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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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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5일 04시 15분 등록

 

바쁜 오후시간 문이 열리더니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란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과장을 수행한 걸 보고 새로 온다던 팀장임을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직원들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정수리를 지나는 반짝이는 머리에 안경태를 갓 넘겨 쳐다보는 시선이 화살 같았고 조그맣고 다담스러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짧고 강렬했다. “전에 봉숭아 학당 연극했던 류춘희. 그때 사장님 얼굴이 찢어졌었지.”  3년 전의 일을 말하다니. 그것도 그 많은 장면 중에서 실수를 기억하다니나 벌써 찍힌 건가?

 

그는 독했다. 화가 나 소리를 지를 때면 반짝이던 머리까지 빨개졌다. 그는 항상 앞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눈치는 엄청 빨랐다. 옆을 볼 때는 고개를 돌리기 보다 눈을 돌렸다. 특이한 건 잘 웃지 않았지만 웃는 모습은 해맑았다.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으며 그의 앞에서는 모두가 . 알겠습니다.” 만 해야 했다. 그의 말이 부당했지만 감히 틀렸다고 말하지 못했다. 출근도 매우 일찍 했으며 그가 나타남과 동시에 사무실은 찬물을 껴 얹은 듯했으며 오늘은 누가 첫 번째로 깨질까가 관심사였다.

상사의 유형으로 본다면 독단적 권위주의 형에 오직 사장님만을 위해 아부하는 해 바라기형이기도 했다. 직원들의 보고 중에서도 타 부서의 잘못한 점만 취해 그대로 사장님에게 보고하여 부하직원들을 미움 받게 만들었다. 부하직원들의 적은 오직 팀장 하나였다. 지각을 막기 위해 9 되면 문을 잠그었으며 커피의 가지런하지 않음과 컵의 위치 이동뿐만 아니라 여직원탈의실까지 들여다보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형이기도 했다.

그는 혁신을 부르짖었으며 성과를 내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도입했다. 이사진급을 앞에 두고 있었고 아주 급한 성격 탓에 빨리 성과를 내기를 원했다. 부하직원을 쥐 잡듯 했고 끊임없이 몰아붙였고 타 부서의 잘못을 기회로 삼았다. 그는 일밖에 몰랐다. 회사도 무척 사랑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하는 말이 있었는데 나 직장생활 오래해야 돼. 작은 애가 이제 5학년이야. 나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니까.” 그 와중에도 난 이 말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 이야기를 할 때는 그나마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큰딸이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을 때 그는 실기시험 보는 날 날씨는 어땠고 차는 얼마나 막혔고 어떤 색 보자기에 무엇을 싸가지고 가서 어떻게 펼쳤는지 까지 세세히 말했지만 별도 칸을 치고 있는 직원들에게만 살며시 자랑했다.  대학에 떨어진 아들을 둔 부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비한 면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회사를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이며 한편의 마음은 따뜻하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뒤에 온 팀장은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 옆으로 쓸어 넘기는 머리, 매우 잘 생겼다. 누구는 말하기를 여자를 후릴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농담하고 잘 웃었으며 이것 저것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처음 왔을 때 부장, 차장까지는 관심 있게 악수하고 그 아래로는 눈만 마주칠 뿐 형식적이었지만 직원들을 매우 편하게 대했다. 자신의 출근도 매우 자유로웠으며 아무 말 없이 외출하는 경우도 많아 윗상사로부터 올 전화를 대비하여 부하직원들은 입을 맞춰야 했다.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으며 멋있는 자태에 몸에 밴 쇼맨십도 있어 다 좋아하게 만들었다. 회식 때면 현장 말단직원까지 술잔을 부딪치며 사기를 높였다. 팀 분위기는 매우 좋아졌으며 각자 알아서 일하게 되었고 현장과 사무실, 파트 별로도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항상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팀원통제는 권위를 남용하기 좋아하는 부장에게 맡겼다. 그는 회사 내 정치에도 밝았으며 처세술도 뛰어나 드러나지 않게 처신했다. 이사 진급이 눈앞에 있었으나 초연한 듯 했으며 누구에게나 호의적이었고 통이 크고 인간적인 상사로 보였다.


그는 아주 민주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의견 수렴을 위한 회의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시나 결정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으며 항상 애매모호함 남겨 부하직원들을 헷갈리게 했다. 그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살피고 특히 그의 말의 뉘앙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했다. 그것을 읽어 내지 못하는 부하직원은 혼나야 했고 며칠에 걸려 힘들게 만든 보고서가 쓸모 없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였고 그 카리스마에 ! 너는 이 정도 말했는데도 못 알아 듣냐?”가 배어 있었기에 부하직원들은 무슨 말씀이신지요?”라고 눈으로만 질문했다. 그는 실무자가 알아서 해야지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성과가 불투명하거나 문제가 복잡한 사항은 그랬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머리가 좋은데 특히 그는 비상하게 좋았다. 듣지 않는 듯 하면서도 다 듣고 있었고 보지 않는 듯하면서도 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노련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잘 웃고 편하게 대했지만 모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은 그의 자주 바뀌는 말에 힘들어 했으며 책사이기를 원했건만 책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정보원만이 필요하다며 실망해 했다. 그 상사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것을 알아채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상사들은 많은 경험과 처세술이 뛰어나다 보니 성격은 둘째치고 행동유형분석 측면에서도 주도형인지 사교형인지 분석형인지 안정형인지의 경계가 모호하며 파악하기 힘들다. 자신의 본 모습은 항상 감추고 있다. 좋은 상사는 말과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솔직하다. 자신을 들어내지 않은 상사일수록 나쁜 상사가 많은 것 같다. 상사의 정확한 마음과 상황적 태도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로지 시간을 지내며 겪어 봐야만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쓰레기 상사임을 알아보게 하는 쓰레기 상사는 그래도 좋은 상사라고 생각한다. 상사의 치명적인 이중성을 알게 되어 좋은 상사인줄 알고 진심을 다하여 일했던 자신의 진정성에 도전을 받게 되면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직장인으로서 이럴 때 가장 견디기 힘들 때가 아닌가 싶다.

부하직원으로서 상사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상사가 열광하는 부하직원이 당연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상사를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상사를 알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마음의 상처나 좌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쓰레기 같은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그의 좋은 면을 미리 안다면 덜 미워하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미리 알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들리는 얘기는 있다.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몇 가지의 단서를 들을 수 있을 뿐이고 아래직원일수록 정보에 취약하다. 공식적인 디테일 정보를 공유하면 어떨까? 입사한지 몇 년째고 어느 부서에서 몇 년 있었고 전공은 무엇이며 가 아닌 그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떤 성과를 냈는데 어찌 이루었는지, 위기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고객에겐 어찌 대하는지, 부하직원들한테는 어떻게 대하는지 사례를 접목한 디테일 정보를 알 수 있음 좋겠다. 발령 나 오기 전에 그 상사와 일해본 사람들로 구성하여 일화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상사를 알아야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자말자 입안에 혀처럼 구는 직원들이 수두룩하다면 상사 또한 얼마나 좋겠는가?

 

 ,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모든 직원들에게 상사 탐구 사례를 적는 그린카드와 레드 카드를 작성하도록 하면 되겠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적고 언제 누가 보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도록 적을 것이니 상사의 상황적 대처 능력과 인간적 습성을 파악 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정기적으로 이런 자료를 취하여 데이터화하고 인사관리에 적용하는 것도 좋겠다. 어떤 부서에 발령을 낸다면 미리 부서원을 모아 놓고 이 부서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왜 와야만 하는지 인사의도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린 카드, 레드 카드의 생생한 사례를 들려주어 상사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는 오픈 인사서비스. 어차피 겪으면서 알게 될 사항이니 공식적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 속에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으니 기획과 운영의 미를 첨가한다면 무조건 선입견을 심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처음엔 회사가 술렁이겠지만 효과 있겠다. 재미도 있겠다.

<A상사의 레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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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 대한 그린카드도 있을 수 있겠다. 개인적 감정이 썩이긴 했지만 이런 상황적 사례를 들으면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다. 어느 부하는 발 빠르게 근처의 낙지 집을 찾아 나설 것이고, 또 어떤 직원은 상사의 취향을 파악하면서 마음의 각오라도 할 것이다.


나는 야근을 밥 먹듯 했는데 좋은 상사임을 믿고 열심히 일하는 내게 상사와 근무했다는 직원이 그 상사가 좀 수악한 면이 좀 있지라고 말했다. 가끔 그 말이 생각났지만 그땐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 수악하다는 면도 사례를 통해 듣게 된다면 경험하고 나서 힘들어 하기 이전에 스스로 살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상사이면서 부하직원이기에 모두 긴장할 것이고 자기 관리에도 신경 쓸 것이다. 그러면 별도의 직업윤리 교육도 필요치 않을 것이며 사내 인적자원 쇄신도 저절로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열린 상사탐구서비스가 상사와의 훌륭한 상생에 기여할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은가. 내가 인사전문가라면 꼭 이렇게 해보고 싶다. 혹시 아는가! 78세의 할머니 채용만으로 기업이미지 상승 효과를 거둔 맥도날드처럼 귀감이 되는 경영혁신의 사례로 뽑혀 연속 몇 주 인터넷 검색 1위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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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20:04:56 *.8.27.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두 상사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제 소름이 다 돋는군요^^.

200% 동의하는 부분은 '자신을 개방하는가의 여부로 상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겉보기에는 호방하고 털털하고 인간적이어 보여도 절대 자신의 내면이나 조직 관련 정보를 쉽게 공개하지 않는 상사는 좋고 나쁨을 떠나 일단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도대로 활용할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여차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활용하겠다는 기본 '의도'를 가지고 있음의 반증입니다.

반면 자신에 대해서 또 회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쉽게 오픈하고 얘기해 주는 상사는 설혹 그 인간적 기질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소하거나 예민한 정보를 이용해서 뒤통수를 치려는 의도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만 역량을 발휘하면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상사라고 생각됩니다.

핵심은 '소통'이라고 봅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상대에 대한 바램을 '상호' 간에 동등하게 나눌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좋은 관계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는 상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상대의 정보만을 취하는 상사라면 겉보기에 아무리 나이스 해 보여도 그 의도성으로 인해 서로 윈-윈 하기 힘든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다른 고려 요소도 많겠지만 최소한 '상호 소통'의 가능성의 관점에서는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걍 저도 경험한 바를 기준으로 말씀 드렸으니 하나의 의견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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