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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02시 25분 등록
관용의 혜택이 교육의 기회로 이어지기를...


경기도 파주시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고객들로부터 주문받은 가구를 제작?의뢰하는 가구공장이 있다. 이곳에는 여섯 살짜리 꼬마가 한 명 있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크고, 정말 인형이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쁜, 효리 언니처럼 가수가 꿈인 여자아이다. 한국 이름은 소영, 미아라는 이름도 함께 가지고 있는 이 아이는 여기 가구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나이가 좀 많은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에서 시집와 단순한 보조일을 하며 미싱기술을 배우고 있는 젊은 엄마와 함께 출근해, 엄마 아빠의 일이 끝날 때까지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낸다. 이곳은 공장촌이 형성되어 있는 곳도 아니고, 차가 없으면 다니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이라, 돌봐 줄 사람도 없고, 형편이 안 돼 어린이집에도 가지 못하는 소영이는 이 공장에서 키우는 순구라는 개 한마리가 유일한 친구다.


선배와 내가 공장에 도착해서 보면 소영이는 늘 공장 한 켠에서 자기 혼자 놀고 있거나, 공장 마당에서 순구와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순구에게 밥도 갖다 주고 순구에게 뭐라고 조잘대며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순구와 무슨 말을 했냐며 정말 예쁘다며 선배와 내가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해도 소영이는 자기 엄마한테 가거나 달아나기만 했다. 선배와 나는 공장에 갈 때면 소영이에게 줄 과자와 간식거리를 준비해 갔고, 지난 추석 때는 선배가 조카들 선물을 고르면서 소영이 생각이 나서 샀다며 예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게 소영이와 우리는 차츰 친해졌고 수줍어서 숨기만 하던 소영이는 이제 낯이 좀 익었다고, 이제 좀 친해졌다고 내가 순구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순구를 내 옆에 데리고 오고, 우리 앞에서 효리 언니의 춤도 흉내내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대며 너무나 좋아했다. 사장님은 여기는 다 어른들 뿐이고 다들 일하느라 바빠서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없어 언니들만 오면 저렇게 신나한다고 하셨다. 어린이집도 보내서 글도 가르치고 해야 하는데 부모에게 보내라고 해도 알았다고만 할 뿐 사정이 안 되는 것 같다며 그나마 지금은 어려서 괜찮지만 학교에 가도 걱정이라 하셨다.


지난여름이 오기 전 주문건으로 공장에 들렀을 때 사장님은 이번 건만 작업해 줄 수 있다며 공장문을 닫게 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TV나 신문에서는 작년 9월, 10월부터 우리경제의 심각성을 알렸지만, 원자재 값이 많이 올라 이에 의존해 일하는 이들은 훨씬 이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주문건도 많이 줄어 도저히 견뎌낼 수 없다 하셨다. 소영이를 본 것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돌아오는 길, 차를 타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럴 줄 몰랐다며 소영이와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는 건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길이 막힐까 서둘러 오는 바람에 소영이가 좋아하는 과자도 못 사왔다며 선배와 나는 많이 안타까워했다. 소영이의 부모가 형편이 나아져 소영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공부도 하고 또래 친구도 사귀기를 바랐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소영이가 하루를 보내던 가구 공장은 내가 일하면서 접한 다른 가구공장이나 염색 공장, 프린트 가공공장에 비하면 환경이나 여건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 하루 종일 독한 페인트와 약품냄새를 맡으며 가구에 칠을 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 볕도 잘 들지 않는, 통풍과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온갖 화학약품에 노출된 채 수작업으로 실크 스크린판을 미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노동자들, 소영이처럼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어도 너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좋지 않은 여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는 이주 노동자 부모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다


우리가 국제결혼에 의한 다문화 가족의 형성을 이제는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와 여건이 미흡한 것 같다. TV와 신문을 통해서도 보여지듯 많은 결혼 이민자들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 교육에 따르는 부적응의 문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한 한국인이면서도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을 느껴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엄마의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언어의 발달이 지체되거나 적절한 학습지원이 불가능해 이것이 학습부진으로 이어지고,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로부터 이방인,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나 우리나라에 시집와 다문화 가정을 꾸린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이 3D산업이라고 불리는 환경에서 만들어낸 원단과 가구들이 내가 하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고, 식당을 가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선족 여성들, 조선족 여성들이 도우미로 일하는 집에 시공을 가서도 그냥 좀 안됐다는 생각뿐, 대학 캠퍼스에도 이미 외국인 학생들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지만, 이들이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사실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소영이를 보면서 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소영이와 같은 2세들의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는 현실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우리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관용이, 우리가 베풀어야 할 관용의 혜택이, 소영이와 같은 다문화 가정의 2세대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부모세대는 어렵고 위험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여전히 희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인도네시아 등에서 자라 다양한 문화를 접한 전형적인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이런 장점을 잘 살린다면, 잘 가르치면, 나중에 제2의 오바마가 될 수도 있고, 다문화 전파자, 다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리더로, 세계화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인적 자원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효리 언니처럼 가수가 꿈인, 연예인이 꿈인 소영이도 훗날 한류를 대표하는 훌륭한 인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조화로운 다문화 시대를 가꾸려는 교육적 노력이 모아져 사회통합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들을 주변인으로 양성하느냐, 우리 사회를 사랑하는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게 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 선택의 중요한 시기를 지금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소영이에게도 하루빨리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소영이가 이 교육의 수혜자가 되어 잘 자라나기를 바라고, 멋진 가수로 성공해 TV에서 보게 될 날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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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2009.03.09 02:31:11 *.126.231.211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관용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들도 우리와 함께 공존공생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나라 텃새가 좀 심하기도 하죠
님의 말씀과 심성이 느껴지네요.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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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07:25:56 *.8.27.5

중요한 점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전략적 관용이 얼마나 어려운 이슈인가를 우리 주변에서 가장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가 바로 외국인 혼혈 2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근 TV에서 다문화 가정의 수용을 위한 많은 홍보를 하고 있던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많은 관심과 접촉을 통해 실제적인 수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스스로 마음을 여는 노력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사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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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부
2009.03.09 09:47:18 *.167.143.73
바로 우리 주변에 관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 널려있군요.
제가 일하던 곳에서도 조선족들이 아주 많았답니다.
가산디지털이라는 동네는 지금은 이름이 바꼈지만 예전의 구로동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후진국 사람들이 공장 주변에 널려 있지만 실상 그들이 불이익을 받을 때가 많답니다.
알고는 있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참 많지요.
최근 중국 조선족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중엔 좋은 사람들도 참 많아요.
도처에서 필요로 하는 관용~
그 실천은 결코 쉽지않은 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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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0:28:22 *.255.182.40
공감합니다. 우린 우리 스스로를 늘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서인지, 우리보다 약자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아직 좀 미숙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운 심성대로 따듯한 날들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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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22:01:14 *.142.8.32
하나하나 아름다운 관용이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수고하셨어요.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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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22:41:26 *.145.58.201
소영이의 사례 가슴에 많이 와닿습니다
우리에게도 다문화에 대한 관용의 자세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것 같아요
신애님 글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양함을 인정할 만큼 성숙한지 자문하게 되네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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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영
2009.03.10 20:14:37 *.124.87.18
우리가 사는 삶은 공동체 삶이고
공동체 삶은 주고받음의 관계를 통해 유지된다고 합니다.
삶에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돌이켜보면 나도 많은 시간을 혼자 인것처럼 살아온것 같습니다.
'관용의 혜택이 이웃에게 교육의 기회로'  나도 외쳐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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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3.10 23:16:51 *.254.7.115
2기 연구원입니다. 상당히 어렵고 딱딱한 책을 읽으신 것 같은데,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사례와 연결해서 너무 읽기좋은 글을 써주셔서 보기 좋네요.  그러면 가구디자이너 일을 하시는 건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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