를 잘 극복하였다.그러나 이것은 잘 감당했으니까 하는 얘기다.나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시련이 원망스러운 것이다.단지 그정도나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스로 헐 수 밖에 없다.그리고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은 누구한테나 적용되는 특수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그만큼 각자 자기에 맞는 방법으로 한다.그런데 그것이 딱맞거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시험을 쳐보면 다 차이가 난다.공부를 하면서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공부 결과가 좋은 사람은 그 공부방법 또한 열심히 노력해서 터득한것이다.방법이 시원찮으면 결과가 뻔하다.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모두들 잘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공부 잘 한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노력을 많이 안하고 잠도 잘 자고 학교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자랑을 한다.이것은 한참 잘 못되었다.그리고 자기는 머리도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이것도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다.여기 장교수는 적어도 이것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은근 슬적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나는 노력을 많이 했다.대학압학시험을 볼때는 한달 전쯤 부터는 하루에 2-3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다 쏟아 부었다.생각만큼은 아니라도 왠만큼은 성과가 있었다.기본적으로 내가 할 만큼 해서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부다라고 볼 수는 없다.나는 운이 좋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있었다.

사실은 대학뿐만이 아니고 세상에는 단 한가지 사실로 사람을 결정할 수 가없다.전부를 놓고 보아야 하는 데 우리는 잘 모른다는 핑게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고 만다.크게 경계를 해야 되지만 알면서도 잘 안된다.내 스스로도 그렇고 남도 무슨 간판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하지 말자도 해도 우선 이것이 손쉬운 방법이니 그렇게 하고 만다.

또하나 이 책이 나에게 다시 한번 강하게 지시하는 것은 세상사는 이치는 스스로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세상사는 방법이 똑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각자 알아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살면 되는 것이다.공부하는 방법도 그렇듯이 말이다.

아인 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처음 깨달은 방법으로 지금은 깨달을 수가 없다고 한다.그것은 아인 슈타인이 처음 애써 찾아낸 방법이지만 너무 힘들고 좁은 문이여서 보통사람은 들어갈 수가 없단다.보통사람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넓은 길을 닦아 놓았단다. 그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아직 관련 지식이 축적이 안되었으니 처음 발견할 때는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때와 다르다는 것이다.이처럼 세상진리도 처음 닦아놓은 사람과 나중에 이것을 다루는 사람은 꼭 시간과 주변 지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꼭 같은 방법으로 볼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어차피 세상은 각자 나름 대로의 잣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교수 책을 보면서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많은 부분을 비교하면서 자연스레 읽었는데 사실 이것이 어찌 보면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많은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찰스 헨디의 책은 내 직장생활을 다시 보게 하였지만 나라나 환경이 너무 달랐다.다만 미래사회나 같은 사람이니까 하면서 공감하고 읽엇다.장교수 책은 공부하는 얘기로 나의 공부 경험을 되살리면서 미처 내가 놓쳤던 기억이나 느낌을 갖다주었다.그러면서 좀 더 공부를 해야 되겠지만 나는 너무 욕심낼 것이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 생긴대로 책을 쓰면 된다고 다짐해본다. 출판이 여의치 않으면 자비로 하면 된다고 한다.아니면 그냥 복사본으로 만들어 읽어보게 하고 싶은 사람한테 보게 하면 어떨가 한다.나는 나 생긴대로 내 형편대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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