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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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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9일 19시 11분 등록

이번 주 변경연 '마음을 나누는 편지'에 우리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 후,
여러 사람의 축하와 격려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답장 중에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아둔 편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래의 편지입니다. 그녀는 6살짜리 정신지체소녀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그녀의 마음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생활 때문에 아이를 온전히 돌보지도 못하고,
그녀는 몸이 아픈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일하러 나갑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건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닙니다.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지만 나는 그런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니
그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편지를 쓸 자격은 없습니다. 그래서 망설였습니다.
섣부른 충고나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아이의 합격을 축하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아이에 대해 희망할 것이 없다는 한숨이
그녀의 글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저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편지쓰느라 할애해준 그 시간 만이라도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가끔 그녀의 한숨을 내게 토해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요.
그런데 편지를 보내고 나니, 역시 저는 위로하기 보다는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걱정한대로 어줍잖은 충고만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모르는 사람끼리 이나마 소통할 수 있는 게 어디랴,
그렇게 지금 자신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편지를 통해 사람들과 살아있는 소통을 하는 것, 그것만은 참 좋습니다.     

그녀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조민정이라고 합니다. 먼저 아이의 대입합격을 마음 깊이 축하드립니다.
아마도, 저에게도 그런 기쁨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기분으로 희망을 담아 축하드리고 있는 것일 거예요.
저에게도 하나의 딸이 있는데, 선생님의 딸처럼 소극적이고 할머니나 저를 떠나질 않죠.
830그램으로 27주 3일 만에 태어난 조산아인데다가, 뇌성마비를 앓고 있어서 삶에 더 자신이 없나봅니다.

노래만 나오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추는 6살짜리 여자아이죠.
의사들은 아이라서 진단을 내리진 않았지만 인지력이 부족해 인지치료와 감각치료를 받고 있지요.
몸도 정신도 다 자유롭질 못합니다.
 
저는 풀 타임으로 회사를 다니는 터라 몸아 아픈 노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기도 없이는 살 수가 없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는 말을 할 시간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글을 읽으니 아이를 갖은 부모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저에게도 이런 기쁨이 찾아 왔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만 한다면야 나의 아이를 멋진 발레리나..혹은 춤꾼으로 만들고,
늘 그것만을 생각하겠죠. 세상은 민주 같은 아이를 돌봐줄 선생님이 없어요.
왜냐면 정상적인 아이들이 자라기에도 버겁거든요.
그들이 따라가기에도 바쁜 세상엔 민주의 몸을 돌봐줄 선생님이란 한계가 있더라구요.
 
음..이런....!! 축하드린다는 말을 쓰려다 한풀이(?!)를 하나봐요. 그만 씁니다.
따님의 앞 날은 늘 행복할 거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의 답장


하루하루가 기도 없이는 살 수가 없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는 말을 할 시간도 없으시다는 민주 어머니, 민정씨!
민정씨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민정씨와 민정씨 어머니 두 분 모두 아이 때문에 힘든 삶을 사시는군요.

 세상 문제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 무슨 말을 해드려야할지 저는 모른답니다.
민정씨가 저에게서 어떤 뾰족한 답을 기대하며 이 글을 썼다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해 정상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의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닐까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 분류는 내게 실효인 것이지요.
민정씨라면 민주를 적어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민주는 오로지 민정씨에게만 다가온,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런 선물이 아닐런지요.

내가 민정씨의 힘든 형편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그 선물을 싫다고 무를 건 아니잖아요.
민주 입장에서 생각하면 민주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아이인지도 모르겠어요.
남의 눈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온 존재로 말하고 행동하는, 정말 순수한 아이니까요.

민주가 왜 민정씨의 어여쁜 딸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할 용기가 제게는 없습니다.
나는 그런 힘든 상황의 주인공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어차피 피해갈 고통이 아니라면 남의 눈, 남의 평가, 세상의 상식 이런 거 다 떠나서
그 애 자체에 집중하고 그 애와 함께 즐겁게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듭니다.

우리를 만드신 그분이 선한 분이라면, 그 분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해요. 한숨 짓고,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대신에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누리겠다고 '작정'(네, 그건 작정이지요)하면 어떨까요. 노래만 나오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추는 아이와 민정씨도 함께 춤을 추면 어떨까요.

혹여 그 아일 불쌍한 아이로 바라보고 있다면,
혹여 왜 내가 저런 아이의 엄마여야하는지 의혹을 갖고 있다면
그건 그 아일 민정씨에게 주신 그분에 대한 실례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인생을 부모니까 책임진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거기엔 '나의 판단'이 지독히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죠.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대로 바라보아 주는 것이 그것에 대한 가장 지극한 예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힘든 일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 저에게 민정씨의 한숨을 토해내도 좋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민주를 한 번 보고 싶군요.
아마, 참 아름다운 아이일 것 같습니다.
특히 눈망울이 예쁜...
 
힘내세요 민정씨, 가진 것을 즐기지 못하고 안 가진 것을 바라보는 한 우리에겐 희망이 없어요.
 
당신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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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2009.01.29 22:53:00 *.187.43.116
한숙님의 따뜻함이...
오늘은 더욱 인간에 대한 뜨거움으로 느껴지는 군요....
그 분께도 용기와 위안을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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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2009.01.30 15:18:09 *.6.1.61
"모르는 사람끼리 이나마 소통할 수 있는 게 어디랴..."
이곳이 점점 좋은 마당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을 건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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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1.30 15:56:01 *.48.246.10
주고 받는 글에서 마음으로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느낍니다. 선한 마음이 날 이끕니다. 한숙님의 마음에다가 제 마음을 실어 보내드립니다. 힘내시고요! 민주라는 세상을 통해 꼭 그 기쁨느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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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관
2009.01.30 23:18:32 *.223.93.29
15년전 제가 재활원에서 근무할 당시
뇌성마비장애를 가진 동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생은 기형도의 시집을 즐겨읽으며 삶을 비관하고 있었지요.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이 재활병원에 입원하여
세상과 맞딱뜨릴 사회적 인프라가 전무한 처지였습니다.
마침 장애우들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학교가 생겨 동생을 입학시켰습니다.
동생은 입학한지 몇개월만에 교수들보다 실력이 뛰어났고
졸업 후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그래머로 스카웃되어 날로 발전하여 신지식인 상도 받았고
현재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장애가 심한 여성과 가정도 이루었지요.

민주어머니 민주도 특별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을거예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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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9.01.31 01:27:49 *.36.210.4
민정씨에게

민정씨,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안 나온다면 거짓말이겠죠. 왜 아니 그렇겠어요. 그랬군요...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었을 텐데 말예요. 한 때 특수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특수요구 아이들에게 치료교사로 임한적이 있지요. 이제 치료교사라는 말은 없어졌어요. 특수교사로 통합되고 더 이상은 안 뽑으니까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모두 특수교사가 되어 인지치료다 감각통합치료 등등을 하게 되지요.

학교에 있을 때 특수요구 아이로 인해 여러 가정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느꼈어요. 개중에는 가정이 깨어지는 집들도 있었구요. 또 참 맑고 밝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어느 집은 형제가 다 그런 경우도 있고 해서 마음이 더욱 쓰리기도 했지요. 그때 이후 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였지요. 애쓰시네요. 고생이 많겠어요. 무엇보다 심적으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 런지요. 그런데요 민정씨, 당신이 저보다 훨씬 낫군요. 저는 똑 바로 낳았으니 마치 내 할 일 다한 사람처럼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예쁘게 낳았지만 키우지 못했지요... 바로 저 같은 사람도 겉은 멀쩡한 것 같지만 속은 뭉그러져 있으니 누가 더 장애를 가진 걸까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 비약이 심하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매일 쫓기듯 경쟁적으로나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또 어떤지요. 우리가 과연 그들보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온갖 상품으로 치장하고 황금 만능주의와 영합한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이리 저리 치달으며 올바른 삶인양 하며 헛개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이들 그렇다고 생각되고 우리 자신도 지나치게 물질과 욕구를 탐하며 사는 감이 없지 않지요. 날마다 더 좋은 것만을 원하며 말예요.

혹시 열심히 사는 일과 바삐 사는 일이 어느 정도 우울한 감정을 피해 살기 위한 것이라면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예요. 내가 오래 우울한 증세를 알아와서 말씀 드리는데 그거 참 안 좋아요. 요즘에는 체력이 무척 쇠해진 것을 느끼거든요. 왜 이럴까를 요모조모 짚어가며 생각해 봤는데 오래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외면하기도 하면서 고립감을 키워온 것 등이 상처로 응어리진 채 회복을 못하고 그냥 넘겨지면 해결되거나 극복한 것이 아니기에 마치 병(혹은 암덩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같은 경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래 의욕이 없는 듯 하고 맥이 풀어지는 느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요. 딴엔 받아드리려고 체념하다시피 하며 살아가다 보니까 울분이 삭혀진다기 보다 억압된 상태로 굳어진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럴 경우 무슨 일이건 그 강도 그 수위만 되면 화병이 유발하듯 상처 혹은 마음의 짐들이 되살아 나고는 하지요. 민정씨, 열심히 사느라 바빠서 눈 코 뜰 새 없이 사는 것 말예요, 나도 한참 동안 그렇게 살아봤고 지금도 다르지 않은 데 요즘들어 생각해 보니 너무 오래 가면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인체는 유기체적이기 때문에 서로 상호 연관이 되고 몸과 마음이 함께 갈 수 밖에는 없는데 젊을 때야 젊은 혈기로 우울해도 슬퍼도 밀어붙여 이겨내지만 그 생활이 지속되면 몸도 마음도 가라앉고 상하기 십상인 것 같아요. 물론 건강을 타고났다면야 별 문제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러니 즐겁고 호탕하게 사세요. 우리가 가진 것이 미미해 보이지만 의외로 대단히 풍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신지체 아이들은 늘 동심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보고 돌보시는 부모님들도 다른 분들보다는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젊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이처럼 세상에 대한 욕심이나 허영심보다 순리와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세상의 한축을 밝게 하시며 되레 감사한 마음을 보듬어 즐겁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분명 있더라고요.

어머니가 애쓰시네요. 무엇보다 아이와 민정님 생각을 많이 하셔서 대신 총대를 매시는 거겠지요.
우리가 남을 돕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때로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조금은 남과 다른 어려움을 통해서 그리고 그 상황들을 잘 꾸려가려고 애쓰는 흔적들로 말미암아 서로 돕고 나누게 되는 부분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어요. 하기야 당사자가 되어 이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요. 그러나 누구도 풍족하게 원하는 대로 다 갖고 살지는 않아요. 옛부터 천석군은 천 가지 걱정을 하고 만석군은 만 가지 걱정을 하며 산다고 갖으면 가진 만큼의 노고가 따르게 되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말예요 비록 처한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용기내고 힘 모아 살아갈 필요는 반드시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미련스럽게도 내가 갖고 누릴 수 있는 상황까지도 거부해 가며 구태여 힘들게 살아온 감이 없지 않은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글럴 필요가 없어보여요. 만약 어쩔 수 없이 저와 같이 조금 의기소침한 부분이 있다면 생각과 분위기를 바꿔보세요. 주어진 현실만으로도 나름 반듯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이의 천진함과 맑고 밝음을 오래 지켜볼 수 있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위안과 행복일 수 있어요. 아이를 잘 지켜주기 위해 할머니는 더 오래 건강하게 사실 거고요. 민정씨는 그 둘을 위해 또 나름 멋진 일상을 계획하고 꿈꿀 수 있을 거예요. 봄에 변.경.연 꿈벗 모임에 아이와 함께 소풍 나오세요. 자연스레 장애와 비장애가 서로 어울리며 사회통합의 장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어떨 때 보면은 여기 우리가 더 아픈(?)-(꿈과 욕망이 너무 많아서 ㅎㅎㅎ ) 부적응자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분명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벗들일 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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