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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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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4일 16시 54분 등록
 


나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 단어에 집착하게 된다.   어째서 작가는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상사와의 관계에 애써 ‘쿨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놓은 걸까.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해 낸 작가가 관계를 얘기할 때 흔히 쓰이는 ‘아름다운’, ‘행복한’, ‘멋진’ 처럼 더없이 꼭 들어맞는 단어를 생각지 못했음은 아닐 터이다.  아름다운, 행복한, 멋진 이라는 완벽한 단어를 과감히 버리고 ‘쿨한’이라는 다소 생소한 형용사를 택한 이유를 알아보기에 앞서 나는 먼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쿨하든, 아름답든 혹은 멋지든 간에 그 주체가 되는 ‘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중심 되는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으뜸이라면 역시 <어린왕자>를 꼽을 수 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그림을 그저 모자로만 이해하는 어른들의 반응에 조종사는 항상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언제나 표면적인 것에만 열광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단번에 그 그림이 보아뱀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를, 조종사는 마침내 만나게 된다.

이로써 두 사람은 ‘관계’를 맺게 되고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나누게 된다. 


어린 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자신의 소혹성에 뿌리를 내린 심술쟁이 장미부터, 사막에서 만난 외로운 뱀, 장미 정원의 여우까지 실로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라 해도 무방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때로는 무관심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의 관계들 말이다. 

비즈니스, 우정, 사랑, 정情 등등 관계의 형태를 말하는 다양한 표현들 속에는 이미 ‘나’가 아닌 ‘우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상 ‘관계’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의 모습은 항상 미심쩍고 초조하다.  ‘우리’가 되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미성숙하고 불안하게 비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라는 틀에 들어가기 위해 더 안간힘을 쓰는지 모른다. 


무리를 이루고 서열을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그 안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맛본다.

그리고 무리 안에서 더 훌륭한 ‘우리’가 되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엄청난 종류의 자기계발서와 관계지침서들을 보라.  심지어는 차 이동 중에 시간절약을 할 수 있는 오디오북도 널려 있는 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이지 않는 11가지 방법, 상사에게 사랑 받고 부하에게 신뢰 얻는 초간단 대화법, 싸우지 않고 이기는 유쾌한 대화 등등 셀 수도 없는 많은 책들이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리인양 맹신되어 지고 있다.


여기서 잠깐 <어린왕자>로 다시 돌아가 보자.  조종사와 어린 왕자가 서로를 알아보는 데에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그림 하나로 인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그림, 하지만 누가 보아도 모자일 수밖에 없는 그 그림을 어린 왕자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왕자는 홀로 여행하며 다양한 대상을 만났다.  불평 많은 장미에게 실망이라는 감정도 느끼고, 사막에서 홀로 외로움과 맞닥뜨리고, 때론 여우에게 길들이는 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듣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일까.   책 수천 권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진리를 짧지 않은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어린 왕자. 
그것은 억지로 누군가 가르쳐 준 것도, 힘들게 독학을 하여 얻어낸 깨달음도 아니었다.  진실된 경험으로 찾은 인생의 진리였던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어린 왕자가 깨달은 관계의 진리 앞에 그는 과연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었을까? 
아름다운?  멋진?  아니면 쿨한?

진정한 관계 앞에는 사실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저 ‘우리’라는 짧은 이름 안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수식어가 보이지 않게 숨어 있을 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아끼는 후배에게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쿨하게 떠나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구차하게 잡는 것이 좋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답했다.  “쿨하지도 않게, 구차하지도 않게 다만 너의 마음이 향하는 데로 그렇게 하렴.  너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아름다울 수 있게 말이야.” 


그렇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살아갈 것이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우리’로서. 
그러므로 ‘함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동행同行 한다는 말이다. 
이제 함께 길을 가야하는 우리들에게 남은 과제는 쿨하거나 쿨하지 않은, 구차하거나 구차하지 않은 동행이 아니라, 그저 의연하게 함께 길을 가는 것만이 남아 있다. 

말 그대로 함께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모조리 담을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  어떤 꾸미는 말이나 한정짓는 말없이 ‘관계’지어진 것만으로도 온전한 관계가 된다면 더 이상 ‘쿨한’이라는 표현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사실 쿨하다 라는 표현엔 딱히 이것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쿨한 사람은 냉철한 이성으로 적절한 수위의 감정 표현을 하고, 긴장된 듯 보이지만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작은 상처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뭇 세련되고 도시적이지만 본질은 사실 조금 슬프다. 

관계에서의 ‘쿨함’이란 무언가 세련되고 나이스한 느낌이라기 보단, 보여 지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정제하는 듯한 불편함이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우리의 쿨하지 않은 동행을 위하여, 아니, ‘아무것도 아닌’ 동행을 위하여 건배를 제안하고 싶다. 

IP *.78.1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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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4 18:16:02 *.78.105.123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도전해 볼 만하다. 도전에는 반드시 응당한 결과가 따른다.
1등이건 꼴찌이건 순번이 매겨지고, 합격이건 불합격이건 양자택일의 냉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심판이 있은 후엔, 환호와 영광이 혹은 좌절과 오기가 남는다.
나는 물론 전자를 기대한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똑똑똑똑 컴퓨터 자판이 쉴새없이 두드려 지는 소리와 후룩후룩 뜨거운 일회용 녹차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내 주위를 감싼다.
자세히 집중하니 위잉위잉 형광등에서 나는 소음도 일정하게 리듬을 타고 흐르고 있다.

나는 아마도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나의 오랜 숙원이었던 일이니 어쩌면 대학입시때보다, 취업면접준비보다 더한 긴장과 초조함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잘 하고 싶다. 잘 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그래서 정말이지 내 인생의 또 다른 성취를 만들어 내고 싶다.
진실함이 간절함이 되고 간절함이 현실로 나타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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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07:11:57 *.140.0.242
간절함이 연구원 1호 지참물인 것을 아시는 분이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실명을 기재해 주시면 이해가 빠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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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22:52:04 *.78.105.123
하하하하하!!!! 나리는 저의 본명이랍니다^^;;;간혹 이렇게 제 이름을 닉네임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저는 김나리. 이름은 나리. 제 이름은 나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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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19 10:57:23 *.247.80.52
저도 어린 왕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거기엔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라는 것도 있겠지만, 어린왕자를 만난 시기가 바로 첫사랑을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누군가를 자기가 사는 세상에 살게 하는 것.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져 우리의 세계로 바뀌어가는 시기.

어린왕자가 조종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죠. 정확한 문구는 생각이 나진 않지만,
"난 꽃의 말을 듣지 말걸 그랬어. 행동만을 봤어야 하는 건데. ... 향기로 온통 나의 별을.. 아름답게 해주었는데....."
자신의 별로 돌아가겠다는 어린왕자가 꽃과 같이 사는 방법, 그것이 바로 조직에서 우리들이 상사와 같이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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