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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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내기로 한 세 번째의 마흔을 맞이합니다. 첫 번째의 마흔은 집에서 알고 있는 나이입니다. 제 나이 또래에 시골에서 자란 애들이 어련히 그런 것처럼 주민등록상의 나이와 실제의 나이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 IQ 검사 시에 혜택을 많이 보았습니다. IQ라는 것이 실제 연령과 사고연령의 비를 측정하는 것이니 분모인 실제연령이 줄어 있으니 실제보다 조금 높게 나오지요. 어쨌든 무신년 생이니 벌써 2년 전의 일입니다. 두 번째의 마흔은 주민등록상의 마흔입니다. 작년입니다. 작년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많은 좋은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올해는 세 번째의 마흔은 만으로의 마흔입니다. 이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부여잡고 보내기 싫어했던 마흔이라는 나이를 이제는 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마흔을 그토록 보내기 싫어했던 이유는 육체적으로는 힘이 떨어져 가는데 이룬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그런 심정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해에 마지막으로 만난 맑은 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고는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의 깨달음이 느껴지는 글을 대할 때는 존경의 마음이 있습니다. 나도 그들의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올해에 글을 통해서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젊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고 그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고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맑은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작년이 되어 버린 지난해에 만난 사람들중에 저보다 나이어린 사람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그 한 분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맑은 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맑은 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아직 젊으시잖아요.”
맑은 님의 말을 듣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엇일까 혹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캇 펙 의 “끝나지 않는 여행”이라는 책을 만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질문을 가지고 있으면 그 대답을 우리는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따라서 어떤 질문을 하는가는 매우 중요하지요.
그 책에서 저자는 예순 다섯 살의 작가 존 머퀀드와 함께 보낸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나이가 많았으나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나이 드신 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 경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지난해에 만났던 세 분이 특히 떠오릅니다.
한 분은 sans라는 필명을 가진 최
또 한 분은 이수라는 분입니다. 이분을 지난 가을 소풍 때에 만났습니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순수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아침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나오셔서 혼자 조깅을 하십니다. 젊음을 그렇게 유지하시나 봅니다. 이분이 연구원 따라 하겠다고 일년 동안 이루신 것을 보면 이제 갓 마흔에 나이 타령하는 저가 부끄럽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 그것의 반에 반 만이라도 배우고 싶습니다.
마지막 한 분은 구 본형 사부입니다. 이분은 만나 뵐 때 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봄 소풍때, 시 축제때, 가을 소풍때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린애들과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어린애들의 호기심이 살아있고 그 표정이 살아있고 그 마음과 어울릴 수 있음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부님 사람이 늙으면 사부님처럼 다 그렇게 되나요? 사부님이 그러십니다. 아니야. 나는 아주 예외인 사람이야. …
그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모임을 만드신 아니 만들었다기 보다는 창조적 부적응자들이 놀 수 있는 소굴을 제공한 사람다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위의 세분들 처럼 나이 들고 싶습니다.
글로 써보니 이제 제가 마흔을 기꺼이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정리가 됩니다. 스캇 펙이 이야기 한 것 처럼 육체의 나이는 하나 둘 먹어갈지 몰라도 우리는 죽는 날 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채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어린 분들이 더 앞에 서 있음을 시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이 조금 더 일찍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차야 넘친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통하나 봅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채워두다가 보면 하나의 생각으로 엮어지나 봅니다.
이제 마흔을 기꺼이 보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꽉 채워서 보낼 것이기에 만 마흔인지도 모릅니다. 올해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아직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이제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