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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3일 07시 42분 등록

책이 없다. 인터넷에 주문할려고 하니, 며칠 걸린다. 재고가 없나 보다. 오프라인 서점에도 없다. 출판사에 전화했다. 다행히 서울 시내다. 찾아갔다.

갈라파고스 출판사.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뚜레주르 빵집 옆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서점, 음식점이 간간히 눈에 띈다. 5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아이비 클럽이라는 카페가 있고, 갈라파고스 출판사는 건물 5층이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15,000원에 해주겠다고 한다. 책을 다급히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나 또한 미인과 음식만큼 책에 갈급하기는 처음이다.

책은 오브제로서 그 자체가 작품이다. e북은 정보전달에 효율적일지 몰라도, 맛이 없다. 책은 오감으로 읽는다. 눈으로, 손으로, 코로, 귀로, 입으로.

표지의 종이는 신화라는 주제답게 그리스 유적지 촉감이다. 클림트의 거친 드로잉을 절제된 디자인이 받쳐준다. 분량은 두툼하다. 책을 펼쳤다. 편집 또한 실망스럽지 않다. 한 단락, 한 단락이 알알이 박혀있다. 당연하게 보이는 이 배치는 공이 많이 들어간 편집이다. 조각 케익 먹듯이, 야금 야금 긁어먹는 일만 남았다.

눈여겨 본, '정미소井米所'라는 밥집에서 밥을 먹다. 우물을 길어, 밥을 짓는다는 뜻이다. 컨셉에 맞게 자연스럽고, 질박하면서도 정성있다.  밥장사를 하는 나는, 타인의 밥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공부다. 테이블 수와 메뉴를 보면, 얼추 하루 매상이 나온다. 직원들 수를 세워본다. 집세도 얼추 짐작해본다. 대략 얼마 떨어질지가 나온다. 한눈에 봐도 매장 곳곳에 사장의 배려가 묻어있다. 감동스러운 한편 부끄럽다.이 정도로 매장에 신경쓰지 않는다. 찬은 3가지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음식은 심심하나, 담백하다. 좋은 식당에 오면,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어진다. 음식장사 30년 경력의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순례를 하고 싶다. '엄마와 함께 가고 싶은 식당'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자(어머니)가 말씀하시고, 나는 기록한다.

스캇펙을 읽다가, '에덴의 동산'에 대한 새로운 신화를 알았다. 아담과 이브는 하지말라는 짓을 해서, 쫓겨났다. 스캇펙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뽑아내는데, 아담은 왜 따지지 않았냐는 거다. 하나님의 율법 뒤에 그 의도가 무엇이냐고 왜 묻지않았냐는 것이다. 아담이 따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스캇펙은 게으름에 대해서 다시 정의한다. 흔히, 늦게 일어나고, 운동도 하지 않으며, 일하지 않고 팽팽 노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부른다. 게으름의 원인은 두려움이다. 마땅히 해야하는 일을 미루거나 피하는 것이 게으름이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있는가? 보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시련 당한 여자가 아픔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한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녀는 게으른 것이다. 남자에게 찾아가서 뒤집어야 한다. 생활에 치여서, 자신의 달란트를 찾지않는 것도 게으름이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거나 피할 때, 신경증에 걸린다. 병에 걸리면, 삶이 메마른다.

해야할 일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소명은 재미있으면 좋겠지만, 지겨울 수도 있다. 소명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딴 곳으로 신경을 돌리면,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점진적이건, 혁신적이건, 마땅히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그대로 살고자 애써야 한다. 영웅들에게는 장애물이 등장한다. 적이 될 수도 있고, 내적 불안일수도 있다. 복잡하고, 귀찮은 종류일수도 있다. 여하간 영웅의 진로를 방해한다. 아무리 다부지게 결심해도, 이런 장애물이 속속 등장하면, 이내 지친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려움을 착실히 받아들이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낸 영웅은 결국 '성장'한다. 성장이란, 더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며, 자신에 대한 더 깊어진 믿음이다.

아담의 죄는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게으름이고, 모든 인간의 원죄가 되었다. 아담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한결같이 용기가 필요하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같은 영웅을 보라. 그들에게 용기란 천부된 것이 아니다. 초인적인 힘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그들의 용기는 인간적이고, 나약하다. 극적 효과를 위한 의도일지 몰라도, 나약한 자가 용기를 발휘해서 영웅이 되는 과정은 감동을 준다. 가야할 길을 가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게으름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스캇펙은 정신과 의사고, 캠벨은 신화학자다. 둘은 프로이트와 융에서 만난다. 꿈은 인간 소망, 욕구의 발현이다. 원초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는 신화학자에게는 상징이 된다. 인간이라면, 같은 신화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이 내린 소명이다. 캠벨이 말하는 신화는 스캇펙의 '은총'과 일치한다. 신화에는 수많은 비유가 숨어있다.  일상에도 이런 비유가 속속 숨어있다.

인터넷으로 많은 책을 주문했다. 10권이 넘는 책중에서 유독, 이 책만 없다. 이게 우연일까? 왜 하필, 제일 급한 책이 그 많은 책중에서 없는 것일까? 그 결과 출판사에 찾아갔다. 찾아가는 도중에 잡지에 소개되는 카페와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을 알았다. 한곳에서 밥을 먹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소명)가 떠올랐다. 심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몰라도, 무감각하기 때문에 은총을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군대시절 600키로짜리 포에 깔릴뻔하기도 했고, 대학시절 산업도로를 만취 상태로 걸어온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당시에는 의식조차 못했다. 왜 남들은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잃는데도, 난 죽을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을까? 더 놀라운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당신도 나처럼 살아있다는 것이다. 아이티 지진 2만명 사상자에 비하면, 나의 생명은 기적이다. 은총은 사람처럼 과시하지 않는다. 이벤트와 미디어의 호들갑에 내성이 생겨서, 삶이 주는 메세지에 무감각해졌다. 자연스러운 기적이 도처에 만발하다.

나에게 신화는 그림 맞추기 퍼즐이다.삶은 묻지 않아도,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가르쳐 준다. 난 장사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 먹고 사는 문제, 자영업등이 나의 화두다. 과거 몇년간 힘들었는데, 당시의 경험은 훌륭한 소스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이들 또한 나에게는 메시지며, 은총이다. 당신이 가던(혹은 가야하는)방향으로 가라고 무언으로 재촉한다. 격려 받으면, 추진력이 생긴다. 지금 경험이 미래에 어떤 모습을 나타날지 지금은 모른다. 스티븐 잡스는 대학에서 서체를 배웠다.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청강했을 뿐이다. 당시의 공부는 10년후 매킨토시에서 빛을 발한다.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될려면,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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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2.13 10:34:20 *.209.239.32
맑은님,
빡센 연구원 레이스 기간 중에도
하던 대로 글을 올리는 모습이 놀랍네요.
이제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하나도 글감이 될 정도로
생활과 글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 것이겠지요.
'쓰면서 생각하라'가 최고의 수련법인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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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2.13 18:47:08 *.129.207.200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는 많이 써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두번째 책은 시작하셨는지요?

저도 올해 출간을 목표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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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10.02.13 22:05:37 *.22.88.206
그동안 올리시는 글들을 거의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참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고만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름을 덧붙이시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6기 연구원에 합격되어 레이스 중이시군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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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2.20 18:14:06 *.70.61.217
드디어 이름이 세상에 나왔네요.
맑은님 글을 좋아하는데,
궁금했지요.
꾸준함이 곧 치열함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분이라서요.
이름을 처음 알게되서 답글을 적습니다.
연구원이 되셨다니 곧 오프에서 얼굴을 뵐 수 있겠군요.
사는 게 재미있단 생각이 듭니다.
정진하라는 말은 필요없을 것 같고
삶을 더 즐기는 것이 우리 모두의 화두가 아닌가,
 하는 생각 한 줄 남깁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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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2.14 04:05:45 *.255.244.192
졸필을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혼자 공부하면, 책을 편식하더군요. 그런 이유도 있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누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기에,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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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10.02.15 21:43:39 *.117.9.161
레이스 중이라 그런지 글이 칼과같이 번뜩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는 분인데 끝날쯤에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합니다. 
 끝까지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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