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 조회 수 2469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컬럼 3 : 나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젊음을 부추기는 화려한 몸짓을 못 받아 고정하고,
미인의 이마를 주름지게 하며,
진귀한 자연의 진실을 먹고 사니,
시간의 낫이 베어버릴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서 있지 않다.
그런데도 시간 속에서 나의 시는 희망을 품고 서 있다.
시간의 잔안한 손아귀에서도 나의 가치를 찬미하며….”
이 시는 고대 시인들이 시간이 사랑하는 것들을 모조리 휩쓸어가는 것에 대한 한탄을 그리고 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 아쉬움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아 희망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려는 다짐이 엿 보인다. 고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며 바로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움은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고 있다. 지금의 시간에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돌려 놓으려고 애를 쓰곤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살려고 노력하곤 한다. 행복이란 도달해야 하는 장소나 지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창조하고 채워가는 마음의 상태라는 지혜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외부의 무엇을 얻으려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거꾸로 시간을 돌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니 문득 데이빗 핀처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80세의 나이로 세상에 나와 남들과 다르게 거꾸로 나이를 먹어가서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가 사랑하는 딸 보다 어려져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헤어지는 아픔을 맞는다. 시간의 순방향의 흐름과 이에 대한 적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좋은 영화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일까? 아침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떠서 움직이는 비공간적인 연속체 년, 달, 일, 시, 분, 초… 이것이 시간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간’ 의 변화를 숫자 형태로 틀로 표현해 놓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진채 생활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빽빽하게 채워진 다이어리를 보며 하루를 잘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몇 달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난생 처음 겪는 어른의 장례였다. 이 나이에 장례를 처음 치룬다 하면 다들 나에게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만큼 주변 사람들이 안 아프고 사고 없이 잘 지내주었다는 반증일테니까. 아무튼 장례를 치루는 시간은 나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분명 어제까지 내 손을 잡고 살고싶다 하셨던 아버님은 다음 날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치시고 다음 생을 위해 떠나셨다. ‘내가 사는 오늘이 죽은 자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하루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토록 살고 싶어 하셨는데…… 아버님이 눈을 감으시자 그의 시간도 멈추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아버님의 상실감이 채 잊혀지기도 않았는데 몇일 전 나와 의자매를 맺은 동생 전화 한 통에 나는 주저 앉을 뻔 했다. 우리는 서로 여형제가 없어 힘들 때 의지하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제일 먼저 나누며 사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날 동생 목소리는 무언가 홀린듯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하고 전화를 끊고 조금 있다 문자가 왔다. “언니, 내 친구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고 조금 전 집에 가다가 사고로 즉사했데.” 나와 밥도 같이 먹었고, 우리 집에 와서 차도 같이 마신 친구였다. 이제 막 서로가 좋은 감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꽃을 피우려는 시기였는데 ……. 나는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죽은 친구도 불쌍했지만 남아서 1시간 전까지 같이 이야기 하며 손을 흔들며 헤어졌던 친구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인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동생이 너무나 가여워서 어떤 위로를 찾아내야 할 지 몰랐다. 시간은 그런 것이었다. 1시간 전과 1시간 후의 삶과 죽음. 생물이 살아서 숨쉬고 활동 할 수 있는 힘, 곧 생명의 유무를 가르는 것이었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시간은 ‘생명’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내 생명( 내 시간) 있는 동안 천하보다 귀하고 우주보다 깊다는 의미를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동생을 찾아가서 나의 시간을 내 줄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 빽빽히 채워지는 스케쥴에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던 젊은 시절보다 이렇게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어주고 아픔도 같이 나누며 또는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낮과 밤이 나에게는 단지 숫자적인 시간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옛 어른들이 “어른이 되려면 세 가지 일을 치뤄야 진정 인생이 무언지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줄 알지” 하실 때 그것이 나의 일인줄 몰랐다. 그저 꿈 속에 산신령님이 나타나 전해주고 간 메시지 마냥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뿌옇게 자리잡고 있던 그 ‘세 가지’가 선명하게 나의 삶 속에 다가왔다. 그 세 가지는 첫번째 자식을 낳아 길러봐야 하고, 두번째 장례를 치뤄봐야하고, 세번째 자녀를 출가 시켜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식을 낳고 그들을 아픈 가운데에서도 무사히 키워내는 기간동안 겪였던 나의 고통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고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며 많이 아팠기에 바람앞에 촛불처럼 애간장을 녹이며 키워왔던 그 시간은 이제 생각해보니 나에게 강인함을 심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쁨과 웃음을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콩나물은 물을 주면 쑥쑥 컸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쑥쑥 키워냈다. 시간 속에서 나의 고통 속에서 하지만 그들은 어엿이 성장했다. 어른이 되는 첫번째 경험을 그렇게 겪어냈다.
어른의 두번째 일이라는 장례를 치뤘다. 이 경험은 나에게 시간이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지금 이 시간에 많은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고 네가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열심히 살라는 메세지를 주었다. 어느새 어른이 되는 두번째 일,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치루면서 나는 정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며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니 마치 일을 하나씩 치루고 나면 꿈 속에서 산신령님이 색깔 주머니를 하나씩 주고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주머니 안에는 내가 살면서 힘든 시간 속에서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한 의미가 적힌 종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여러 관념들이 그 종이에 적힌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때가 되면 우리는 나름의 삶의 의미를 알게 되니까. 그렇다면 이제 어른이 되는 세번재 일이 남았다. 나의 두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는 일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세대가 교차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짝과 가정을 이루어 주고 물러나는 뒷방 할머니 같은 기분일까? 아니면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빼앗기는 상실감의 시간일까? 솔직히 두개다 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삶의 메세지를 찾아야 하는 일이 변함없이 나의 몫이다. 그 일이 지나면 나는 또 어떤 의미의 종이를 받게 될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 않을까? ‘불과 한 시간 후의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오지않은 앞일을 걱정하는 일로 짧은 인생을 낭비해 더욱 짧게 만들지 말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생명의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면서 주어진 하루의 낮과 밤을 가득히 채워가라’고 말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랑하면서 사는 지금이 바로 인생이며 행복의 순간이라는 것을…. 난 지금 행복하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89 |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5] | 최우성 | 2010.02.22 | 2164 |
1388 |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 김영숙 [6] | 김영숙 | 2010.02.22 | 2532 |
1387 | 나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 [3] | 박현주 | 2010.02.22 | 2029 |
1386 | 서양철학사 (칼럼) [4] | 김용빈 | 2010.02.22 | 1977 |
1385 | 칼럼2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12] | 신진철 | 2010.02.22 | 2747 |
1384 | <나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7] | 김연주 | 2010.02.22 | 2352 |
1383 | 수도꼭지 [11] | 박미옥 | 2010.02.22 | 2138 |
1382 | 장사 2.0 [2] | 맑은 김인건 | 2010.02.23 | 1988 |
1381 | 나에게 시간은 무엇인가 - 김영숙 [2] | 김영숙 | 2010.02.24 | 2525 |
1380 | 이런거 어때요? [3] | 신진철 | 2010.02.24 | 2036 |
1379 | 6기 연구원 레이스 중인 분들께 [5] | 범해 좌경숙 | 2010.02.24 | 2153 |
1378 | [6기후보칼럼3] (나에게) 수주대토의 시간 [1] | 심장호 | 2010.02.25 | 2353 |
1377 | 맨날 이랬으면. [2] | 맑은 김인건 | 2010.02.25 | 2408 |
1376 | [6기후보칼럼4] (나에게) 무의식과 자의식 그리고 작은 매듭 | 심장호 | 2010.02.26 | 2149 |
1375 | 2차레이스 불참에 대한 소회 - 6기 연구원지원자 주명훈 [3] | 주명훈 | 2010.02.26 | 2106 |
1374 | 3. 나에게 시간은 무엇인가? [4] | 맑은 김인건 | 2010.02.27 | 2334 |
1373 |
[오리날다] 도대체 책은 왜 읽는데? ![]() | 김미영 | 2010.02.27 | 2450 |
1372 | 나에게 시간은 무엇인가 [9] | 박미옥 | 2010.02.27 | 2311 |
1371 | 나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2] | 미나 | 2010.02.27 | 2203 |
» | 컬럼 3- 나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11] | 이은주 | 2010.02.28 | 2469 |