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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01시 41분 등록
여행사 사무실에 갔다. 여행업에 있었던 시절, 일했던 곳이다.  

여행사 사장이 꿈이었다. 세상을 무대로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근사하다. 007영화처럼 파리, 중국,일본을 넘나들며, 미인들과 담소를 나눈다. 막상 현지에서 활약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물론 미인도 없다. 손님이 술을 호텔에 놓고 왔으니, 가져와라.든가. 필드에서 골프채를 잃어버렸다.든가. 숨가쁘게 동서로 날라다니지만, 하나도 멋 없다. 밥도 못먹고 있는데, 손님이 밥맛이 왜 이러냐고 면박을 주면, 눈물이 찔끔 나온다.

그래도 공짜로 해외가고, 산해진미 먹는 것이 어디인가? 라고 말할 수 있다. 손님을 모시고 가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른다. 맛을 느끼고 있을 여유가 없다. 객실이 없다고, 스위트룸에서 혼자 잔적이 있는데,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마굿간을 줄것이지, 총각에게 스위트룸은 고문이다. 거품 목욕을 하고, 고급 위스키를 마셨다. 푹신한 침대에서 한숨도 못잤다.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다.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5분을 넘지 않는다. 식사할 때, 말 한마디 안한다고 아내가 타박한다. 아이들까지 생겨서, 이제는 그러면 안되는데, 내 마음은 항상 달리는중이라 밥이 천천히 안먹힌다.

외식업은 어떤가? 외식업은 더 심하다. 여행이 대중화되었지만, 손님은 해외에 나오면 긴장한다. 현지 상황에 익숙한 가이드에게 의존한다. 한번은 너무 막무가내인 손님들이 있어서, 하루 잠수 타버렸다. 그 다음날 대접이 달라진다. 한국에서 컴플레인을 한다해도, 모처럼 여행왔는데 기분 잡치기는 싫다. 외국어를 하면, 나름 전문지식인으로 대우해준다. 딱가리지만, 의사와 변호사들의 인정을 받는다.

외식업은 불특정다수에게 더 이리저리 치인다. 자존심을 파는 것이 외식업의 핵이다. 음식 맛만을 자신하고, 사업한다면 버티지 못한다. 맛이 없어도, 대접 받았다고 느끼면 또 오지만, 맛 있어도 사장이 뻗뻗하면 안온다. 졸지에 맛없는 집이 되어버린다. 입지가 불리하다해도, 사장의 싹싹함과 맛이 받쳐준다면 가능성이 있다.

내가 음식점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걱정했다. 당신 같이 무뚝뚝한 사람이, 손님에게 싹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도 불안했는데, 고개 조아린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내가 매국노도 아니고, 먹고 살기위해 손님에게 잘할려고 애쓴다. 이게 부끄러운 일인가?  

게다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발견했다. 의도적으로 싹싹할수록 대인관계 테크닉도 좋아진다. 2년전 직장을 전전할때는 우울했다. 2년전 글을 보면 문체에서 드러나듯이, 조심스럽다. 약간의 충격에도 부서질듯 아슬아슬하다. 서로 알면서도 행여 깨질까,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가 나다. 가만보니, 현대의 '서비스업'이란 손님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것이 일이다.  무슨 일이든 치인다. 치인 사람이 고객이 되어서 또 진상이 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직 젊기에 치인다. 나이가 들면, 치이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손님도 사장을 부담스러워서 함부로 못하고, 안온다. 음식점에는 왜 이모가 많은가? 남자들은 숨어서 서포트할뿐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행여 나이든 자신의 모습이 손님에게 부담을 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걸면,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

휘둘린다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사실 젊을 때는 간섭도 받아보아야하고, 인간적인 모멸도 많이 받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내성이 생겨서 같은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다. 이러한 내성을 영적 근육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병철회장은 이건희에게 '목계木鷄'라는 원칙을 주었다. (얼마전 그가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의도한 대로는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목계를 이루었다. ) 나무로 만든, 닭이라는 뜻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 목계는 거저 되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수없이 마음이 부서지고, 깨져봐야 마음이 없어진다.

내일부터 놀거다. 2년간 죄 지은듯이 가게 나왔다. 속죄의 시간이었다. 주어진 인연과 업을 만만하게 보았다.  전주에 사는 이종룡씨는 10년간 아르바이트 7개를 해서, 3억5천 빚을 갚는다.매달 350만원씩 10년을 갚았다. 그의 수면 시간은 2시간이 넘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잡기 위에, 뺀찌로 자신의 송곳니 두개를 뽑는다. 그 나름대로의 속죄 방법이었다. 가정에 소홀하고, 방탕하게 산 자신을 스스로 벌주었다.

난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신 나답게 벌을 주었다. 산만하고, 역마살 낀 나를 43평 매장에 가두었다. 친구도 못만났고, 얼마전 죽마고우의 결혼식도 못갔다. 송곳니 만큼은 아니지만, 가혹하다.

사무실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호텔 앞에서 외국인 상대로 가게 홍보를 하라는 것이다. 외식업도 앉아서 기다리면 안된다, 나가서 손님 물고 와야한다. 영업, 찌라시 돌리기, 호객하기, 이런 일들을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이 일이 내 일이다. 이렇게 해서 매출이 올라가면, 난 기쁘다.

갈 곳 없어서 장사 시작했다.
장사2.0이다. 작정하고, 휘둘린다.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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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3 08:50:29 *.246.146.82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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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0.02.23 10:23:53 *.53.229.15
우와.. 어딘지 알려주세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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