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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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내게 가끔씩 인생이 묻는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
몇 달 전, 남편의 실직으로 본의아니게 가장이 되었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피할 수 없는 책임감이 무거웠지만
남편에게 푹 쉬라며 여유를 부렸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거 다 해보라고도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매일 장을 봐다 화려한 식탁을 차렸다.
주방용품을 구입하고 김치를 담그고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었다.
틈틈이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신통치는 않았다.
남편은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싶다며 가발을 주문했다.
한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며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다.
며칠 후, 무릎이 아프다며 병원에 가더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아왔다.
퇴행성 관절염 비슷한 병명이었던 것 같다.
열흘쯤 입원하고는 환자가 되어서 퇴원했다.
그리고는 면허 취소 1주년 기념으로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고는 대형면허를 취득했다.
더불어 드라이빙이 시작되었다.
1년을 쉬고 있던 차는 여기저기서 괴성을 질러댔다.
지출은 놀랄만큼 빠르게 하늘을 찔렀다.
멋진 가장이 되고 싶었던 나는, 절망했다.
멋진 가장이 된다는 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씩 지쳐갈 즈음, 남편은 새 일터를 결정했다.
당장 수입이 생기는 일은 아니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런 출근을 앞둔 주말, 우리 가족은 지리산으로 떠났다.
2박3일을 꿈같이 보내고 돌아와 달력을 보니, 8월!
2009년이 후다닥 지나고 있었다.
문득, 남편은 불륜여행을 제안했다.
부모의 외박소식에 olleh~! 를 외치며 신나라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강화로 향했다.
상대가 너무도 익숙한 남편이란 사실이 뭣하긴 했지만,
나름 신.선.했.다.
고즈넉한 바닷가의 아주 비싼 장어와 호젓한 모텔..
다른 남자랑 왔어도 참 좋았겠단 생각을 잠깐, 아주 잠깐 했다.
남편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복숭아와 순무김치를 사고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럴려면 건강해야지, 하면서 점심은 뭘먹지, 하다가 추어탕을 먹자 했다.
***
살다보면 놀랄만큼 빠르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남편의 실직과 함께 시작된 파란만장 일상은 통추어탕 두 그릇과 함께 일단락되었다.
그 언젠가의 나는..
마흔이 지나면, 삶이 조금은 안정되고 여유로울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사십대의 고개를 넘고 있는 지금..
예전의 그 기대가 욕심이었단 생각을 한다.
산다는 건, 나이를 더한다는 건, 여전히 숙제다.
하루살이로 살기엔 버겁기만 한.
그럼에도 또 기대한다.
바보처럼 버릇처럼..
그리고 또 묻는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여러 사람이 감탄하는 미영씨 글의 가독성은
깜짝 놀랄만한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 같군요.
이렇게 미영씨 만의 문체와 분위기가 자리잡힐것 같아 기대됩니다.
사랑이야기 공저가 미영씨에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기를 바래요.
두 번 째 책을 내고 나면 '나는 작가다'라고 마음먹고 사는 것은 어떨지요?
미영씨가 계속해서 글을 썼으면 좋겠어서요.
우리는 모두 '내 인생의 작가'이기도 하구요.
전업주부로 살다가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사십 대 후반에 소설 써서 성공한
이춘해 작가라고 있잖아요.
일부러 책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우리 모두가 도전해도 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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