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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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을 무진장 좋아하는 남편과 친하게 지내느라 아이들 앞에서 부어라 마셔라 노닥거리는 사이에 2010년을 알리는 종소리를 TV에서 보고야 말았다. 보신각, 임진각에서 허연 숨을 쉬며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남편에 취해서 잠들며 나의 ‘마흔’은, 또, 시작되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듯이, 3년 전의 내게 ‘마흔’은 또 다른 삶의 상징이었다. 다르게 살고 싶었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스스로를 응원하며 앞으로 쭈욱 나아가고 싶었다. 강물을 버리고 바다로 가고 싶었다. 내가 있는 곳이 우물 안인 줄 모르고 그랬다. 그때의 나는 분명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산 속에서는 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산 밖으로 나와 거리를 두어야만 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결혼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벗어나는 길인 이혼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또다시 무모한 선택을 할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주저앉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멋진 선물이라며 엄마로, 아내로, 다시 살아보았다. 초록색 참이슬 빈병이 산처럼 쌓여갔다.
나는 대체 무엇을 꿈꾸었던 걸까? 왜 또 화가 났을까?
"용서란 내 마음 속에서 작은 방 한 칸을 내어주는 거래. 왜 당신은 분노에게 마음 전부를 내어주고 집 밖에서 떨고 있어? 집의 주인은 당신이잖아."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중에서)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맘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두리번거리다가, 신영복 교수님의 시화집 <처음처럼>을 집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글의 따스함이 나의 숙취를 깨웠다. 내친김에 지난 일기도 들춰보았다. 그동안의 내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더듬었다.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내 손가락 사이로 먼지처럼 빠져나갔을 그 하루들이 거기 있었다.
그러다 문득 보았다.
3년 전 오늘, 일기장 말미에 써 놓은 글. 뜬금없이.
'살다보면'에 글 올리기 (6개월 동안 1주일에 1회)
그때의 내가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기억을 더듬어볼 생각이다.
나는 꽤 엉뚱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말보다 글이 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겨우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일과 가정과 꿈이라는 세 개의 발가락으로 뒤뚱거리는, 날고 싶은 오리다.
기록은 과거를 붙잡는 것이다. 홀로 잠깐 멈출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작은 방 하나를 내어 줄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동시에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수수께끼 삶,
내게 '마흔'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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