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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d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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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5일 08시 16분 등록

세시에 깨어나 한주간 밀린 빨래를 했다. 옥상에 올라가니 어제 곱게 달무리를 피워내던 하늘가에 회색먹구름으로 꽉찼다.  그 새벽에 관객도 없이 노래하는 박새소리에 홀딱 빠져서 멀거니 흐린하늘아래 빨래줄앞에서
멈춰서서 새소리를 들었다.  날기도 어쩌면 그렇게 경쾌한지. 그런 몸짓으로 살고프다.
시멘트 벽을 뚫고 들어와서 내 모든 행동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귀기울이게 하는 세상에는 명랑한 회색도
있다는 것을 노래하는 청회색 슈트 곱게 차려입고서 청량한 새벽 리사이틀을 하루도 빼지 않고 하는 너.
새벽 박새야,  너를 닮고 싶다. 먹고 날 수 있을 만큼 먹고 마시는 가난한 새가 되고프다.
수첩에 적어놓고 다니는 글 귀 '늘 한결같이 노래하는 한마리 파랑 박새가 되어 날고 싶다.
아니면 어느 소녀 박새의 목소리를 싣고서 타고 흐르는 바람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소녀의 노래를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신선한 것, 그것은 박새소리 박새의 경쾌한 날개짓이다.
나무가지마다 제 소리를 매달아 놓듯이 함께 짝지어 날아다니는 작은 새..
목소리는 청아한 새벽빛깔,  내  영혼의 갈증을 들고 이 박새소리 들리는 작은 언덕위 나무곂에 가면
고정되었던 시선에서 풀려나 내안에 일부분중 웅크리기만 하던 내장 깊은 곳에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새벽부터 샤워후 빨래하느라, 미뤄두었던 계절지난 옷,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옷을 과감히 정리하느라 
세 시간을 보냈더니 배가 고파 빵을 두 개나 먹어 치웠다. 


지난 10일 부서이동한 첫 주동안 이것이 무엇인가 싶을 정도로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까 조각시간이 생기면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수첩에 이런 저런 것을 적어보았다.  학창시절 실천할 수 없는 무리한 계획을 반복해서 세우다보니
사실, 계획이라는 것은 목표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고 나는 엄청 욕심으로 그득한 사람이라는
확인만을 남기는 성취되지않은 욕망으로 늘 갈증을 느끼곤 했다.
게으름이라면 하루종일 늘 번잡하고 분주하고 무언가 조급해하고 만일을 대비해서 여분을 만들어서 더욱
시간이 걸리는 방식을 훌훌 털어버리고픈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대강하려고 노력한다.
청소도 대강.. 빨래도 대강 ... 아침저녁 밥상도 되도록 간단요리로

이제는 머리속으로 하루를 그리지만 고정된 계획을 아주 싫어한다. 나라는 사람은 계획처럼 움질일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앞을 바라다보는 계획이 관계에 의해서 아주 많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 반복되자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 인생은 내 맘대로 살 수가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계획은 내가 할지라도
실행은 나 혼자서 할 수 없다. 청소를 하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부른다. 설것이를 하려는 순간 누군가 더
급한 일로 나를 불러 세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제지되어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을 조금 늦게 에둘러
가도 괜챦다는 마음을 배운다.  하나 하나 그래서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도모하게 되어 집중적인 시간에
한가지에 집중되는 마음으로 고요히 가라않히기가 쉽지 않다.  저렇게 음악보다 청아한 박새소리가 아니고서는.

계획없이 그냥 끌리는 대로 가버리는 식도 시도해 보고 이따금씩 계획대로 되면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안되더라도 내가 가는 그 길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않으려 내게 남은 풍선 하나 하늘로 날려 보내지 않으려
그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나에 칭찬에 옹색하고 늘 상대적 기준에 시달리고. 이것을 떨친 줄 알았는데
아니다. 다시 굳어진 거울 속 내 표정에서 .. 거울속에 나에게 좀 더 따뜻한 눈짓을 한다.
스스로에 대한 공감능력과 지지하는 방법에 서툴러서 자기 방식을 잃어버린
날개짓이 서서히 자기빛깔 자기 몸짓 말짓을 찾을 날이 꼭 오리라고.

네게 주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있는데 이 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가 결혼 후 내 최대의
과제이다. 마치 기골이 장대한 사람처럼 젊음이 뻗치는 듯 일하면 금방 소모되어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누리는 일에 소홀해져 버린다. 재디로부터 그만좀 해 그런 충고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멈추고
너질러진 대로 두고 보는 일에 조금 익숙해져간다. 싱글때도 생활속속들이 정리를 잘 한 편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한다.
가정이든 직업의 일터에서든,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의 상식처럼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퇴근이 한시간에서 두 세시간 미루어진다. 새로 옮긴 부서는 그렇게 퇴근시간을 알 수 없다.
그러면 저녁을 사먹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반찬을 만들어 놓고
만들기 손쉬운 국물 아침에 하나 끊여 두고 저녁에 먹도록 해야겠다.
이도저도 안되면 외식이지만. 가급적이면. 우리집에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게 좋다.
퇴근하고 골목 접어들면 어느 집인지 폴폴 끓이는 김칫국 냄새가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지나가버린 시간들과 내일 계획은 타인에 의해서 아니면 관계에의한 동요나 동의라는 이름을 쓴 선택으로 
확정되더라도. 오늘 하루를 사는 새 아침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자.
여러가지 틈바구니에서 내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나를 둘러싼 그들도 자신을 들여다 볼 여유를 끼치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그전에는 가끔씩 걸어서 가던 출퇴근 길..
택시타고 겨우 출근시간에 맞추고 다른 때보다 조금 늦은 퇴근하면서 무엇부터 해야할지 결정하며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잡아 탄 달리는 택시안에서 빠른 계산이 오고간다.

장충동에서 안국동까지 수 년을 걸어서 출퇴근 하는 과장님이 계시다.
나도 지루하게 런닝 머신에 올라가 운동하는 것보다는 걷기나 동네 뒷산가는 것이 좋다.
출퇴근시간이 나보다 빠르고 나보다 몇 시간 뒤에 퇴근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일상의 흐름을 매끄럽게 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배우고 싶다.
IP *.142.18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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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8.11.15 09:11:55 *.175.135.34
새벽 세시에 일어나 밀린 빨래를 하고- 세탁기가 드~러러 돌아가는 것 말고, 아가 옷을 정성껏 손으로 빨고 삶느라 그러셨겠지요- 옥상에 올라가 빨랫줄에 널다가 새벽 박새를 바라보는 모습.
그림 같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하는 일상들이 얼마나 팍팍할까
그 시절을 나도 지나왔는데,나는 그리 못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시처럼 그림처럼 살아내시는 군요.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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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03:28:55 *.111.241.42
idgie님의 바쁜 하루가 안스럽습니다.
글을 읽고 나서 부터 썩 좋은 방법도 없으면서 뭐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아
며칠동안 마음만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말 못하는 3살 이전에 아이를 놀이방, 어린이집으로 보낼때가 가장 마음 아프더라구요.
칼퇴근하고 달려가도 우리애만 맨꼴지까지 남아 혼자 기다리고.
그런데 idgie님은 퇴근시간이 한,두시간이나 늦어진다니 속상하겠다는 마음에...
가까이 있음 가끔 데려와도 줄텐데...

어딘선가 직장맘의 현명한 살림노하우를 본 적 있어 알려 드리려고 분주히 찾았지만 보이지 않네요.
저는 그렇게 못했는데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내용이었거든요.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본다면
주말에 일주일치 먹을 국을 끓여 한번 데워 먹을 만큼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오징어 볶음이나 돼지고기도 양념을 해서 한끼씩 금방 볶아먹을 수 있도록 얼려 둔대요.
자세하게 적어 놓은 내용인데 이렇게 적으니 별 도움이 안 될것 같아 슬퍼집니다.ㅠㅠ

저는 아이가 어린 몇 년 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하루가 너무 바빴으니까요. 오히려 그때 나 자신을 들여다 보지 못함이 그 시기를 더 잘 보내게 한것도 같아요. 내 몸이 여유가 생기니까 정리하지 못한 몇 년의 뒤엉킴을 풀고 싶을 강한 욕구가 솟았어요.
무엇보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최고 인것 같아요.
아이를 맡아주는 분은 전문가니까 나보다 더 잘 봐주실거야 하는 믿음.
양말, 속옷, 와이셔츠, 넥타이는 넉넉하게.
집이 지저분하면 어때. 발바닥에 밟히는건 싫으니까 방바닥만 깨끗하게 치우고 다른 부분은 일요일날 대청소로.
일요일 대청소 분업화. 자질구레한것 치우는 것 싫어하는 남편은 설거지와 화장실청소.
나는 방청소와 빨래하기, 쓰레기 버리기와 빨래널기는 같이.
사실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죠.
어느 분은 집안 일을 같이 하는 것이지 도와준다고 말해서 열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전 도와주나 같이하나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마인드의 차이는 있겠지만 꾸준히만 해주면 고마울 따름이죠.
울 그인 뭐든지 저와 같이 하는걸 좋아 해서 저녁을 먹고나면 드라마 같이 보자고 나보고 애기 목욕을 시키라고 하고 자기는 설거지를 하고 외출할때도 애들 준비시키라고 하곤 집정리하고 설거지 해주었는데 고맙더라구요.
idgie님은 연약하고 가녀리니까 더 많이 같이 하셨음 좋겠어요. 물론 지금도 잘하시겠지만요.
그리고 다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기본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 대신 한결같이 하기.
어른들께도 양가 가족들한테도 집안 일도. 기본만 하고 사는 것도 힘든게 우리 삶이 잖아요.

지금의 종종 걸음과 수많은 고민의 긁적임이 멋진 엄마, 성숙한 idgie님을 만들 거라고 믿어요.
힘내세요.^^
가정에는 여자가 행복해야 다 행복한거 아시죠?
그러니까 아프지 마세요. 여린몸이 아플까봐 걱정이 많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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