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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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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02시 01분 등록

초등학교 때 읽은 세계문학전집의 첫번째 순서가 '그리이스신화'였다. 전집 50권을 읽으려면 왠지 순서대로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여름방학에 나는 제1권을 집어들었다. 
  
그 책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인상은 세상의 '카오스(혼돈)'에 대한 묘사였다. 하늘과 땅과 물
과 불이 모두 섞인 진흙처럼 질척하고 무거운 그것. 그 묘사는 8살짜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상으로 대체하여 인식해야 할지 어려웠던 문제는 있었지만, 그 강렬함은 계속 머리에 기억하게 했다.

그러다가 얼마후 나 나름대로 '카오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여기게 될 계기가 있었다. 바로 동네 목욕탕에서였다. 엄마와 같이 목욕탕에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을때, 머리위에서는 샤워기물이 사정없이 쏟아지고 꼭 감은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코도 흐르는 물로 제대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귀로도 머리의 샴푸거품과 샤워기물로 세상의 소리가 차단되어 내 오감중 촉각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였다.
'이게 바로 그 '카오스(혼돈)' 이구나!'
나에겐 '혼돈'에 대한 구체적인 첫 인식과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상황을 '혼돈'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는 버릇은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매번 계속되었다.

어쨌든 어린나이에 접한 첫 책으로 그렇게 순간순간 선명했던 기억 때문이었는지 나에게 '신화'라는 단어는 그리이스 신화를 자동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책에서 보았던 신화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도자기문양, 조각등의 삽화와 사진이 따라서 떠오르고, 그것에 연관되는 올림푸스산과 델피 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그리고 로마같은 남유럽지역, 지중해, 크레타섬, 그리고 터키 인근등이 생각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이곳과 다른 세상을 생각하게 된 최초의 계기였다.
저 곳에는 저런 세상이 있으리라는 막연함을 꿈꾸게 된 강렬한 동기였다.

각각 개성을 가진 12명의 신들이 때론 인간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신화의 이야기는 그래도 어린 나도 이해할만한 권선징악이 있었고, 영웅은 결국 여정을 끝내었으며, 사소한 원인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은연중에 그리이스 신화는 내 내면으로 합리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나의 신화는 그런 인식의 틀에서 생겨나게되는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이다.

신화는 나에게 삶의 색채로 다가왔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어떤 빛이 느껴질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야기를 생각하면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 다가와 생각을 빨리 닫아버리고 싶을때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빛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점점 더 끌리게 되고, 그 이야기의 여러 장면과 사람들은 내 인생에 모델이 되고 삶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싶다고 여기게 했다.

어린시절 내 인생의 빛으로 여긴 신화의 존재는 아테네여신이었다. 내가 가진 열등감 중에는 내 자신이 '여자' 라는 사실이 꽤 컸는데, 아테네 여신은 여신이면서도 내가 늘 보던 엄마나 동네아줌마들과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비전을 주는 첫번째 모델이었다. 지혜의 여신이면서, 학문과 예술을 대표하고 전쟁을 다루는 여신이기도 했으며, 어머니 여신이 없이 아버지인 제우스 신의 머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들이 그 당시의 내겐 어찌 그렇게 구미가 당겼는지 모르겠다.

어린시절 나의 성배는 바로 그렇게 내 구미에 맞는 책을 읽는 순간이었다. 아테네 여신의 모습에 몰입하고, 다양한 신과 인간들의 이야기를 상상의 나래를 펴며 그곳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빠져들면 세상을 그렇게 보게되고, 그런 기회에 자신을 먼저 드러내게 된다. 내가 이제껏 살아온 삶에는 그런 태도가 미친 영향이 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예전의 신화에서만 내 모델을 찾고 있지는 않다. 신화는 계속 바뀐다.
예전 사람들이 교회와 절에서 예배를 보고 불공을 드리며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찾았다면, 요즘 사람들은 차를 타고 눈이 뒤덮인 풍경을 감상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향이 좋은 커피를 즐기며 통유리창 너머의
거리풍경을 응시하며 자신으로 몰입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들 각각에게 충분한 의미가 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많은 차가 팔리고
, 거리엔 많은 카페가 생기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화를 위해 산다.
그리고 이제 나의 신화는 변경연 연구원의 치열한 한주일,한주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계속 나의 신화를 꿈꾸며 산다.

IP *.157.13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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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02.15 12:34:18 *.209.239.32
하하, 꼬맹이가 '카오스'를 인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네요.
'카오스' 뿐만 아니라, '자유' 같은 다른 추상명사도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새겨나갔을 것 같아 흥미로운데요~~
그래요.
연구원 레이스 과정 그리고 그 이후를
신화로 만드는 것은 순전히 젠느님에게 달려 있겠지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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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2.15 22:17:27 *.64.148.199
미탄님..
이곳 변경연 홈피에서 댓글로 만나뵙게 되니 무지 반갑습니다 ^^
설은 잘 쇠셨죠?  갑자기 바빠진 2월에 주말 명절까지 끼어..  친정에 와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글을 올렸답니다~  
바쁜중에도 어떤 주제에 몰입해 글을 쓰는 행위가 저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좋은 경험으로 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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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2.15 18:04:01 *.154.57.140
인생의 빛 지혜의 여신 아테네
여자로서 열등감. 동네아줌마와는 다른 삶, 비전을 주는 모델 성배와 몰입
이런 말들이 꽂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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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2010.02.15 22:19:19 *.64.148.199
네.. 같이 2차레이스에 참여하시는 분이군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셔서 3차 면접때 함께 얼굴 뵙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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