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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5일 05시 36분 등록

겨울여행의 의미-왜 겨울에 길을 떠나야 하는가?

 

20대 중후반 어느 겨울, 눈이 내리는 남도 땅 어느 곳에 나를 존재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해서, 쌀 부대를 가득 실은 트럭을 얻어 타고 목적지 중간에 내렸습니다. 가야 할 곳은 먼데, 눈이 내립니다. 컴컴한 밤입니다. 텐트가 들어있는 60리터 짜리 대형배낭도 들쳐 맸습니다. 마을의 개들이 낯선 발자국 소리를 듣고 컹컹 짖어댑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얼어 붙고 눈이 스멀스멀 내리는 길 위에서 차를 얻어 탈 길은 없었습니다. 남도 땅 그 겨울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습니다. 우주간에 나 혼자 그 공간에서 그리 온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영혼이 시릴 정도의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뿌연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언 길을 느리게 운전해가는 차가 보입니다.  목적지인 절 밑의 마을에 사는 부부의 차를 얻어 탔습니다.

 

천지간에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텐트 안,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텐트 위로 내리는 눈, 그리고 죽음처럼 다가오는 피로감, 그 때의 눈 내리는 혼자만의 비좁은 텐트 안에서존재한 기억은 잊혀지기 어려운 겨울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 겨울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때와 같은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여건은 너무 편안해서 겨울 여행의 낭만쯤은 쉽게 앗아갈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편안함을 떨치고 바람이 부는 겨울 길 위에 수시로 나를 존재시키려 합니다.

 

회색 빛으로 가득한 겨울을 누리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긴 겨울을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못내 초록이 그리워 남도 땅을 그리워하며 달려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울이 지겨워지기 전에 나는 흙 길을 찾아 긴 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그 길에서 나와 오롯이 대면할 것입니다.

 

겨울은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걷기 역시 가장 자신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겨울에 길과 공간을 걷는다면 다른 계절에서는 느끼지 못할 성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찬 바람을 타고 넘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누구에게도 거대한 괴물인 남루한 일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상의 눈이 아닌 정신의 사유가 가능해진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봄.가을 여행은 몸이 편합니다. 그러나 깊은 성찰에 좋은 계절은 겨울입니다. 겨울 여행은 봄의 꽃, 가을의 단풍 같은 아우성과 현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행 길의 공간에도, 마음에도 깊은 여백을 경험할 수 있는 때가 겨울입니다. 겨울 여행을 통해, 겨울의 사색을 통해 자신의 펄떡이는 심장과 만나십시오.

 

아무리 추워도 두툼한 오리털 파카 점퍼 하나면 왠만한 추위쯤은 친구입니다. 오히려 나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할 때 출발합니다. 눈이 예상될 때 떠납니다. 그런게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꽤나 하는 사람도 겨울에는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그가 여행 자체를 좋아했나 싶었을 정도로 여행을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 년의 거의 반이나되는 겨울의 여행을 모르는 사람은 여행의 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겨울에 뭐 볼게 있냐고 말합니다. 소위 명풍경은 계절을 가리지 않습니다. 명풍경은 겨울에 그 처연한 여백을 볼 수 있습니다. 가득한 상태에서 보이지 않던 그 여백은 우리의 빈 마음을 닮아 있습니다. 봄.가을에 명풍경이었던 공간은 모든 것을 날 것으로 벗겨내는 겨울이라도, 명품다운 아름다움을 드러내 줍니다.

 

봄은 찰나고, 가을은 순간입니다. 그 찰나와 순간에 아름다움은 스러져가고 순식간에 더운 여름이 오고 불현듯 겨울은 쳐들어 옵니다. 우리는 긴 겨울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겨울은 거의 일년의 반년 가까이 됩니다. 겨울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절반 가량을 누리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긴 겨울을 다양하게 누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겨울을 스키장에서만 보내고, 온천에서만 보내고, 따뜻한 실내에서만 보내기에는 너무도 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참 자연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들이 있을 때 우리는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겨울이라고 개점 휴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쉼 없이 생명력을 간직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자연으로 나가야 합니다. 겨울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겨울여행이 좋은 점은 여행 5적(사람, 소음, 주차장.매표소.식당가, 시멘트, 인공구조물) 중 특히나 사람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비수기인 겨울에는 사람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나서 호젓하게 누릴 수 있는 확률이 커집니다. 그리고 유명여행지는 봄. 가을 그리고 여름 휴가철에 몸살을 앓는데, 겨울에는 이런 유명세가 있는 공간마저도 한적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긴 겨울에 가면 좋을 곳이 있습니다. 사실 어디를 가도 한 겨울은 정감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지역은 독특합니다. 남도 땅 깊숙이 내려가십시오. 그곳에서는 겨울을 비껴서, 측면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초록을 볼 수 있습니다. 쑥이 봄 마냥 살아있고, 보리밭이 있으며, 월동배추 밭의 생경함이 있는 곳이 남도입니다. 겨울인 듯 아닌 듯, 조금은 편안하게 겨울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중부이북과 강원도. 경북의 마을 곳곳으로 가십시오. 그 건 겨울의 심장 속으로 비수 마냥 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춥고 눈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십시오. 더욱 골짜기로 가십시오. 폭설이 내려 눈에 갇힐 정도의 깊은 곳으로 가십시오. 그 곳에 한동안 자발적 유폐를 시키십시오. 자신의 일상도 함께

 

겨울 여행은 추위로 인해 뜨거운 찌게와 매운탕이 입맛에 당겨옵니다. 각 지방마다 겨울 별미가 있습니다. 서해.남해.동해안  각 바닷가 마다 개성 다른 토속음식이 있고, 내륙은 내륙대로 겨울에 먹어야 좋을 음식이 있습니다.

 

겨울 만큼이라도 자가 차량 운전에서 벗어나길 권합니다. 겨울여행은 기차여행이 좋습니다. 따뜻한 열차카페에 앉아서 차창 밖을 보면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경험은 늘 흐믓합니다. 차창 밖으로 빈 들판과 빈 나뭇가지 들을 보면, 마음 한 자락이 저절로 비워질 것입니다.

 

*제 1稿 09.12.13.일

끝으로 가라. 세상의 아름다움은 끝에 있다.
그 곳에는 소외되고 버려진, 잊혀진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곳에는 오랜 세월,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낯선 아름다움이 있다.

여행이 예술이 되는 곳-아름다운 길 연구소 http://cafe.naver.com/travel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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