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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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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7일 13시 20분 등록
 

 



‘종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그렇다면 나의 종교는 뭘까?


초등학교 때는 친구 따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봤고, 성인이 되어서는 또 친구 따라 성당에 가서 미사를 봐봤고, 아이들 낳고는 절에도 가봤다. 결혼 전에는 남편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당과 교회 중에서 선택하자 하고는 함께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일요일 오전에 만나서 예배를 보고 오후엔 놀러 다니고 술 마시고 그랬다. 데이트 목적이었다. 새벽기도에 참석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결혼과 동시에 오만가지 핑계로 그만 두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지금껏 전도를 하곤 한다.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다고 했던가. 아니면 이것도 나이가 준 선물일까. 이제는 누가 가자고해서 따라가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니 딱히 정해진 종교가 없다. 하지만 종교적인 느낌 비슷한 건 있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시 살게 하고, 선한 마음을 기억하게 하고,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믿음을 주고, 강물처럼 살아서 끝없이 흐르는 사랑을 꿈꾸게 하는, 그건 바로 책 읽기다.


‘도대체 책은 왜 읽는데?’ 남편이 가끔씩 내게 던지는 얄미운 질문이다. 나는 멍한 눈만 껌뻑이며 답을 못한다. 번번이 답을 미루게 되는 까닭은 뭘까? 잘 모르겠다. 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뭘 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내가 모르는 나의 아주 많은 부분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책을 읽는 그 순간은 온전히 ‘내’가 되는 느낌이다. 더불어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이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 전엔? 결혼하기 전에는 책보다 지금의 남편을 더 좋아했다. 이 말은 곧, 결혼하고 나서는 내 사랑이 ‘남편’이 아니게 됐단 얘기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고마운 놈.


그해 가을, 나는 쓸쓸했다. 좋아하는 책도 읽히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귀찮아서 누군가 대신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그때 그를 만났다. 나는 사랑이 온 줄 알았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행복했다. 그러다가 얼마 못가서 그 행복을 남편에게 들켰다. 남편은 내 행복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는 미안하다 말했다. 나는 그때 나만 행복한 게 미안했다. 왜 그랬을까?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를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 것이다. 그 경험은 남편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대신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귀찮아한 내게 미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내게 물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그 첫 단추는 책 읽기라는 것 정도다. 남편이 가끔씩 던지는 그 얄미운 질문에 변변한 답을 못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답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내 사랑이라고, 당신과 함께 사는 이유라고 말이다. 앞으로 언제 어떤 종교와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내 종교는 책 읽기다. 행복한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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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나비이기를. 그대의 꿈이 꽃잎이기를. 그리하여 하늘 가득 날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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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2.27 19:12:16 *.53.82.120
결혼의 시기와 이유가 정확히 저랑 같으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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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3.12 12:48:48 *.210.11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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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6 12:45:05 *.141.102.147
언니..저 깨어있는마음이예요.
몰 그리 놀라세요?  ㅋㅋ

결혼이란..
안전하지만 지루한 성밖을 나와  놀던 공주가
아끼던 황금공을 더러운 연못을 빠뜨렸을 때
그걸 가지고 찾아주겠다며 나타난 개구리와 생각없이 해버린 약속같은 거구나..

캠벨할아부지의 '신화와 인생' 읽으면서 생각했죠.
언니 글 읽음서 '아~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함서 반가웠는데..
오버였을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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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3.05 20:13:04 *.210.11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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