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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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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21시 19분 등록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늘 이중적이었다.

나는 여러 개의 삶에 대한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결 같은 사람이 되자이다. 세상에 한결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한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한결같음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다. 생각하건대 나에게 한결같이 대해준 대자연이 가르쳐 준 것 같다. 그들과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 생판 잊어버렸다가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있어 반겨주는 산과 바위와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감정에 따라 누군가를 대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평온하고 언제 찾아와도 반겨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이중적이었으며 세상 또한 복잡한 감정과 일들로 한결같음을 지키기 어렵게 했다. 나는 대자연의 유연함도 알았다. 나 또한 매사에 유연하게 대처하고자 했으나 그 유연함은 대부분 이중성을 동반하고 있었다.

 

퇴근 후 하루 종일 엄마 없이 지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잘 해주고 싶었지만 야단치기 일수였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께 더 다정해야지 하면서도 이것 저것 얘기하려는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나 자신을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싫어했고 나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부족하다고 닦달하였다.

나는 나의 이중적인 마음에 힘들어했다. 이런 생각은 일에서는 더 심했다.

고객접점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을 이해하고 다독거려야 하면서도 평가하고 고자질 아닌 고자질을 해야 했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자재비 절감을 언급해야 했다. 나는 건설현장의 기술자들에게 고객서비스 마인드를 심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회사의 현실보다 앞서 요구하는 직원들의 서비스 자질에 대해 현명하게 알려야 했고 고객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이중성의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나는 새로운 분야, 고객만족이라는 업무에 매료되어 혼신을 다했지만 매력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투덜거렸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자상했지만 매우 엄격했고 그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졌지만 거리를 두었고 믿었지만 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또,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는 또 다른 내가 임을 자처하며 불쑥불쑥 튀어 나와 정신 없게 했다. 당당한 나 뒤에 숨은 너무나 수줍은 나, 아주 조신한 나와 꼬리 빠진 말 같은 나, 판단이 빠르고 뒤끝 없는 쿨한 나와 쪼잔한 나,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나와 좋은 게 좋은 나, 수다스런 나와 매우 사색적인 나, 남자들과 맞장 뜨고 싶은 아주 진취적인 나와 새우 한 마리도 까먹지 못하는 가녀린 나.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매 순간 갈등하며 괴로워했다. 나의 좌우명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엄습해오는 이중성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2007 4월 어느 날 저녁. 나는 동대구역에 서 있었다. 그때도 그랬다.

번쩍이며 넘어가는 기차시간표를 보며 갈등하고 있었다. 나의 행선지는 다음 출장지인 부산이지만 내 눈은 서울행 기차시간을 쫓고 있었다.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역사 안의 서점에 들렀을 때 나는 구세주를 만났다. 나의 이 모든 이중적인 갈등을 단번에 해결해 주는 구세주였다. 그는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윗옷을 어깨에 걸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 책은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랜 모습으로 그 서점에서 아주 오랫동안 나를 기다린 듯했다. ‘자신의 이중성을 칭찬하라는 이 첫 마디만으로 나를 날아가게 만들었다. 이중성을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칭찬하라니!

 

나는 늘 망설이는 편이다.

단호하다가도 그 엄격함이 지나치다는 생각에 물러서기도 한다.

희망의 절정에 있다가도 그 근거의 허망함에 의기소침해진다.

바람처럼 몰아치다가도 이내 호수처럼 고요해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이 넘치고 모자람이 지나침에 대해 걱정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팁으로 써진 이 글만으로도 눈물을 흘릴 만큼 고마웠다. 그 누군가도 나처럼 이중성 때문에 고민했고 그것이 자연의 방식이고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알려준 자체만으로 나는 위안을 얻었다. 본문을 읽으면서 더 놀랐다. 업무에 관련된 나의 고민을 그대로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이중적인 딜레마에 해답을 달아 놓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이중적이며 이중성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지만 잘만 다루면 개인이나 조직이나 성공할 수 있다. 자기 안의 모순을 두려워하지 말고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때 잠재력이 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상반되는 이중성은 도처에 깔려 있다.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 나는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덕분에 매일 눈부시게 살수 있게 되었지만 참으로 미련한 나를 개탄했다. 남들은 이중성을 어떻게 다룰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나는 이중적인 마음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으니 말이다.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닌데 간다 온다는 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라며 모든 상대적인 속성을 초월하여 피안의 세계에 이른 법안종의 선사들만이 이런 번뇌를 하지 않으리라.

 

나는 제국의 미래에서 말하는 관용과 불관용 논지의 풀어헤침을 보면서 이 이중성의 문제를 생각했다. 관용, 불관용 자체가 이미 이중적이지만 이 역설적인 이중성 자체를 잘 다루지 못한 것이 제국의 쇠퇴한 원인인 것이다. 아케메네스 왕국이 관용으로 제국이 되었지만 그 관용이 불관용의 씨앗이 되어 무너졌으며 팍스로마나로 불리던 로마도 지나친 관용이 문제였으며 엄청난 영토 확장과 문화적 발전을 가져 왔지만 당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중성 자체에 대한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중성을 잘 다룬다 함은 그녀가 말하는 접착제 또한 잘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이중성을 잘 다룬다 하여도 접착제가 없다면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중성의 균형을 넘나드는 아주 끈끈한 거시기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이중적이다. 나는 그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놀라 떨지 않고 같이 놀뿐이다. 그렇다고 한결같은 나이고자 하는 좌우명을 버린 것은 아니다. 한결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것을 아낌없이 발휘하려 한다.
이제 나는 나의 이중성에 기대어 산다. 그것이 더 지혜롭고 더 매력적인 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P *.111.2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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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22:57:40 *.234.77.175
그렇겠죠. 하나의 모습만을 지닌 사람도, 나라도 없을 겁니다.
춘희님의 경우는 이중성이 아니라 매력적인 다양성이 아닐런지요 ^^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늘 다양한 매력으로 원하는 삶 가꿔가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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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3.09 00:20:24 *.168.109.134
같은 직장인의 입장에서 한결같은 마음을 지향하면서도 반면 이중적인 생활(?)을 할수 밖에
류춘희 님의 글에 공감을 가집니다.
아울러 진솔한 내면의 글을 올려 주심에 감사 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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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2009.03.09 13:30:18 *.5.21.71
춘희씨 ,
감기는 저만큼 물러갔지요?
온종일  여기저기 다니며 답글달고 놀고 싶은데 ...
갈 길이 구만리군요.

그런데 한마디 만 끼어들어 볼게요. 사람이 본래 여러모습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또 여러가지 모습으로 내비치거든요.

마음에 드는 내모습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읽었는데요...사람들이 일하러 갈때는 자기영혼을 떼어내서 집에다 걸어두고 간다더군요.
이 말을 친구들과 같이하면서
"너 지금 집에 들렀다온거야?"하면서 웃고 놀았는데요....

오늘 저녁엔 그  영혼 잘 가지고가서 재미있게 놀다와요.
직장에서 바로 오는 사람들에게
집에 들렀다왔는지 꼭 물어보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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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
2009.03.09 15:03:22 *.188.231.79
몸은 좀 괜찮으신지 걱정됩니다. 괜찮으신가요?

한 달 간 춘희님 덕분에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르실겁니다. ㅜㅡ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또 행복하시길 간절하게! 기원하겠습니다.
춘희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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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09 15:33:25 *.124.157.231
감기는 많이 좋아지셨나요?
시 축제에서 보았던 목소리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도 1주일 내내 감기 몸살로 헤메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대 포기안하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청량산 들꽃들이 곧 나오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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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22:14:26 *.145.58.201
어느 누구나 마음 속에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품고 살지 않나 싶어요
글을 읽으면서 제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가슴을 울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봄 감기는 겨울감기보다 무섭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4주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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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3.10 23:47:19 *.254.7.115
나도 춘희님이 말한 그 책을 통해 구소장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요.
한 달간 정말 수고많으셨구요, 독감을 앓으신 것 같은데 쾌차하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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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1:37:03 *.43.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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