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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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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4일 09시 42분 등록


옛날 러시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밭일을 나갔습니다. 농부는 아침식사로 가져간 빵 한 조각을 나무 밑에 놓아두었습니다. 어느덧 일이 끝나고 배가 고프자 농부는 나무 밑에서 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빵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자 마음 착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며 맹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할 수 없지. 누군가 그 빵이 필요해서 가져갔겠지. 한 끼 굶는다고 죽진 않아.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네.”

그런데 가난한 농부의 아침을 훔친 자는 바로 악마였습니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는데 가난한 농부는 빵도둑에게 욕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을 내리며 자신의 허기를 달랠 뿐이었습니다. 당황한 악마는 이 일로 대악마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대악마의 꾸지람에 이번에는 다른 술책을 간구하였습니다. 악마는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했습니다. 농부의 부지런한 하인으로 숨어들어가 홍수가 들 것 같은 해에는 고지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고, 가뭄이 들 것 같은 해에는 습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해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으로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이것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의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습니다. 이 술친구들은 처음엔 여우처럼 서로들 좋아하며 알랑거렸지만 곧 늑대처럼 변해 서로에게 사납고 거칠게 대하였습니다. 마침내 술자리가 끝날 즈음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들 돼지로 변해 모두 여기저기 흘리고, 소리치는 지저분한 짐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양을 본 대악마는 몹시 흡족해하며 도대체 술에 어떤 악마의 묘약을 넣었기에 그토록 착하던 농부가 저처럼 짐승이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악마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밖엔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까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밖에 없을 때까진 그 짐승은 잘 묶여 있지요. 한때 저 농부가 마지막 빵을 잃어버리고도 빵도둑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요. 하지만 필요를 넘어 남아돌기 시작하면 인간은 거기서 쾌락을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술’이라는 쾌락을 알려주었죠. 신이 주신 선한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온 거지요.”
- < 박혜영 / 시대를 읽는 문학 / 한겨레 >에서 인용 - 


<악마와 빵 한 조각>이라는 제목으로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넘침’을 경계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수단으로 ‘모자람’보다는 ‘넘침’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지나침’을 경계하는 유명한 술잔이 있습니다. 바로 계영배(戒盈杯)입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합니다. 술잔에 70% 이상 술을 채우면 밑으로 흘러내리게 되어있어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닙니다.

이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공자(孔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모자람’을 탓하며 ‘넘침’을 지향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항상 넘치기만을 바랍니다. 시간이 많기를 바라고, 돈이 넘치기를 원하고, 오래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넘침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악마의 유혹입니다. 여기에 삶의 모순이 존재합니다. 소설가 전경린은 ‘삶이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새삼 마음을 울립니다. 당신에게 삶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게 되면 철학자가 되는 모양입니다. 언제부터가 일상에서 얻은 많은 깨달음이 하나의 진리에 수렴함을 느꼈습니다. 바로 ‘모순’입니다. 진리는 단순한 것인가 봅니다.

당신은 넘침을 경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나요? 방송인 김제동은 넘침을 경계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이 번다고 느끼면 주위의 어려운 분을 위해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현명한 생각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저도 ‘넘침’을 경계하는 한가지 방법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가을만큼 당신의 마음도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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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0.14 13:09:50 *.190.122.223
이번에도 뵐 수 있을지요.

넘침을 경계하라는 말
그리고 삶은 모순이라는 말

가슴에 와 닿는군요.

이제 발로 가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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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0.15 16:24:48 *.190.122.223
뵙지 못하게 되어 아쉽군요.

아쉽지만 또 다음을 기약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아는 분이 알려주셔서 pmp싸이트에도 잠시 들러봤습니다.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시더군요..

한 번 쯤 찾아뵙고 싶은데 무례가 될까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결실의 계절에 안으로 더 다지시는 시간을 가지시길 소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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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9.10.15 09:25:39 *.93.112.125
가을 꿈벗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합니다.
늘 웃는 모습을 뵐 수 없어 무척 아쉽네요.
햇빛처럼님의 햇빛을 받아야 기가 보충이 될텐데 말입니다.

가을 소풍 즐겁게 보내시고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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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gho
2009.10.14 13:45:47 *.242.62.1
좋은 글이라 염치 불구하고 제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한동환 강사 사이트의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모순도 기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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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9.10.15 09:27:58 *.93.112.125
pmp카페도 보시는군요.
쉽지 않겠지만 조금 더 뼈 속으로 내려가서 글을 써야겠네요.
그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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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곰
2009.10.15 23:26:50 *.55.0.1
좋은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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