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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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해다. 아이들이 있으니 3월이 되면 신학기가 되어 또 한 번의 시작을 남겨놓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뭔가 시작한다는 건 설렌다. 무슨 기대가 그리도 많을까? 특별할 것 없는 까만 달력 같은 일상에 빨간 색깔 휴일의 특별함이 더해져서일까? 혹시 설렘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해리가 샐리를 만나는, 아님 ‘러브 액츄얼리’ 같은 찡한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가? 여전히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정신을 가끔씩 놓아버린다. 나이는 대체 어디로 먹는 건지.
어제는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궃은 날씨였다. 강당이 좁다는 이유로 상을 주고받는 사람을 제외하곤 각 반 교실에서 TV로 봤다. 나는 맨 뒤에 앉은 우리 아이의 뒤에서 서서 봤다. 나름 방송반 활동도 하고 미술대회에서 상도 받고 해서 뭔가 받으려니 했지만 없었다. 아주 미안했다. 대부분의 상은 열심히 활동한 엄마에게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미안했다. 게다가 말 많은 이효선 광명시장의 축사는 좀 깼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기엔 딱이었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 들었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거다. 이효선 광명시장은 ‘친구관리’라고 했다. ‘친구에게 관리 당하지 말고 친구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우정이 언제 관리대상이 되었단 말인가. 순간,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에 나오는, 맘에 쏘옥 들었던 대목이 생각났다.
“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내가 꼭 도와줄게. 내가 곤란할 때는 네가 도와줘. 우리는 친구잖아.” 이런 건 우정이 아니란다.
“네가 곤란하면 나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곤란할 때 나는 절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게 우정이란다.
손익으로 따지자면 손해만 볼 뿐인 우정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건 애초에 잘못이란 얘기다.
내가 생각하는 우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냥 맘속으로만 빌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친구란, 우정이란, 손해만 볼 뿐이기를. 그러니 친구를 너무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기를. 그렇게 맘속으로 빌고 나니 광명시장의 축사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결국엔 ‘자기관리’ 하라는 얘기겠지, 하고 말이다. 뭐, 아무튼. 뭔가 하나가 막 끝났다. 그건 바로 뭔가가 시작되었단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지금 뭐가 시작된 것일까?
참으로 벗어나고프건만, 나를 돌아볼 때면 늘 걸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남편이다. 이런, 제기랄! 한동안 내가 정의하는 ‘성공’은, ‘이혼하고 싶을 때 이혼하는 것’이었다. 내 사랑(부모로서의 책임감)을 통째로 흔들어서 내다버린 상대에 대한 나름의 답이었다. 남편의 외도는, (난 이 ‘외도’라는 단어가 참 거시기하다. 말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단어 하나로 정리가 되다니) 내게 죽음이었다. 그때 나는 죽었다.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서 살 수가 없었다. 내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서, 그때 나는 나를 죽였다. 그래서 난, 살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루하루를 잘 살고 후회 없이 사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소중한 내게 난 그걸 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이혼을 자꾸만 이리저리 따지다보니, 지금껏 왔다. 그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가, 어제 졸업을 한 것이다. 별거 중이라 어색하게 입학식에 함께 했던 그때가 벌써 이렇게 지나버린 것이다. 아~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했던가.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이라고 했던가. 그러면 여기에 나의 사랑도 하나 더해본다. 사랑해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사랑이 고픈 지금의 나에게 사랑이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도를 아나? 아무래도 내겐, 변덕스런 내 삶이 바로 도(道)다!
***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딸의 엄마입니다.
나는,
학습지교사입니다.
나는,
또 다른 삶인 ‘마흔’을 꿈꿉니다.
나는,
일과 가정과 꿈이라는 세 개의 발가락으로 뒤뚱거리는,
날고 싶은 오리입니다.
[오리날다]는 2010년을 시작하며 내가 나에게 약속한 6개월간의 글쓰기입니다.
일주일에 하루쯤, 아니 더 많은 날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뒤뚱거리는 오리가 날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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