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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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의 철학은‘나는 누구일까’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과학적인 인물이었다면 세상의 좌표상에 표시된 내 위치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내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면 신의 품안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에 의심을 갖지 말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과학이 주는 정보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신이 주시는 메시지는 정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막연했다.
'나 이렇게 시시한 사람일리 없잖아..
그치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또 어디있냐구.."
속상했다. 마음이 아팠다. 뭘해도 재미가 없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이 정해준 나로만 살아가기엔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다. 영혼의 바이탈 사인은 이미 죽음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무방비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나는 여기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도 절묘한 타이밍에 전에 보지 못했던 길이 하나 나타났다. 어떤 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 길 끝에 내가 찾아야 할 것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느낌이 있었다.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길 위에서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길을 나서고 나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그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가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이면 안도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오늘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날을 맞으면 또 하루치의 길이 열려 있었다. 어느날은 아침에 길을 떠날 때 저녁에 머물 곳이 다 보이는 넓고도 분명한 길이었지만 어떤 날은 한치앞도 가늠할 수 없는 빽빽한 안개속에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여행을 계속 하다보니 길동무를 만나기도 했다. 지도를 가진 친구들도 있었고, 나침반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 친구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라며 흔쾌히 함께 쓸 것을 허락했다. 짬짬이 쉬는 틈에 지도를 업데이트 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침반을 몇개 더 만들어 길이 다른 벗에게 나눠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서 지도는 과학이라는 별명으로, 나침반은 신화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천일이 지날 무렵쯤 나는 나만의 지도와 나침반을 마련했고,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제법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다. 여행은 그 자체로 축제가 되었고, 내 딛는 걸음마다 춤이 되었다.
어제의 철학이 목적도 모르는 험난한 여행길로 나를 내 몰았던 잔인한 마녀였다면, 오늘 네게 철학은 성배를 구하는 여정을 도와주는 고마운 수호천사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지도 따위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나는 나를 위해 마련된 '나만'의 성배를 찾아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으니까. 한 때는 지도가 없었다면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밤이후 지도를 따라가던 헛걸음의 의미도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 밤 꿈에 그리던 나의 성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시 네가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여행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너의 지도를 나눠주어라. 거기엔 네가 헛 딛어 한참을 허우적대던 함정까지도 친절하게 표시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너보다 더 겁많은 초보여행자가 여행을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도와주어라. 그러다 갈림길이 나오면 각자의 나침반을 꺼내게 하고 지도를 불태워 버려야 한다. 겁먹은 그들을 꼭 안아 네 심장소리를 느끼게 해주어라. 네 고동소리는 그들의 세포까지 전달되어 그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를 찾아 오면 된다. 그렇게 나를 다시 찾은 너는 원하는 곳이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그리운 이들과 다시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나의 천사와 함께 또 하루만큼의 춤사위에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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