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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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겸 안녕?
오늘은 너와 '여행'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아빠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셨단다. 아빠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방학만 되면 아르바이트로 비행기값을 마련한 다음 배낭을 들쳐매고 세계 곳곳의 선교사님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세상과 친구들을 만나고 선교 사역도 돕곤 했대.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자기가 더 커져가는 희열을 느끼곤 했다는 구나. 멋진 아빠지?
엄마도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여행을 좋아했어.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주곤 했었거든.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결혼 후에도 매년 결혼기념일 즈음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매년 지켜왔단다. 엄마 아빠가 모아놓은 여행 사진을 본적이 있지?
매년 멀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쉼을 얻고 자유를 만끽했던 그 시간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재산과 추억이 된 것 같아.
그리고... 또 하나 엄마와 아빠가 즐겨하던 여행이 있었는데, 그건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었어.
독서는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고 만나게 해주는 훌륭한 여행이란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실제 상황의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독서는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지.
아빠는 종종 엄마 회사가 늦게 끝날 때 회사 앞으로 엄마를 데리러 오곤 했는데.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차 안에서 보조등을 켜놓고 책을 읽곤 했었어. 책을 읽으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는 줄 아니?
현겸이도 누군가에게 책을 읽는 모습이 멋진 남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 두가지 여행을 함께 떠나 볼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여행의 목적을 정하는 거야.
리조트 같은 곳에 가서 푹 쉬고 싶은 건지, 아니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보고 경험을 쌓으려는 것인지.. 목적을 결정해야 해. 그것에 따라 여행의 행선지가 달라지거든.
독서도 마찬가지야. 재미로 즐기고 싶은 것인지, 관심 분야의 지식을 쌓고 싶은 것인지를 결정해야 해.
한 곳에 머무르며 말 그대로 푹 쉬는 여행이나, 하하 호호 한바탕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독서를 선택했다면, 좋아. 목적에 맞게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면 돼.
하지만 오늘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배움으로서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할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한 여행과 독서를 선택했다면 이제 여행 계획을 세워야 겠지?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더더욱 얼마나 많이 사전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그 여행의 질이 달라진단다.
여행지의 정보가 담긴 책을 사서 읽으면서 먼저 그 곳에 가보는 거야.
유명한 곳, 그곳의 문화, 사람들의 특징.. 눈을 감고 여행 노선을 따라 먼저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는 거지. 내가 만나고 볼 것들을 마음에 가득 담아 떠나는 거야.
그 설레임이 얼마나 흥분되고 신나는 것일지 상상이 되니?
독서를 할때도 비슷해. 책을 골랐다면 바로 독서를 시작하지 말고 먼저 해야할 것이 있어.
먼저 저자가 누구인지 살펴보고 그 저자에 대해서 한번 검색을 해 보는 거야.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을 갖고 알아보는 거지. 그렇게 저자를 네가 알고 있는 친근한 사람으로 만들고 나면 독서는 그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쓴 이가 너에게 지식을 들려주는 것으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가 있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듣게 되는 경험을 하는 거지.
그리고는 목차를 쭈욱 훑어 보면서 앞으로 네가 듣게될 이야기들이 어떤 것인지 체크해 보는 거야. 여행지의 노선을 먼저 상상해 보는 것처럼 목차를 보면서 먼저 책의 내용을 상상해 보는 거지.
이제 네 마음속에 그리고 상상했던 여행지와 책 속으로 가보자.
많이 보고, 듣고, 먹고 경험하렴! 그리고 남는 건 사진 뿐이라지? 사진 찍는 것도 절대 잊어버리면 안돼!
하지만 그냥 보고 경험하는 것으론 부족해. 엄마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 줄께.
엄마 아빠가 미국 LA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야. 하루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아침 일찍 그곳에 도착했단다. 헐리우드 영화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 넘치는 재미있는 곳이었지. 트램을 타고 영화를 찍었던 촬영장들을 돌면서 신나는 시간을 보냈어.
영화 특수 효과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눈앞에서 실제로 보기도 하고, 쥬라기 공원과 미이라의 컨셉을 따서 만는 놀이기구도 탔었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볼 거리를 그저 수동적으로 보는 여행만 했었어. 수동적인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은 다른 사람들도 다 찍는 천편 일률적인 사진들이 많았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오면 누구나 다 한번씩 찍는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같은 것 말이야. 엄마 아빠도 한껏 포즈를 취하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글쎄 지금 보니 그리 멋있어 보이진 않더구나. ^^
어느 정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공하는 놀이들을 다 해본 뒤 엄마 아빠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거리를 걸으며 둘러보았단다. 그리고 거리 화보를 찍기로 했지. 그 때부터 새로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펼쳐지는 거야.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 그저 지나치던 건물들과 거리들이 '사진을 찍자'하고 생각한 후부터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며 예쁜 공간으로 보여지기 시작하는 거야.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거지. 건물의 컬러, 벽화 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찍는 사진마다 특별하고 유일한 우리만의 작품이 되어 가는데, 그 발견과 창조의 즐거움은 트램을 타며 둘러보는 것과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단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것 같아. 그저 글을 읽으며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클릭되는 문장을 놓치지 말고 밑 줄을 그어가며 사진을 찍어두는 거야. 저자가 굵게 써놓거나 글씨 색을 다르게 해놓은 부분만을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너만의 프레임을 만들어 너만의 특별한 독서가 되게 만드는 거지.
그렇게 나만의 프레임을 가진 여행을 마치고 나면 네 안에 여행이 주는 흥분이 가시기 전에 꼭 해야할 일이 있어. 그 여행이 주었던 흥분의 키워드를 메모해 두는 거야.
네가 여행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소중한 '느낌'은 날라가 버리기 쉬워서 글이나 어떤 표현 도구로 남겨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단다. 엄마의 유니버설 스튜이오에서의 특별했던 느낌은 너에게 이야기하며 이곳에 남겨두었으니 잊어버릴일이 없겠구나 그렇지? 엄마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여행중에 있었던 일을 편지로 쓰거나, 너만의 일기를 써도 좋아. 말이나 글로 많이 표현하고 전할 수록 여행의 여운은 더욱 크게 남을 거란다.
현겸.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느끼렴.
그리고 그 속에서 너만의 프레임을 만들어 남긴 사진과 글들을 엄마에게도 많이 보려주길 바래.
너의 풍성한 이야기를 기대할께.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 현겸이의 이야기를 들을 날을 기다리며.
2009년 2월 20일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