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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5일 12시 46분 등록

다시 가을

                                  도종환


구름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덜 관심을 보이며
높은 하늘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가을이 온다.
차고 맑아진 첫 새벽을
미리 보내놓고 가을은 온다

코스모스 여린 얼굴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갸웃이 고개를 들면서
가을은 온다
오래 못 만난 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스님들 독경 소리가 한결 청아해지면서
가을은 온다.

흔들리는 억새풀의 몸짓에 따라
꼭 그만큼씩 흔들리면서
......................
너도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혼자 그렇게 물으며
가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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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8년 전에는 나도 시를 읽었더란다.
시집을 가방에 넣어다니며 교정에서 전철에서 읽었고
높아지는 파란 가을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며
시를 읊곤 하던 적이 있었더란다.

그러고 보니,
시를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시를 읽지 못한 시간만큼
작고 일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구나.

이룰 것이 많은 인생이기도 해야하지만
누릴 것이 많은 인생이기도 해야한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좋을 것들을
너무 놓치고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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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희
2009.10.01 23:01:06 *.12.21.156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깨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놀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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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는데 툭 떨어지는 원고지 뭉치가 있었습니다.
원고지 한 장에 한 연씩,  세로로, 친필로, 마음을 담아 쓴 정성이 새삼 크게 다가와
펜끝을 따라가며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보낸 이의 마음을...삶을 좀 더 살아서 일까요? 지금 더 많이 알것 같네요.

'시를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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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건친구
2009.10.02 01:03:29 *.229.133.69
예전에 저도 누군가에게 시를 적어서 보내곤 하는 일을 즐겨했었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 때 그 친구들, 선후배들과 연락을 하고 살지 못하네요.  
오늘 문득 그들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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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희
2009.10.03 04:19:03 *.12.21.156

첫 사 랑
                    - 류시화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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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옛 수첩 언저리에 적혀 있네요.
이 새벽에도 첫사랑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든 이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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