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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7일 12시 11분 등록

몇 년전 무좀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
독한약이라 간기능검사를 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피검사를 했는데 뭐가 좀 안좋다고 초음파검사를 해보잔다.
병원검사라는게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용감하고도 무식하게 무시했다.
뭐 큰병이면 안다고해서 뽀족한 방법이 없는거 아닌가(정말 무식하다)

시간이 흘렸다.
속이 자꾸 안좋았다.운동을 하고 산에 열심히 다녀도 나아지지 않는다.
포도단식을 2주간 했다.자연치유에 기댔다.
단식후 나아지는듯도 했다.
아침 5시에 기상 나만의 하루 두시간을 사용하자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계속 속이 안좋았다.
책상앞에 앉으면 피로감이 느껴져 하루 두시간 플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옆구리의 열감과 명치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래도 버텄다.낫겠지 산에 열심히 다니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면 괜찮겠지
아프면 명상을 한답시고 앉았다.
밥을 먹으면 끄윽거린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걱정할까봐 괜찮다고 했다.

시간이 또 흘렸다.
일주일중 이틀정도는 덜하니 사는데 쫓겨 잊어버리기도 한다.
옆구리쪽 열감과 뻐근함이 심해진다.
병원은 싫다고 하니 아내가 한의원에 가보자고 했다.
나도 신장이 안좋은듯싶어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도 피검사를 한다.
병원가서 피검사를 한번 해보라고 하면서 한약은 지어주질 않는다.(양심적이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동네병원가서 진료도 받고 소변과 피검사를 했다.

결과가 나오는날 나는 회사에 있고 아내가 결과를 보러갔다.
나는 틀림없이 결과가 안좋을거라 여겼다.이제 올것이 오는구나,
아내 전화를 기다리며 내심 긴장이 되었다.
아내의 전화다.목소리가 밝다.바보야 .아무것도 아니래 라고 했다.
신장, 간수치 다 이상없대.
단지 혈소판수치가 낫은데 과거 간염을 앓은 경력이 있으면 그럴수도 있다는 말이다.
속으로 미심쩍었지만 괜찮다는 말을 믿고싶었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었다.그래도 차도가 없다.
마침 인생전환기건강검진표가 국민건강공단에서 나온게 기억이 났다.
아내가 같이 한번 받아보자고 했다.추가로 상복부초음파검사까지 했다.

초음파검사를 받을때 눈을 살포시 뜨고 검사담당자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안좋은것도 같다.
평소에 몸이 아픈데 없었냐고 묻는다.뭐 좀 그랬다고 답했다.
검사가 끝나고 안좋은가요? 암인가요? 하고 대뜸 물어보았다.
그건 아니고요.다른 검사와 같이 정밀하게 봐야된다며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암은 아닌가보네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일주일 뒤 결과를 보러 건강검진센타로 갔다.
그날 비가 내렸다.아내는 집에 있으라고 하고 혼자 갔다.
버스안에서 비 내리는 차창을 보노라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올것이 올텐데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까...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받아보라며 내어주는 검사결과표를 받았다.
대충보니 빨간게 여럿 보인다.
십이지장염의심 이건 별거 아닌것 같고
담에 용종 이것도 추적검사하면 될것 같고
마지막에 보이는 간경변의심 어쩌구저쩌구
이거로군,
의사선생님이 소견서 써주며 큰병원 가보란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 전화가 온다.담담한 목소리로 집에가서 말해주겠노라 했다.
무어라 말할까...아내에게 미안하다.
간경화 초기라하니 아내의 눈시울이 금새 벌겋게 달아오른다.
장인어른이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그러고보니 내가 B형간염보균자라는것이 뒤늦게 상기되었다.
20대 초반에는 간염을 앓았었다.
20대초반에는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아침마다 동네 산에 다녔던 덕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괜찮은걸로 믿고 있었다.
B형 간염을 가지고 있다는게 그렇게 무서운줄 인터넷을 찾아보고 알았다.
아,관리를 했어야 하는건데...이렇게 무식하고도 무심하게 살았을까,
간이 반란을 일으킬만도 하다.싸다 싸

살아온 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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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11.27 19:07:27 *.36.210.121
큰오빠는 서른 즈음에 간경변을 앓았다. 장가 든지 3년 남짓 사내 아이가 하나 있었고 올케는 작은 아이를 연년생으로 임신 중 이었던가. 처음에는 B형 간염 보균자라고 했다. 그리고 간이 막 굳어들어가는 초기 간경변이라고 했다. 천청벽력이었고 어머니는 곧 숨이 멎을 듯 기겁을 하셨다. 이내 얼마가지 않아 올케도 간염에 걸렸다. 백방으로 노력했다. 특히 본인들도 본인들 이려니와 어머니의 애닳음이 무지하게 컸다. 그리고 누구보다 강해지셨다. 그리고 가장 권위 있는 믿을 만한 대학병원의 전문의를 찾아가 그 처방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충실하게 따랐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근근한 살림살이에도 큰오빠만을 위해 쇠고기 살코기만 먹이고 밤낮으로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홍당무를 갈아 마셔댔다. 어머니가 모두 해 주셨고 얼마가지 않아 회사를 그만 두고 언니가 대신 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부부금실 하나는 세상 남부럽지 않게 끝내주는 사람들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만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 투병 끝에 모두 건강을 되찾았다.

큰오빠는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생전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항시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았다. 큰 병 이후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로 그에게 장남이라는 짐을 덜어주는 데 동의했고 그는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더 나은 꿈과 미래를 위해, 좀 더 솔직이는 여기서는 할 수 없었던 무슨 일이라도 이겨내며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두 발과 두 어깨로 오롯이 세상에 맞서 원도 한도 없이 힘껏 살아가기 위해 먼 타국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 가족의 건강만을 빌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성실했고 착실하게 살았다. 한 스무 다섯해 쯤 되는가보다. 그 후 지금은 두 자녀 모두를 다 출가 시켰고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잘 보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 때를 생각하면 늘 감사할 뿐이다. 때때로 부모님 마음 한 켠이 쓸쓸하실 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놓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며 남부럽지 않게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볼 수 있게 해주어 그들의 생존만으로도 감사함이 절로 든다.

사람들은 자주 변한다. 변화하는 것이 삶의 정체일지 모르겠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저 당연한 변화일 뿐일지 모른다. 어디에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한 우리는 살아있다. 이 생각이 끊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며 처신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이라서 얼마나 다행일지 생각해 보시며 힘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지 못하는 님의 벗이 해냈다면 님께서도 얼마든지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은 초기 증상은 아무것도 아니기도 합니다. 그쯤은 되어야 정신들을 차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남의 일이라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일 겁니다. 이곳을 찾으셨다면 이미 더 나은 아쉬움 없는 변화된 일상을 시작하셨습니다. 전문의의 처방에 잘 따르시고 지금의 소중한 마음들로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치유하실 수 있고 더 나은 건강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자주 병상 일지로 힘을 북돋우시길 바랍니다. 좋은 기가 님에게로 향할 것을 믿습니다. 건강한 일상을 기원드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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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이
2008.11.28 08:46:54 *.5.56.156
큰오빠분이 건강을 찾으시고 잘 살고 계시다니 기운이 나네요.네 제 병에 대해서 큰걱정 안합니다.그리고 지금 많이 호전되었습니다.몸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서 더욱 정신차리고 있습니다.회사 열심히 다니고 섭생주의하고 피곤하지 않게 관리하여 더 나빠지지 않으면 됩니다.특별한 치료약은 없지만 건강회복하신분들도 많더군요.괜한 글 올렸다싶었는데 답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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