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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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의 삶에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채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머니께서 재혼하실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아버지 자리는 대신하지 못한다.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아이들이 들어야 할 말들이 있다. 아버지만이 해줄 수 있는 그런 말들 말이다. 자신의 아들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인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으며, 이 험한 세상에서도 따뜻한 가슴 하나로 얼마나 의미있게 살 수 있는지.. 아버지만이 해줄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에게서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난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무언지를.... 사랑받기 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난 내가 “20점 밖에 안되는 아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나를 몰아세웠다.
어느날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그토록 아끼던 ‘동화책과 소설’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책꽂이에는 한자책과 영어책만 꽂혀있는 책장을 보았을 때, 난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실용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내 삶을 통해 증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언제나 못마땅한 아들로서, 기준에 미달하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그저 “잘했다” 한 마디를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도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아버지 앞에 초조한 눈빛으로 서있는 나를 삶의 곳곳에서 발견한다. 칭찬받고 인정에 굶주린 불쌍한 모습으로.. 그런 지친 나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래서 난 아동치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로서 해 주어야 할 말들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난 나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지금도 어린 아이들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직도 그러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갈등의 불꽃을 피하기 위해 갈등 자체를 피하고 대화를 기피하는 나를 보게 된다.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때론 자기 자신도 잘 모를만큼 복잡하고 미묘해서 매뉴얼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러한 틀 에 박힌 관계들 속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하루에 수십 번 입에 올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다만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을까?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나 역시 나의 자식들에게 충분히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흔히 사랑을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상담공부를 하면서 사소하더라도 갈등을 겪지 않는 사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내게 진짜 갈등을 필요함을 깨달아간다. 진짜 갈등은 내가 속해 있는 내적 현실의 깊은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짜 갈등을 마주 대하게 되면 갈등의 핵심이 명확해지면서 카타르시스를 창출해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힘을 갖게 된다. 매일 조금씩 아버지에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용기를 내어 말하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들으려하지 않으실 때에도 아버지와 맞지 않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말함으로써 난 진짜 갈등을 대면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서로에 대한 더 나은 이해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쩜 우리가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갈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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