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

“아이히만은 히틀러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행동했다. 시비를 따지지 않고 선악을 구분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 이 3가지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나치스 친위대 중령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위로부터 내려온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의 처리 능력만을 놓고 본다면 인간이 밭을 가는 소나 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의 기계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인간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거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뛰어난 실무자로써 히틀러의 명령을 처리한 아이히만은 약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시키는 결과를 나았다.

“여자가 그 나무의 과일을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 그래서 여자가 그 과일을 따서 먹고 자기 남편에게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바로 인류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죄를 짓는 장면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한가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이 문장을 영상으로 그려본다면 탐스러운 선악과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하와가 결국 조심스레 선악과를 따서 한 입 베어 먹은 후 옆에 있는 아담에게 건네 주고 아담도 한 입 베어 먹는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먹으면 죽는 벌을 받게 되는 단 하나의 금지된 것이었는데 그것을 받아 먹는 아담의 모습에서 하와를 제지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아담은 그저 하와가 준 선악과를 받아서 먹은 것 같다. 위 문장 전에 나오는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부분에서 하와가  뱀과 대화할 때 아담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때도 아담은 하와 곁에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아담에게 주는 장면이 연결되는 것을 보면 하와가 뱀과 이야기할 때부터 아담도 그 옆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담은 생각지 않고 그저 하와가 준 선악과를 받아 먹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것을 알고 아담에게 물었을 때도 아담은 그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 ‘인류 최초의 죄’ 사건을 이야기할 때 하와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아담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선악과 금지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은 아담이었다. 하지만 그 금지된 선악과를 하와가 따 먹으려 할 때 아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하와가 주는 것을 생각없이 먹었다. 그리고 아담의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일하고 임신하는 고통의 벌 외에도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벌을 물려주었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 악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고치기 위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오늘 상사의 지시에 따라 생각없이 그냥 흘려버린 잘못된 일은 없었는가.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에 대해 그저 방관하고 지나쳐버리진 않았는가. 나의 생각없음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사회 악을 하나 더 추가하지는 않았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글귀가 있어 이곳에 함께 적는다.

어느 날 그들이 흑인 노예들을 잡으러 왔었어. 나는 가만히 있었지. 왜냐하면 나는 흑인이 아니니까. 그 다음에는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었어. 그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어. 왜냐하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그 다음에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었지. 그때 역시 나는 가만히 있었지.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그 다음엔 그들이 또 동성애자를 잡으러 왔었어. 그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마지막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어. 그때 나는 억울하게 잡혀 죽을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나를 보호해줄 이웃들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