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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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걸 설명하려 하니?
왜 느낌이 아닌 지식으로 받아 들이려고 하니?
설명하려 하지마, 그냥 느껴.”
오래 전 누군가에게 그 음악의 배경을 설명하려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냥 느껴’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 요즘에서야 나는 실감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에서라도 이 말의 중요성을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러 가지 목소리가 와글대는 창고와 같은 머리 속 사정, 몸에서 빛의 속도 만큼이나 바로 튀어나오는 느낌들은 촘촘한 그물망에 걸러져 마음 속 심연으로 가라앉아 퇴적물을 이룬다. 느낌을 누르고 튀어나오는 머리 속 생각들은 나의 목소리를 빌어 흘러나오지만 그것은 온전히 나의 머리에서 시작된 생각이 아니다. 그 목소리들은 어디서 누군가에게 온 것일까?
지난 해 가을 어떤 미술 전시회에서 그림 한 점을 보게 되었다.
많은 얼굴들이 그려져 있는 그 그림에는 찡그리거나 웃거나 혹은 반 토막난 얼굴 등이 가득했다. 그 그림에서 나의 눈을 끄는 것은 하나의 얼굴 뒤에 또 다른 얼굴을 달고 있는 녀석이었다. 뒤통수에 머리를 또 하나 달고 있던 그림 속 얼굴은 나의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엄격한 검열을 해대는 그 지독한 괴물을 눈 앞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끊임없는 자기 비난과 검열이 나 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종영된 ‘베토벤바이러스’는 주인공인 ‘강마에’의 캐릭터 때문에 많은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다. ‘강마에’는 독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을 내뱉는 천재 지휘자로 나온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여자 주인공 ‘두루미’는 다른 남자 주인공 ‘강건우’ 와 ‘강마에’ 둘 다에게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다. 여자 친구인 ‘두루미’를 ‘강마에’에게 보낸 ‘건우’는 ‘루미’에게 전화해 오히려 ‘강마에’를 챙기라고 당부까지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강마에’는 ‘건우’를 찾아가 사정없이 다그친다.
“사랑에 울고 불고 찌질한 놈은 되기 싫고, 그래서 멋진 척 연기는 다 해놨는데 속은 부글거리고, 너덜너덜 자존심은 보상받아야겠고, 없는 차이래도 억지로 만들어서 어깃장 놓고, 삐딱선 타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많이 참았다고 대답하는 건우에게 ‘강마에’는 이렇게 몰아 붙인다..
“누가 너보고 참으래? 그냥 터뜨려!! 착해야 한다, 멋있어야 한다, 해야 한다 따윈 집어 치라고! 위아래 동서남북 감정 다 막아놓고 뭔 음악을 하겠다는 건데! 그냥 니 본능대로 하란 말야! 오기, 독기! 싸우고 덤비고 터뜨리라고 임마!!”
지난해 나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15주 동안 NVC(비폭력대화) 강의를 들었다. NVC는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약어로 타인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와의 소통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훌륭한 이 가르침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Should~’ ‘~해야만 해’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비폭력대화에서 마셜 B. 로젠버그는 수피(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 시인 루미의 말을 소개한다.
“옳은 일, 그른 일이라는 생각 저 너머에 들판이 있네. 우리 거기서 만나세”
강의에서 가르침을 준 캐서린 한 선생님께서 했던 공감가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한 남편이 밤 늦게 집에 들어 옵니다. 집에 오면서 남편은 아내의 따뜻한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
.
드디어 남편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아내는 집에 온 남편에게 ‘술 마시고 왜 늦게 들어 오냐’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 ‘에잇 씨~’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오히려 원하는 것과 더 멀어져 버린 그들,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남편과 아내의 머리 속사정을 그들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교육을 받으면서 어떤 생각들에 길들여져 온 것일까? 자신의 느낌과 원하는 것을 담백하게 말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여성들을 희화해놓은 클레르 브레테셔라는 프랑스의 여류 만화가가 있다. 그녀는 1973년 부터 [욕구불만자들] 이라는 연재만화를 통해 사회질서 속에 길들여진 여성의 현실을 위트 있게 그려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면 나는 그녀의 만화가 떠오른다.
세번째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 친구에게 낙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친구는 결국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라며 단호하고도 주체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은 주변 인물들의 입장만을 차례로 이야기할 뿐이다. 우선 남편이 세번째 아이를 원치 않고 직장상사도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될 상황을 원치 않는다며 주절주절 늘어 놓는다. 친구가 “그런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묻자 “글쎄 ……. 우리 엄마는 이번엔 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셔”라고 답하고, “그럼 너는?”하고 되묻자 “나? 나한테 둘이면 충분하지. 그런데 내 남편이 …..” 하고 또 흐릿하게 대답한다. 답답한 나머지 잔뜩 화가 난 친구가 “네 남편은 잊어버려. 네 자신이 아이를 원하느냐고?”라며 쏘아붙인다. “잘 모르겠어”하며 끝까지 말꼬리를 흐리며 사그러들다가 그녀는 갑자기 “낙태는 교황이 원치 않아”라며 분명히 말한다. <세계의 만화, 성완경>
나는 지난해가 되어서야 내가 느낀 느낌들이 그 자체로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느낌은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지 그 느낌을 밖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 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이것에 서툰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서 근육을 키우듯이 알아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느낌’은 과연 내가 뭘 원하는지 알려주는 힌트가 된다. 사탕을 녹여낸 혓바닥에 달콤함이 가시고 나면 남는 찝찝함처럼 ‘느낌’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신호등이다. 그러니 자신의 ‘느낌’을 끝까지 놓치지 말고 알아야 한다.
일요일 하루 종일 TV를 보고 난 뒤 느끼는 씁쓸한 뒷맛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바로 그 씁쓸함을 몸이 나에게 주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나 재미없어 미치겠어”라고 신호를 보내오면 즉각 반응을 해주자. 우리는 보통 “TV를 안보고 다음부터 운동을 하겠어” 라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 다시 TV 앞에서 채널 돌리기를 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몸이 보내온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TV를 보고 난 뒤 씁쓸한 뒷맛을 느낀다면 “TV를 안보고 다음부터 운동을 하겠어”라는 다짐을 머리에서 한 뒤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알아챌 수 있다.
이 느낌이 부정적이라면 나는 “운동”으로 충족할 수 없는 다른 뭔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느낌’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나태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에 ‘욕구의 착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욕구의 착각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느낌’의 스펙트럼을 모두 알아채는 능력이 필요하다. 처음 드는 느낌, 뒤에 느껴지는 느낌, 행동을 하면서 드는 느낌, 행동 후에 드는 느낌 등 모든 느낌을 알아채야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언젠가 이런 느낌의 신호등에 의존하지 않고도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때가 올것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진짜가 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나의 진정성이 깃들일 것이다.
세상이 부과한 의무 속에서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 세태를 정확히 짚으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정말 교육 정확히는 '훈련된 의식'이 얼마나 무서운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채 자신을 감싸고 있는 훈련된 의식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벗겨내는 것, 그래야만 그 속에 감추어진 나의 '본심' 혹은 '참 느낌'을 찾을 수 있겠죠. 참선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느껴집니다^^.
저는 투박한 IT쟁이라 그런지 그림,음악,만화 이런 것들을 예로 드실 수 있는 능력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저 같은 사람은 '느낌'을 찾기 전에 먼저 말라버린 느낌부터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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