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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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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10시 30분 등록

첫 번째 컬럼,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

 #

“아빠, 이야기 해줘”

잠자리에 누으면, 초등 3학년 아들은 오늘도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게임의 맛’을 느낀 이후에는, 아빠하고는 놀아주지도 않지만, 아빠를 기다리는 유일한 시간이 있다면, 매일 밤 잠자기 전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이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불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옆구리 터진 김밥이 세계를 여행하면서, 이집트의 ‘모래 김밥’이나 북극의 ‘얼음김밥’, 일본의 ‘우동 괴물’과 싸우기도 한다.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가서, 괴물이 지키고 있는 마법에 성에 갇힌 공주를 구출해 오기도 한다.  

34년의 나이 차이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아들의 얼굴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와 문장이 있는 것을 느끼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는다. 강인한 몸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괴물과 싸워 이기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 빵꾸똥꾸 같은 웃기는 주인공의 얘기를 아이는 좋아한다.  

나에게 ‘신화의 의미’는 밤마다 아이에게 해 줄 이야기 거리가 떨어져 탈무드를 찾아보고, 기억나는 영화의 스토리를 억지로 갖다 붙이거나, 그리스 신화를 찾아보고, 이야기의 문법을 차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신화와 인생’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신화를 모태로 한다는 것, 신화에는 이야기의 원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화는 오랜 세월을 살아 온 마법사처럼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꾸었고, 사람들의 마음에 주술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먼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꾸고 있는 꿈이었고, 집단적인 기억인 신화가 펼치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의 내면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매력이, 어린아이에게도 작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신화라 하더니,
그렇게 신화는, 매일 밤 나와 아이 옆에서 
‘이야기의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관계로, 신부 및 수녀님들과 근무를 하는 특별한 경험을, 
15년 동안 지속하고 있다. 매주 성당에 나가야 하는 기본적인 신자의 도리도 잘 지키지 못하지만, 종교는 늘 나의 곁에 있었다. 
 

‘신화와 인생’ 책의 내용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기독교를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이는 캠벨의 메시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신화를 비교하다 보면 불 훔치기, 홍수, 처녀 출생, 부활한 영웅과 같은 주제들이 전 세계적으로 각 지역에서 새롭게 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 그 다양한 신화적 모티브가 지역적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되고 조직화되고 제의화 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겐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놀라움 이전에 종교에 대해 늘 의아해했던 부분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성당에서 전례를 행하는 신부님과 수녀님의 모습이, 꽃 단장을 한 아가씨의 '화장한 얼굴'이라면, 평일에 직장에서 업무로 만나는 것은, 화장을 지운 '생얼 아가씨'와의 만남과 같다. 생얼과 화장의 차이가 확연한 이도 있고, 아닌 이도 있는 것처럼, 속세에서의 삶과 수도자의 삶이 다르지 않은 분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다.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   

가톨릭의 사제들이 가슴에 가장 많이 담고 있으며, 신앙의 모토로 사용하는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야말로, (그토록 오랜세월 동안 가톨릭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제의 비전을 잘 나타낸, 세계 최고의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숭고한 삶을 살아가려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는 부러움과 경외의 존재였고, 젊은 시절, 가슴 한 켠에는 성직의 길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마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근무년수의 증가와 더불어 생얼 아가씨와 화장한 아가씨 사이에서, 그 차이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톨릭의 전례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의미 없는 형식으로 전락했고, 질문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신과 조용하게 기도하는 시간 또한 점차 멀어져 갔었다.   

조지프 캠벨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신화는, 늘 내 곁에 있었으나, 가까이 가려고 하면 더욱 알 수 없었던, 종교에 대한 근원적인 의아스러움을 해소하는(전부는 아니지만) 계기가 되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지 않고, 다만 기도하는 자의 마음을 바꿀 뿐’이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컬럼을 준비하면서, 설 연휴를 이용해, 안방에 있던 TV 를 치우고, 작은 책상과 의자을 마련해 놓았다.
이곳을
성소(聖所) 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희망하는 것, 그것이 신화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아들이 더 성장하게 되면,
‘화장’이나 ‘생얼’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아가씨에게 집중하라고 얘기해야겠다.
결국 같은 아가씨일 뿐이니...   

4주차 지정도서인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서문을 보니 멋진 내용이 나온다.
‘신을 믿느냐?’는 BBC 방송 기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는 내용이다.   

나에게 신화는 아이와의 ‘잠들기 위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밤마다 아이 옆에서, 아이와 가족의 성장과 건강, 그리고 행복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도록 만든다. 
 

혹시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도 카를 융처럼 ‘신을 믿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신을 압니다.” 라고
말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IP *.34.2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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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2.15 21:51:00 *.212.68.201
우성님의 컬럼을 읽다가 문득 "여자를 믿느냐 여자를 아느냐"라는
패러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신은 모르겠지만 이말에는 저도
"여자를 압니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네요 ^^

작년 가을소풍 때 모닥불옆에서 기타 치던 모습이 'Les feuilles
mortes(고엽)'를 부르는 이브몽땅같았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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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10.02.18 21:55:00 *.34.224.87
작년에 뵙던 분이군요...얼굴은 기억이 안나지만, 만나면 알 수 있겠지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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