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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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를 보내고 출근 사흘째. 아직도 모드전환이 힘들다. 늘어난 위장을 부여잡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니 짧은 연휴가 야속하기만 하다. 무슨 재미를 보겠다고 꾸역꾸역 뺑뺑이를 돌다가 왔단 말인가. 그래도 예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놈의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경기도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2박3일 동안 아이들이랑 잠도 설쳐가며 인사를 다녔다. 먼 거리는 아니어도 나름 민족대이동의 대열에 함께 했다. 그리고 친정을 제외하곤 부엌에서 살았다. 시댁엔 시동생이 미혼이어서 홀로며느리, 사촌형님 댁엔 무늬만 동서 덕분에 형님과 단둘, 큰집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 식구들은 느는데 일손은 자꾸만 준다. 며느리들이 사라진다. 끊임없는 설거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난 왜 이러고 있나?’다.
어쩜 그리도 남녀유별인지. 매년 반복되는 두 번의 명절은 매번 같은 풍경이다. 쫌 지겹다. 남자들은 먹어대느라 지겨울 테고, 여자들은 먹이느라 그렇고. 먹는 게 뭔지. 하긴 그게 사는 건가. 참 단순하기도 하여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남편은 주방에서 바쁘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나마 집에선 여자로 살아주는 센스를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 그걸 좋다고 살아가고 있으니.
***
이 이야기는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회교 신비주의 수도자들인 수피의 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는 짐을 운반해 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많은 짐을 가지고 가야하고 길 안내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더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짐꾼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자 탐험가는 매우 화를 냅니다. 서양 사람들이 미개인들한테 곧잘 그러듯이 화를 냅니다. 실제로는 미개인이 아니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주민입니다.
탐험가는 화를 내면서 예정된 날짜와 시간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서 가자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짐꾼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요지부동입니다. 그래서 탐험가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붙들고 잘 가다가 주저앉아서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원주민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 법정 스님 법문집 2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보충수업이 수요일 12시인 것을 그날 그시간에 기억해냈다. 덕분에 하루에 할 일을 이틀 동안 했다. 멍한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렸건만 여전히 멍하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메모 없이는 ‘살아 있는 미라’다. 마음이 하는 일에 마음이 정신없으니 손발이 고생하고 있다. 내 영혼은 언제쯤 따라 오려나…. 이번 주엔 토요일도 일을 해야 하니 주말이 지나야 가능하려나. 오긴 오려나. 딴 데로 가진 않으려나. 난 지금 왜 이러고 있나? 명절후유증!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딸의 엄마입니다.
나는,
학습지교사입니다.
나는,
또 다른 삶인 ‘마흔’을 꿈꿉니다.
나는,
일과 가정과 꿈이라는 세 개의 발가락으로 뒤뚱거리는,
날고 싶은 오리입니다.
[오리날다]는 2010년을 시작하며 내가 나에게 약속한 6개월간의 글쓰기입니다.
일주일에 하루쯤, 아니 더 많은 날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뒤뚱거리는 오리가 날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영이에게 새해 그림을 하나 다시 주어야 겠다.
누구든 아끼는 사람에게 정이 가는 것이니.
그대가 나비이기를
그대의 꿈이 꽃잎이기를
그리하여 하늘 가득 날아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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