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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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당대에 손꼽히는 걸출한 교양인이었다. 그는 영국 인명사전의 편집인이었고 위대한 문학가가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케임브리지적인 분석교육은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 날카롭고 명징한 분석은 할 수 있었지만 음악 미술 연극 여행 같은 여가활동에는 심각한 결핍증을 불러와 시나 소설쓰기처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반면 버지니아 울프는 15살 무렵부터 정규교육에 억매이지 않고 역사 전기 모험담 시 소설 에세이 작문 등을 폭넓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학습했다. 고전을 읽고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잠들기 전 형제들과 함께 지어낸 이야기를 가족 신문에 싣는 등 몸을 통한 학습을 익혔다. 울프는 책을 읽을 때 등장인물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으며 종종 그 자신을 잊고 그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녀에게 소설은 단순히 읽을거리가 아니라 써야할 그 무엇이었다.
상담을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한 학생이 와서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한다.
마음에 맺힌 한을 절절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듣고 있는 동안 목이 메고 눈물이 났지만 상담교과서에 써있던 내담자와 정서적 거리 유지하기, 곧 눈물을 보이지 말라던 메시지에 충실하려고 애쓰다가 그만 상담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틀에 맞추려고 에너지를 집중하다가 지금 여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삶은 이렇게 부딪혀서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상담 10년차가 넘었을 때 사이코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몸이 말을 하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많은 경우에 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포장할 수 있게 해준다.
가끔은 얼굴 표정과 말이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감정을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양가감정도 많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홧병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은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화면을 가득 채우며 죽어 가는데 비하여 엑스트라는 죽는 장면에 동원되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린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죽음이다. 주인공에게 우리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서 그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감정이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함께 모여 매주 수요일 저녁에 사이코드라마 과정을 시작했다. 우리끼리 순번을 정해 디렉터가 되고 주인공(프로타고니스트)이 되고 코러스가 되어 한판 신명나게 판을 벌려보는 것이었다.
우리들 중의 하나가 자신의 개인사를 무대에 올릴 때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성껏 그의 상대역(안타고니스트)이 되고, 그의 가족이나 친구가 되고, 때로는 책상이나 의자로 변하기도 하면서 주인공의 마음의 흐름을 따라 갔다. 인생극장이니까 현실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인습과 태도와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 누벼보는 것이 허용된 우리만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몸은 더 이상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은 벽에 걸린 시계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우리들의 속마음은 마음껏 자기 색깔을 내 보여도 되는 우리들만의 세상에서 우리끼리 한껏 뛰놀 수 있었다.
먼저 몸과 마음 풀기 작업으로 워밍업을 하고 굿 판을 벌려 놓으면 정말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하는 한편의 드라마가 주인공만의 독특한 색깔로 펼쳐진다. 언어를 매개로 한 이성이 지배하는 동안 숨이 막혔던 감성이 고삐를 풀면 그 순간 온 몸의 마디마디까지 피가 돌아 몸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옥수수가 바바라 매클린턱에게 알려주고 침팬지가 제인 구달에게 가르쳐주듯이 우리가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따라가고 있는 주인공의 마음이 우리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 감동의 순간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수요일 밤마다 많이 울었다. 누구는 모짤트를 듣는다는 그 수요일에 우리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얼싸안고 서로 달래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살을 내보이며 친구가 되고 선물이 되어주고는 했다.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리고 주위에 어둠이 찾아들 때 주인공은 주인공이되 이전과는 다른 주인공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삼삼 오오 떠나간다.
나는 뒤에 남아 무대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남기며, 못다 울어 남은 울음을 마저 울었다.
한참을 마음놓고 울다보니 갑자기 의심이 일었다.
살그머니 눈물을 찍어서 맛을 보았더니 눈물은 여전히 짜더라.
전혀 경험도 없고 이해도 없는 분야가 연극이고, 특히 설명해 주신 사이코드라마 같은 경우는 감도 잘 안 잡힙니다. 느낀만큼 알고, 아는만큼 느끼는 것인데 무엇 하나 변변한게 없네요.
잘 읽고 조금 느끼고 갑니다. 좀 더 느껴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아직 뵌 적은 없지만 글에서, 그리고 줄줄이 달린 댓글에서 선생님의 연륜과 깊이를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아직 채 서른도 안 된 풋내기 철부지양 이랍니다. 내 책을 낼 수 있을거란 부푼 희망에 덥썩, 연구소에 지원하긴 했지만, 그리고 어찌어찌 여기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계시네요. 번역가, 상담가, IT쟁이까지. 그 분들의 경험과 지식, 지혜에 이르려면 저는 명함도 못 꺼낼 것 같습니다. 궁금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환한 미소와 발그레한 두 뺨,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집니다. 모두들,끝까지 힘내세요!! 정말로 정말로 홧팅홧팅!!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점점 느려집니다.
앤 선배님 , 저보다 훨신 젊은 연배시라고 알고 있지만 ...게시판을 통해서...
앞에서 먼저 걷고 계시니 선배이십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글 읽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편한 마음과 산책...잘 챙겨서 ...다시 일어서서 잘 걸어가 볼게요.
형산 홍영 백산님은... 웬지
프랑스 영화에 나오던 그 삼총사같은 이미지와 자꾸 연결이 되네요.
게다가 백산님의 칼 까지 빛나고 있으니까요.
한국판 삼총사 다시찍고...
강호의 고수들 다 몰려오는 제 2탄도 찍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나리씨.. 그 선생이라는 호칭은 내가 내게 붙인거예요.
좌아줌마,좌씨 ,좌여사.여러가지 이름중에서 그래도..선생이란 말이 제일 무난하지 않아요?ㅎㅎ
옛 어른들은 "좌 입니다" 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시지만...성이 좀 별나서..그리 못하는거지요.
젊은 피 수혈해서 조금 빨라지도록 해 볼게요.
수희향, 보고 싶어요. 지난번 꿈벗모임에 못갔더니...더 보고싶네.
우리 심한 아이들 다 잘 지내고 있는지..
겨울이 다가기전에 한잔 꺽어야 할텐데...
성우씨
게시판을 종횡무진 달리고 있는 어쩐지 대박을 낼 것 같은데요.
기대가 커요.
그렇게 주욱 활기를 불어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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